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손주들 모습에서 배운다.

자갈 길. 2017. 7. 2. 23:09



2017. 6. 30. 금요일

오후 4시, 은규를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었다.

집사람에게 넌지시 같이 가자고 했더니 선뜻 선심을 썼다.

기왕이면 세은이도 데리고 가자는 내 말에 집사람은 흔쾌히 OK를 하고는 서둘러 세은이와 은규가 차에서 먹을 간식거리로 수박, 바나나 등 과일들을 챙겼다. 먼저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서초한별 어린이집으로 가서 세은이부터 픽업했다.

세은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폴짝 폴짝 뛰면서 오다가 내 차를 가리키며 얼굴에 함박꽃을 활짝 피웠다.

차에 태우자마자 은규오빠한테 가자며 더 좋아라 하는 정세은.

할머니랑 뒷자리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온갖 애교를 다 떠는 세은이를 태우고 운전하자니 더없이 좋았다.

어린이집에서 세은이를 맞은 은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내 동생 세은이예요."라며 자랑하기 바빴다.

또 손을 잡고 다니며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들의 이름을 알려주기도 했다.

잠시도 그냥 있지 않고 "세은아, 세은아" 부르며 데리고 다니는 은규.

그때마다 "은규오빠, 은규오빠" 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세은이…

다정스런 모습은 이종사촌이 아니라 마치 친남매 같았다.

돌아오는 차 속.

늘 그랬듯이 은규는 뒷자리에 장착된 자신의 카시트를 세은이에게 양보했다.

그러고는 뒷좌석의 가운데인 세은이 옆자리엔 은규 자신이 앉고, 맨 오른쪽엔 할머니를 앉게 했다.

은규와 세은이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재잘재잘거리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번갈아 두 손주들 입에 과일을 넣어주는 집사람도 즐겁고, 백미러로 이 광경을 힐끔거리는 나도 즐거웠다.

절반쯤 왔을까? 세은이가 덥다며 카시트에서 꺼내 달라고 했다.

은규는 세은이를 쳐다보면서 "안된다, 세은아"를 반복하지만 세은이는 "싫어 싫어"를 반복하고…

몇 번 말리던 집사람도 어쩔 수 없었던지 세은이를 꺼내 안았다.

그러자 은규가 무서워 보이게 하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곤 나무라듯 말했다.

"세은아 카시트 앉아야 돼"

그렇지만 세은이는 토라지듯 대꾸했다.

"싫어 싫어"

오빠노릇 하려는 은규와 지기 싫어하는 세은이가 제법 토닥거렸다.

"세은이랑 안 놀아"

"…………"

은규의 최후 통첩에도 세은이는 묵묵부답.

세은이와 은규의 심각한(?)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CD에서 동요만 들려올 뿐 한창 동안 차 안은 조용했다.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와 같은 색소폰 동호회의 회원인 A 사장이었지만 운전 중이라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보았더니 A 사장이 보낸 카톡이 여러 건이나 있었다.

열어보니 지금 동호회에서 짐을 뺀다면서 인사도 못하고 떠나 미안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집밖으로 나와 A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운전하느라 전화를 못 받았다고 양해를 구하자 A 사장은 며칠 전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6월 19일 수요일.

오후 2시쯤이었다. 동호회 개인룸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큰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나가 보았더니 동호회 운영자인 李 사장과 A 사장, 그리고 A 사장의 초등학교 女동기인 B회원이 휴게실에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몇 주 전부터 그들사이의 분위기가 좀 냉랭하다 싶었지만 모르는 채하고 지내던 중 하루는 李 사장이 내게 하소연을 하고, 또 하루는 A 사장이 내게 하소연을 하길래 "그러지 말고 李 사장과 A 사장 단 둘이 마주앉아 직접 대화를 하면서 섭섭함과 오해를 푸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더니 둘다 그러겠다고 하더니 왜 이러나 싶었다. 못 본 채하고 돌아서는데 언성은 점차 더 높아지더니 급기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험담까지 쏟아내며 파국으로 치달았다.

내가 끼어들었다.

아니 그냥 보고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색소폰 동호회는 2013년 말경 현재의 운영자인 李 사장과 색소폰의 大家로 그의 切親인 K 사장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나는 2014년 1월 말 회원으로 등록했다. 내가 등록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난 2014년 4월쯤이었을까? 강북의 다른 색소폰 동호회에 다니던 A 사장과 그의 초등 女동기인 B 회원이 우리 동호회로 옮겨왔다. A 사장은 색소폰을 시작한 지 몇 해나 되어 從前의 동호회에서 회장을 맡을 만큼 연주실력도 좋았지만 그의 친구 B 회원은 갓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들과 통성명하면서 고향, 나이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둘다 고향은 내 고향 청도와 가까운 대구였고 나이는 동호회 운영자 李 사장, 운영자의 절친 K 사장, 그리고 나와 같은 甲午生 말띠였다. 그래서 말띠 갑장인 우리 다섯은 무척 친하게 지냈다. 한동안은 다섯명이 매월 한 번씩 저녁식사를 겸해 한잔하고는 운영자 절친 K사장이 운영하는 가게의 무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곤했다. A 사장과 B 회원은 음악에 대한 재능도 좋았지만 열정도 대단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호회에 나와 연습을 하고 꾸준히 레슨 받은 덕분에 실력은 일취월장해 동호회 내에서는 실력자가 되었다. 또 성격이 활달하고 사교성도 좋아 동호회 행사에 적극 참여해 대부분의 훤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운영자 李 사장도 그들을 무척 배려했다. 월례 연주회 등 동호회 행사 일정을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날로 조정한다고 다른 회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으니까…. B회원은 일 년 전부터 동호회의 총무까지 맡았다. 자체 연주회 등 동호회의 행사가 있으면 총무인 B회원과  A사장은 운영자를 도와 일정 조율부터 마무리까지 하느라 애를 많이 쓰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3월인가 4월인가, 야마하 색소폰의 판매사인 한국 야마하의 관계자들이 참관하는 자체 연주회의 일정이 총무인 B회원이 참석하지 못하는 날로 잡히면서 불협화음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16일 저녁 양재천변에서 있었던 연주회의 일정이 잡히면서 또 오해가 생겼다. 6월의 양재천변 연주회가 금요일인 16일로 공고되자  월, 수, 금요일 저녁엔 외손주들을 돌보느라 시간 여유가 전혀 없는 B회원은 속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자신이 금요일엔 참석 못한다는 건 회원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도 운영자가 연주회 일정을 일부러 금요일에 잡았다고 오해한 것이다. 실상은 양재천변의 무대는 서초구청이 관리하기 때문에 서초구청에서 개방하는 날에만 이용가능할 뿐 아니라, 서초구청이 올 6월부터는 수요일과 금요일에만 오픈한다면서 관내 음악 동호회로부터 수요일과 금요일만의 이용신청을 받았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동회회서는 세번 째 금요일로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는데…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

운영자 李 사장과  A 사장 그리고 나는 인근 음식점에서 막걸리 잔을 주고 받았다.

막걸리 빈통을 하나둘 쌓으면서 처음 만났을 때의 좋은 기억과 3년 간의 즐거웠던 추억도 꺼냈다.  

그간 섭섭했던 점들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A 사장은 양재천 행사의 준비와 진행과정과 그간 B 총무가 느꼈다는 불만도 대신 전했다.

동호회란 같은 취미를 가진 자들의 모임이지만 많은 회원들이 나름대로 개성이 있는데 어찌 불평 불만, 섭섭함이 없으리오만, 옆에서 듣자니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총무는 자신이 얼마나 애쓰는지 운영자 李사장은 잘 알면서도 감사 표시를 잘 하지 않음에 서운해 했고…

운영자는 자신이 너무 참견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한 발 물러서서 있는데도 총무는 관심 부족으로 보는 게 서운했고…

또 李사장은 회원들이 섭섭함과 불만을 당사자인 운영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다른 회원들과 공유하였음에 서운해 하고…

알고보니 짜장면 한 그릇이면 충분히 풀릴 사소한 데서 싹튼 섭섭함이 조금씩 조금씩 자란 듯 보였다.

그렌데 조금 전 동호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너무 심한 말까지 쏟아내고 말았으니…

하지만 우리는 곧 우리의 나이를 상기하면서 이별타령을 했다.

이별은 피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어떤 이별이던 이제는 아름다운 이별로 만들 나이라는 데는 우리 셋다 공감했다.

이무렵 나의 은행 동료였지만 A 사장의 초등학교 1년 후배인 J 회원까지 연습을 마치고 술자리에 합석했다.

막걸리 빈병이 더 많이 쌓이는 동안 운영자 李 사장은 A 사장에게 자신의 운영 미숙과 과오를 사과했다.

그러자 A 사장은 그간의 섭섭함과 오해를 다 털어내기로 했다.

친구인 B 회원도 지난 섭섭함을 다 털고 동호회에 그냥 남도록 설득해보겠다고 했다.

우리 셋의 붉어진 얼굴만큼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훗날의 이별은 더 멋진 술자리에서 웃으면서 헤어지자는 내 제안에 모두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때 마신 막걸리는 아직 소변으로 빠져 나가지도 못했을 시간인데…

일주일 사이에 도대체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운영자 李 사장이 오늘 A 사장과 B회원에게 짐을 빼라고 통보했단다.

지난 3년 간 다른 어떤 회원들보다 친하게 지내던 사이인데…

불과 며칠 전에 화해의 술자리까지 만들어 사과한 李 사장인데…

A 사장도 섭섭함과 오해를 잊고 새출발하기로 했었는데…

나는 모든 게 잘 풀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 늦게 합석했던 J 회원도 나오면서, 잘 마무리 되어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웃으면서 헤어지는 아름다운 이별이 이다지 어려운가 싶었다. 


길었던 A사장과의 전화를 마치고 들어선 거실.

우리 은규와 세은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파에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 보기 좋다. 우리 어른들은 왜, 저 세 살 아이랑 다섯 살 아이처럼 지내지 못할까?'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마음이 부러웠다.

어른들의 마음이 세파에 찌들어서 그런 걸까….

마음도 꺼내서 물에 씻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