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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여행, 등산...

서울둘레길(4)

2020. 5. 16. 토요일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가서는 창을 열고 밖을 살폈다.

그쳤으리라 생각해던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약한 이슬비라 금방 그칠 것 같았다.

스트레칭을 대충 마친 후 식사를 하고는 우산을 배낭에 챙겨 넣은 다음 서둘러 집을 나서면서 카톡을 보냈다.

"지금 집에서 나왔으니 1시간쯤 후인 10시 무렵 석수역 출발"

오늘은 서울둘레길 6코스를 걷기로 한 날.

안양의 석수역을 출발해 가양역까지 안양천변과 한깅변 등 17.6km를 걷는 코스다. 평지를 걷는 코스라 '난이도'가 서울둘레길 총 8코스 중 단 두 곳뿐인 ''로 예상 소요시간은 4시간 20분쯤이란다. 그러나 오늘의 안양천 코스와 함께 난이도가 '下'라는 3코스엔 높이가 134m와 108m밖에 되지 않아 걷기에 그다지 힘들진 않겠지만 '山'이라 불리는 일자산과 고덕산이 있을 뿐 아니라 3코스의 출발지인 광나루역에서 종착지인 수서역까지의 거리가 26.1km나 되는데다 예상 소요시간도 9시간이나 된다고 하니 오늘의 안양천 코스가 총 8코스 중 가장 쉬운 코스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

게다가 지난 부처님 오신 날, 서울둘레길 관악산 코스를 걸은 후 쓴 블로그의 글을 읽은 큰고모집 고종사촌 누나가 안양천 코스는 누나도 절반쯤은 걸었다면서 중간쯤에서 셋째 고모댁 고종사촌 여동생과 합류할 테니 함께 걷자는 소식을 보내왔으니 얼마나 반갑던지..., 그래서 당초엔 지난 토요일이었다. 내가 석수역을 출발해 걸으면 오목교 부근에서 누나와 여동생이 합류해 함께 걷기로 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난 토요일엔 하루 종일 비가 내린 탓에 하는 수 없이 한 주를 늦추어 오늘 걷기로 했는데 또다시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리길래 또 연기해야 되나 걱정되더니 다행히 비는 곧 멈출 듯했다. 구름이 많고 햇볕이 나지 않아 길을 걷기엔 오히려 더 좋을 것 같아 감사한 마음으로 석수역으로 향했다. 

 

신분당선을 탄 후 강남역에서 2호선,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해 도착한 석수역
석수역 2번 출구 앞의 서울둘레길 안양천 코스 스탬프 부스

안양천,

우리은행 시흥동지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쯤, 마라톤에 입문해서는 첫 출전으로

'안양천 달리기'에서 10km 부문을 1시간 5분 정도에 뛰었던 안양천이 이렇게...

벌써 16년이나 되었으니 완전 과거의 일이다.

 

안양천변을 한창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내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것이 있어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바로 네잎클로버. 그런데 붉은 토끼풀이다.

며칠 전 양재천을 걸을 때는 네잎클로버가 여남은 개는 될 듯한 군락지가 보이더니...

내 눈에는 왜 이렇게 네잎클로버가 잘 보이는 걸까?

어떤 행운이 오려나?

붉은 토끼풀

근데 꽃말이 참 좋다.

「행복, 약속,너와 함께, 나를 생각해주오.」이란다.

 

서울 금천구와 광명시를 잇는 금천교.

이 다리 밑을 지날 때는 택호가 「금천댁」이었던 우리 할머니.

생전에 많이 사랑하셨던 둘째 손자가 결혼한 이듬해인 1980년 8월에

예쁜 딸 쌍둥이를 낳았건만,증손녀들을 한번도 못 보시고

10월에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파크골프장에서 여유를 즐기시는 어르신들
안양천 청보리밭 앞에서

안양천은 한강의 제1지류이다.

안양천의 발원지인 삼성산은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 있다.

여기서 흘러나온 삼성천과 백운산에서 흘러나온 학의천(鶴儀川) 및 경기도 군포시를 흐르는 산본천(山本川) 등의

지류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서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른다. 안양시와 서울시의 경계에서부터

한강 합류점까지는 국가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물길은 경기도 광명시와 서울특별시

금천구·구로구·영등포구를 지나 성산대교 서쪽에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삼성산의 안양사에서 발원하였다 하여 안양천이라 부른단다.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고척스카이돔의 아름다운 전경
오목교 부근에서 만난 멋진 흙길

오목교를 지나 드디어 상봉(?)

셋째고모댁의 여동생과 큰고모댁의 누나

 

얼마나 활기차게 잘 걷는지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서일까?

내 막내 여동생과 동갑이기도 하지만 올해가 回甲인 고종 누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나보다 8년이나 빠른 누나조차 나보다 훨씬 젊게 보였으니 참 좋았다. 

 

황톳길
우리 셋 모두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들고...
안양천과 한강이 하나 되는 두물머리에서
염창동 증미산의 맛집 '유림'
닭요리 전문점의 토종 닭도리탕은 역시 달랐다.

네 분의 고모를 둔 나는,

부산에서의 학창시절 대부분을 큰고모댁에서 다녔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서울에서는 결혼할 때까지 둘째 고모댁에서

은행에 출퇴근을 했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엔 방학 때마다 고향과 가까웠던 셋째 고모댁을 찾아가 놀았으며

막내 고모는 나를 업어 키웠으니 나만큼 고모들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조카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모들의 딸, 고종사촌들과 먹는 매콤한 닭도리탕과 윤기 졸졸 찰밥은 더 맛났다. 

내가 큰고모댁에서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재미난 추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대중 목욕탕에 갔으면서도 때를 제대로 벗기지 않고 불리기만 한 채 일찍 집에 들어가면 혼을 내곤 해

그땐 호랑이 누나였지만 내겐 언제나 젊디 젊은 누나였는데 세월이 어느덧 70대 중반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잘 키운 두 아들과 손주들의 효도 속에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게 여행을 즐기면서

걷기 등 건강관리를 잘 할 뿐 아니라 '쉰세대의 놀이터'란 멋진 블로그로

행복을 잘 가꾸고  있는 누나를 보면서 행복은 가꾸기 나름이고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안양천은 참 아름다웠다.

둔치를 얼마나 잘 정비하고, 얼마나 아름답게 가꾸고 있던지...

축구장, 야구장, 족구장, 파크골크장 곳곳에 들어선 체육시설들은 또 얼마나 멋지던지...

체육시설마다 주말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여유로워 보이던지 ...

정말 천국이란 곳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헬조선'이라니...

 

맛난 점심을 먹고, 허준공원을 걷느라 조금은 더 걷고, 조금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고종사촌 누나, 고종사촌 여동생을 만나 함께 걸으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 등

가족사와 옛추억을 나누었던 오늘 서울둘레길 6코스는 영영 잊히지 않을 도보였다.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안양천 만큼이나 멋진 날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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