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자갈 길. 2018. 4. 3. 23:05



2018. 4. 3. 화요일

나는 외손주들과 함께 만화 볼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선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헬스장에서 런닝머신을 탈 때는 곧잘 TV를 켠다. 그러고는 주로 바둑이나 여행 또는 예능 프로를 즐겨 보는데 그렇지만 채널을 돌리다가 종편방송인 MBN에서 교양프로그램의 하나로 방영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재방송되고 있으면 여기다 채널을 고정시키곤 한다.

'나는 자연이다.' 는 2012년 8월에 첫 방송이 된 후로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 밤에 1시간씩 방송 되고 있으니 5년도 훌쩍 넘긴 장수 프로로 두 개그맨이 2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산속 또는 무인도의 자연인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이다.

오늘도 나는 런닝머신 위를 걸으면서 채널을 무작정 돌렸더니 마침 한 채널에서 이 프로를 방송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보다보니 최근 것이 아니라 2015년 7월에 방송했던 150회의 재방송이었다.

건설현장, 뱃일, 택배, 목공소 등 온갖 일을 다했지만 가정의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져 결국 가족들과 헤어지고는 혼자 해발 600m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다는 당시 67세의 출연자는 6년째 맨발로 온 산을 누비며 칡, 느릅나무 뿌리 등 갖가지 약초를 채취해 차를 끓여 먹으며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산속에서 키운 닭과 거위가 낳은 알을 산마루 텃밭에서 재배한 부추와 함께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 게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2080년까지 즉 150세까지 그 산속에서 살기로 예약했다며 넉살을 부리는 출연자의 모습이 내눈에는 무척 평온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이 프로 출연자의 사연은 가지각색이었다.

젊게는 30대부터 70대까지의 자연인들은 그저 산이 좋아서 또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산중 생활을 하면서 도시에 남은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출연자들도 많았지만 사업 실패, 가정 파탄, 야반도주 등으로 현실을 도피하다시피 산속으로 들어와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험난한 산악 너머의 오지에 머물렀는데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빈 집을 적당히 손봐서 사는 경우가 많았고, 나름대로 기술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나무와 흙, 돌을 활용해 아주 괜찮은 집을 스스로 짓는 경우도 있었다.

자연인들이 산비탈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재배하고, 조그만 철망 닭장을 만들어 토종닭을 키우고, 또 틈틈이 산에 올라 약초나 과일을 채취하는 모습이랑 또 계곡이나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아 맛나게 먹는 모습, 온갖 산약초로 좋다는 약주는 다 다 담궈놓은 채 세상 시름일랑 다 잊은 듯 때때로 색소폰이나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땐 신선이 따로 없다 싶었다. 그 자리에 내가 있으면 정말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시골 출신이라 웬만한 텃밭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다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성격이겠다 또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520km의 도보여행까지 할 만큼 체력이 좋으니까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여기다 1년 동안이나 요리학원에 다녔으니 웬만한 요리는 할 줄 알겠다  또 수 년 간 색소폰을 배우고 수필이랑 詩도 몇 년째 쓰고 있으니 세상만사 다 잊은 채 산속 깊숙이 살면서 적당히 일하다 혼자 글을 쓰고 색소폰이나 불면 이게 바로 신선이 아닐까 싶었다.

자연인들의 산속 생활이 어쩌면 도시인의 로망이겠다 싶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자연인이다.' 의 시청율이 꽤 높단다.

종편방송의 어떤 프로보다 시청율이 훨씬 높을 뿐 아니라 가끔은 같은 시간대의 공중파 방송 드라마보다 인기가 좋다는데 그 이유는 이 프로의 주요 시청자인 청장년층의 대다수가 산이나 시골 생활을 한 경우가 많아 어렸을 적 생활이나 부모님대의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가족 부양, 직장 생활 등으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본 방송의 시청을 통해 속세에서 벗어난 생활 그 자체의 삶을 동경하고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즐겨 보기 때문이란다.

나도 이 방송을 볼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는 걸 보면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많이 보아서일까?

이제는 시청할 때마다 다른 생각이 들곤 한다.

몇 해 전에 방송된 5년 째 산중 생활하는 자연인이 직전 연도의 다른 공중파 방송에서 특별한 재주로 생활을 즐기는 도시인의 모습으로 소개되었던 게 알려지면서 조작논란이 일기도 했었지만, 깊은 산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신선처럼 사는 자연인들의 삶을 실제보다 미화한다는 생각과 너무 많이 방송하는데서 산중생활을 조장하겠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산 밖에는 어렵고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경쟁사회에서 일어나는 난관을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치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데…


이 프로가 살벌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의 몸과 마음을 다소나마 치유하는 좋은 기능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이 프로처럼 속세를 떠난 삶의 좋은 점만을 방송하는 종류의 프로가 많아진다면 부작용 또한 만만찮을 것 같다.

별 탈 없이, 별 걱정 없이 잘 사는 나도 이 프로를 보다보면 한번씩, 나도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하는데, 하물며 권력과 금력이 지배하는 지금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 걱정, 낙오 걱정, 생활 걱정, 취업 걱정 등 하루 하루의 삶이 고달픈 사람들이 이 프로 '나는 자연인이다.' 에서 늘 동경하는 삶의 장면을 보다보면 오죽할까 싶었다.

이들 모두가 신선이 되고자 한다면, 이들이 하나 둘 보따리를 싸들고 산으로 떠나면 어쩌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