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또다시 금연

자갈 길. 2019. 6. 7. 22:13

2019. 6. 7. 금요일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골목길.

내 앞에서 한 젊은이가 걸으면서 담배를 빼서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데 그가 내뿜는 담배연기가 고스란히 나를 덮쳤다. 그런데 담배연기가 조금이라도 거북하기는커녕 구수하다 못해 나도 한 모금 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맛있었으니…

아차! 싶었다.

이러다 또

6개월 공부 도로 아미타불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내 기념품이 담긴 쇼핑백을 내려다보며 정신 바짝 차리리라 다짐했다.

 

서초구 금연지원센터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6개월 동안 금연에 성공한 기념으로 값진 선물까지 받았다.

그런데…

나의 이번 금연은 처음이 아니다.


1986년

 

 

1996년

 

 

2002년

 

 

2007년

 

 

2011년

 

 

2015년

 

 

2019년

 

금연

흡연

금연

흡연

금연

흡연

 

 

11년

6년

5년

4년

4년

4년

 

 

이렇게 금연과 흡연을 반복했으니 이번은 무려 네 번째의 금연인 셈이다.

단 한 번의 금연으로 영영 담배를 찾지 않는 친구들도 많던데….

더구나 2011년 10월에 시작한 세 번째의 금연이 1년 되던 2012년 10월에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를 바라는, 다시는 피우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까지 했었는데 지금 또 그때와 비슷한 글을 쓰고 있자니 나 자신이 참 한심한 놈이다 싶었다. 게다가 처음 과거 두 번의 금연실패야 한창 은행에 근무할 때인데다 당시 근무하던 지점에서의 어떤 금융사고 등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이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은행 정년퇴임 후 1년이나 지난 터라 내가 하는 일이라곤 오전에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동호회에 나가 색소폰 연습을 하거나 집에서 글을 쓰다 어린이집에서 손주를 데려와 함께 노는 게 전부였다. 이처럼 스트레스 받을 일이라곤 전혀 없었음에도 어느 날 별로 대단치 않은 문제로 집사람과 목소리를 높여 언쟁을 한 뒤 홧김에 편의점으로 가서는 담배를 사다 한 개비 빼 물고 말았으니…, 이렇게 시작된 2015년 가을부터의 흡연 동기는 내가 지금 생각해봐도 내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 못해 한심하고 옹졸하기 그지없었다 싶다.

 

2015년 가을

다시 나를 지배(?)한 담배는 

친구들의 놀라움을 내 눈엔 냉소로 보이게 했다.

가족들의 놀라움은 내 눈엔 실망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색소폰 동호회 가던 길에 버스정류장에 내려서는 무의식 중에 담뱃불을 붙이다 금연구역 단속원들에게 걸려 신분증을 제시한 후 범칙금 고지서를 받아야 할 때는 얼마나 창피하던지 당장 금연을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손자가 생기면 피우던 담배도 다 끊는다더만, 당신은 늘 손주들을 물고 빨면서 끊었던 담배를 왜 다시 피우는데? 담배를 끊던지 손주 옆에 얼씬도 않던지….” 

집사람의 잔소리 같은 충고를 들을 때마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다가도 한밤중에 詩를 쓰거나 블로그 등의 글을 쓰던 중 생각이 꽉 막힐 때마다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담배 한 개비를 빼물곤 가슴 깊숙히 들이삼켰던 담배연기를 허공에다 내뿜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과 맛에 몇 차례나 시도한 금연은 언제나 作心三日이었다.

그러길 4년….

 

작년 12월 중순 어느 날 아침이었다.

유치원 등원 준비를 마친 은규를 데리고 아파트 입구에서 유치원의 노란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떤 젊은이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우리 앞을 지나가자 7살배기 은규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담배는 나쁜 거죠?”

그래서 나는 은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우리 은규 어떻게 알았어?  담배는 몸에 엄청 나빠.”

그러자 은규는 다시 물었다.

“담배 피우면 죽는 대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답배 피워요? 안 피우시죠?”

거짓말을 할 수도…

사실을 말할 수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뒤 나는 은규에게 또렷이 말했다.

“은규야, 할아버지 이젠 담배 안 피워.”

·······································

 

은규를 태운 승합차가 눈앞에서 멀어졌다.

나는 나는 서초구 보건소의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위치를 물어 찾아간 「서초구 금연지원센터」

女상담사의 밝은 미소와 상세한 금연 설명에 내 자신감은 한결 UP 되었다.

몇 가지의 설문과 테스트가 끝나자 상담사는 설명과 함께 2주 동안 사용할 금연 패치와 껌, 가그리, 목캔디, 치약치솔 등 여러 가지의 보조제를 챙겨주면서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하루에 한 번씩 금연 패치를 팔 또는 허벅지에 번갈아 가며 붙이자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은 한결 덜했다. 게다가 입이 심심할 때는 껌 등 센터에서 받은 보조제가 큰 도움이 되었다. 2주에 한 번씩은 곧 한 달에 한 번씩, 그리곤 다시 3개월 시점으로 바뀌고, 갈 때마다 금연 패치, 보조제, 비타민 등 쇼핑백이 가득할 만큼 챙겨주었다.

금연지원센터 덕분에 이번의 금연은 생각보다 쉬웠다.

 

드디어 금연 6개월이 되는 오늘.

3개월 시점엔 소변검사로 금연 상태를 확인하더니 오늘은 타액으로 흡연 여부를 체크했다.

6개월 동안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니 당연히 성공.

상담사는 6개월 금연 성공을 축하한다며 선물을 내준다.

‘휴대용 혈압계’란다.

올 12월에 한 번 더 와서 금연 결과를 테스트 받으란다.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12월에도 금연 성공이 확인 되면 그때는 더 좋은 기념품을 준단다.

금연지원센터 덕분에 금연을 쉽게 잘 하는데 게다가 선물까지 받다니…

설마 싶었던 금연지원센터가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이야.

완전 ‘꿩 먹고 알 먹고.’였다.

아니다.

본인 건강, 가족 건강, 깨끗한 주머니 등등 다 따지자면 훨씬 더 많겠지만

담배를 끊으면서 한 달의 담뱃값 15만원(5,000원×30일)까지도 매달 세이브가 되고 있다.

완전 一石三鳥인 셈이다.

이번의 금연,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해 본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 금연이어야 할 텐데…

다시는 이런 글은 쓸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은규로부터 “할아버지는 거짓말쟁이“란 말은 듣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런데 벌써 걱정이다.

아직도 담배연기가 거북하기는커녕 구수하고, 친구들이 피우는 담배가 맛있어 보이니…







갈 때마다 챙겨주는 금연 패치, 껌 등 보조제들



3개월 금연 성공 기념품으로는 종합비타민 등



6개월 금연 성공 기념품으로 받은 혈압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