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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을 걷다 (2)- 정동진…

자갈 길. 2017. 10. 1. 20:28

2017. 10. 1. 일요일

생각보다 몸이 가뿐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스트레칭을 해서일까 전날 밤의 피로 중 8,90%는 사라진 것 같았다.

새벽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던 중 '먼 길을 걷다 보면 눈썹 하나도 무거울 때 있다.'라는 옛말이 생각나서 며칠 동안 깎지 않아 제법 덥수룩해진 수염을 말끔히 밀고는 준비를 단단히 한 다음 모텔을 나섰다. 

주문진항을 벗어날 무렵 동녘하늘이 불타는 듯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멋진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바닷가에 앉아 먹는 한 줄의 김밥과 따끈한 두유는 얼마나 맛이 좋았던지 내겐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아침식사였다. 강릉으로 향해 걸었던 해안도로는 참 장관이었다.

바다를 바로 옆에 두기도 했지만 아름드리 소나무가 멋을 더했다.

특히 강릉해변의 보행로는 전국 최고일 것 같았다. 

모래사장을 따라 충분히 수십 리는 될 듯한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은 어찌 그리 멋있던지 마치  한 폭의 그림이었다. 또 솔향 좋은 그 소나무들 사이로 난 흙길 보행로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 본 도로 중 최고였다. 강릉시민들이 부러웠다. 매일매일 열심히 생업에 힘이 들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만 강릉해변을 찾는다면 쌓였던 스트레스는 시원한 바닷바람에 날아가버릴 것 같았고, 해변의 소나무가 내뿜는 솔향과 맑은 공기를 가슴에 듬뿍 담는다면 병원에 갈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소나무 사이에 현수막 하나가 눈에 뜨었는데, 숲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알리는 내용으로 정말 딱 맞는 말이었다.

내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어제는 못 느꼈던 배낭의 무게가 더 넣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무겁게 느껴졌다.

엉치뼈가 아프고 보행속도가 뚝 떨어졌다. 아무래도 어제만큼 걷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강릉해변을 벗어나 안인해변으로 가는 길은 바닷가에서 한참 떨어진 산길인데도 분위기가 좋아 힘이 덜 들었다. 

오랜만에 노랗게 잘 익어가는 탱자나무도 보고, 옛날 할머니들이 담뱃대로 많이 썼던 가느다랗고 마디가 없는 시느루 대나무를 가지런히 심어 울타리로 가꾼 아주 멋진 농가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시골길을 걸었다.

 

어제저녁부터 약간 불편하던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더 불편했다. 양말을 벗고 살펴보았더니 이런∼.

작은 물집이 하나 생겼다. 물집이라니… 3년 전엔 열흘을 걸어도 아무렇지 않더니 겨우 어제 하루 걸었는데 물집이 생기다니…. 첫날 48km를 걸었으니 너무 무리한 탓일까? 아니면 3년의 세월만큼 내가 늙어 세포의 노화 때문일까?

아카시아 가시를 따다 물집을 터뜨렸다. 쓰라리어 당장은 걷기가 더 불편했다. 

하지만 한참을 약간 쩔룩이며 걷자 쓰라림은 조금씩 줄어들고…

그때쯤 안인해변에 도착했다.

안인해변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길은 정말 지루했다.

7km 조금 넘는 길로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길인데도, 산길을 오르내리고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하는 길이라 지루하고 힘이 들었다. 더구나 중간중간에 자전거 도로가 없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만 있었는데 이 구간에는 갓길조차 없었으니 온 신경을 세우고 걸어야만 했다. 게다가 흐리기만 할 뿐 하루 종일 괜찮던 하늘이 간간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으니….

 

마침내 정동진.

나는 정동진에 처음 왔다.

그런데 전혀 낯설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익숙한 '정동진'이다.

한 번은 꼭 오고 싶었던 곳이다. 

외손주인 원준과 세은이의 아빠, 그러니 내 사위의 이름이 바로 '정동진'이기 때문이리라.

정동진해변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황금연휴이지만 명절을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니….

인천공항이 출국인파로 북새통이라더니 국내 관광지를 찾는 사람도 많은가 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싶었다.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별로 없다 싶었다. 나처럼 혼자서 먼 길을 돌아다녀도 겁날 게 없을 만큼 치안이 좋은 데다,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틈만 나면 해외로 해외로 여행을 나가거나 아니면 국내 명승지를 찾아 여행을 하고 있으니 어찌 살기 힘든 나라라고, 떠나고 싶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사위집에 온 셈 치고 일찍부터 푹 쉬고 싶었다.

그러네 오늘은 어제보다 30분 정도 짧은 11시간 18분을 걸었는도보거리는 근 10km나 적은 38.26km밖에 못 걸었으니 더 걸어야 했는데…….. 그렇지만 비도 뿌리고 너무 힘들었다. 모텔을 찾았지만 만실이다. 빈방이 없단다.

세 곳에서 헛걸음을 하고 네 번째 찾은 모텔.

마침 빈방 딱 하나가 남아있었으니…

행운이 이어진 해피한 하루였다.

 

 

 

 

 

 

 

 

 

 

 

 

 

 

 

 

 

오늘 점심은 강원도의 별미옹심이로…

 

 

 

촌놈이라 그런지 노란 탱자만 보이면 고향 생각이…

 

시느루 대나무 울타리가 아름다운 농가

 

 

 

드디어 오늘의 숙박지인 정동진해변

 

정동진해변의 모래시계

 

오늘의 도보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