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예전리 출신 관조(觀照)스님
예전리 출신 관조(觀照)스님
“꽃은 봐달라 않는데 산승은 자꾸만 봅니다”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가
마하가섭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화두를 풀어내기 위해 택한 방편은 사진이었습니다.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관조스님(1943~2016)은 사진작가다. 사진 작업을 자신의 수행과 포교의 방편으로 삼았다. 관조스님은 1976년부터 30년간 전국의 사찰과 자연을 사진으로 표출했다. 사찰 건축의 아름다움과 섬세함, 계절따라 다르게 보이는 사찰의 풍광, 그리고 출가수행자의 일상의 단면 등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일러주었다. 스님의 사진은 우리 불교를 세계에 알리고 한국 수행자의 구도정신을 드러냈다. 20여 만장에 담긴 작품들은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우리 현대불교사의 중요한 자료가 됐다.
해인사 강주를 지내고 범어사 총무국장 소임도 맡았으며, <법화경> <서정> <방거사 어록> 등을 번역하기도 한 스님이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누비니 당시로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스님이 왠 카메라야 하며 단순한 취미요, 일종의 호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관조스님은 사진에 대한 스스로의 뜻이 있어 묵묵히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새벽 산길을 걷다 문득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부처이고, 부처 아닌 것은 산승밖에 없습니다. 오래 전에 집을 나선 산승이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가?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자리에서 떨어진 꽃을 들어보이자 문득 미소로 답한 마하가섭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이러한 화두를 풀어내기 위해 산승이 택한 방편은 사진이었습니다.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광대한 우주공간의 그 어느 것이나 다 부처의 법신입니다.
산승은 그러한 부처님의 말씀과 숨결을 사진에 담으려 했습니다. 옛 선사들이 남긴 말씀을 우리는 공부하고 깨우칩니다. 글을 몰랐던 육조혜능을 단박에 깨치게 한 말씀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금강경>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좋은 사진 한 장은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을 잡아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말입니다. 봄이 되니 꽃이 좋습니다. 꽃은 보아 달라고 하지 않는데, 산승은 자꾸만 봅니다.” (2005년 여름, 관조 합장)
2005년 7월 ‘깨우침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사진집의 서문이다. 스님의 열반 1년 전의 글이라 새삼 깊은 울림을 갖게 한다.
관조스님은 생전에 약속한대로 법구를 동국대 병원에 기증했다. 상좌로는 승원, 승련(김해 백운암 주지), 승명(선방 수좌) 단 3인이다.
“저는 은사 스님의 사진을 당신의 사리라고 봅니다. 사리는 계·정·혜 삼학과 육바라밀을 겸수한 수행의 결정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저는 스님의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수행의 결정체로서 스님의 사리라고 믿습니다. 또한 스님의 수많은 사리들이 세상을 깨우치고 맑히는 지혜의 법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974년 17살 나이에 범어사로 출가해 관조스님을 은사로 모신 맏상좌 승원스님은 스승의 운전기사이면서 보조자로 전국을 누볐다. “아직 안 일어났나? 아직 꿈속이재?” 특유의 경상도 억양으로 상좌를 깨우던 스승의 다그침을 잊을 수 없다는 승원스님.
승원스님은 스승이 남긴 필름들을 디지털로 전환해 자료를 주제별로 정리하고 있다. 작업이 끝난 필름은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봉안키로 했단다. 스승을 모시고 사진 찍는 현장을 누볐고, 스승이 가신 후 스승의 유품을 정리하는 승원스님을 일러 주위에서는 ‘효상좌’라고 한다.
어느 상좌가 스승을 그렇듯 생전이나 사후에 모실 수 있느냐는 거다. 특히 스승이 남긴 업적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그 중요성과 가치를 잘 이해하는 상좌이기에 그 일을 하는게 아니냐는 거다. “있는 그대로 살아라. 꾸미지 말고 속이지 말라”는 스승의 당부를 늘 마음에 담고 산다는 승원스님이다.
“관조스님은 뚜렷한 주관을 갖고 꿋꿋하게 살다가신 분입니다.” 관조스님처럼 사진작가로서 수행하고 있는 석공스님의 말이다. 작품스타일에 대해서 석공스님은 “관조스님은 정적인 것을 주로 찍었다”고 한다. 탑이나 문살, 수미단, 바위, 이끼, 겨울 눈속의 절 풍경 등 정적인 것에 치중한 작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관조스님의 카메라는 큰 것이 아니었다. 중형이었다고 한다. 석공스님도 관조스님과 함께 사진 찍으로 많이 다녔다. “함께 가도 관조스님은 말을 잘 않으시는 과묵한 편이었습니다. 서로의 관점이 다르고, 작품 스타일이 다르니까 각자 자기 작품에만 몰두하는 거지요.”
20여년 전 일이다. 충남 아산에 있는 인취사에 갔다. 백련이 빼어난 절이라서 그 연꽃을 찍으러 갔다. 가는 날, 카메라를 연꽃에 들이댔는데 그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관조스님은 “그만 가자”며 카메라를 거두었고, 석공스님은 “스님, 찍고 갑시다”했다. 관조스님은 석공스님이 다 찍을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고 한다.
사진은 언제나 조건이 다 갖추어지지 않는다. 못찍고 돌아와도 서로가 말을 않았다고 한다. 오늘 안되면 내일 하고, 금년에 안되면 내년에 가면 된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다보면 성정도 많이 느긋해지고, 부드러워진단다.
범어사 안심료 앞 관조스님의 방 앞을 지날 때, 불이 켜져 있으면 ‘아, 스님이 계시는구나’ 했는데, 스님 가시고 난 후에는 근 1년여 그 방 앞에 가지지 않았다는 석공스님. 두 분의 관계를 잘 아는 불자들은 “관조스님이 안계셔서 스님은 어찌 지내십니까”라고 스님을 위로한다고 한다.
“49재 지내고 찐하게 울었어.” 관조스님을 회상하는 석공스님의 말이다.
관조스님의 평생도반인 자광스님은 “관조스님 사진은 법문이다. 스님은 설법을 사진으로 대신했다”고 말한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다. 천지만물이 부처 아님이 없다”고 관조스님은 늘상 말했단다. “내 카메라에 담긴 모든 것은 나와의 인연이라”는 관조스님. 자광스님은 “관조스님은 나의 스승”이라고 한다. 만날 때마다 스쳐가는 말인냥 하면서 자기를 일깨웠다.
금정산 돌무덤에 둘이 앉아 애기할 때였다고 한다. “금정산 바위는 그대로 스님이다. 네가 입고 있는 옷은 바위색이잖느냐. 바위는 부동(不動)이다. 부동심으로 살아라”고 일렀던 관조스님. 자광스님은 당신 책상 머리에 관조스님 사진을 걸어두고 있다. “관조스님과 나는 생사없는 경계에서 늘 같이 있습니다.”
관조스님의 삶과 수행
사진으로 담은 한국불교의 미
관조스님은 1943년 3월19일(음 2월7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에서 아버지 고성이씨 종현(鍾炫)과 어머니 청도김씨 외선(外善) 사이에서 6남5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한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스님은 부친에게서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14살에 출가한 스님은 17살 되던 1960년 1월15일 범어사에서 지효스님을 은사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법명은 성국(性國)이다. 1965년 7월15일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듬해 은사이신 지효스님에게서 관조(觀照)라는 법호를 받았다.
1966년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하고, 1971년 해인사 승가대학 제7대 강주를 역임했다. 1976년 범어사 총무국장 소임을 끝으로 일체 공직을 맡지 않았다. 이후 범어사에 주석하면서 사진작가로 지내며 10여 차례의 전시회와 20여 권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관조스님의 사진은 필터나 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단순함과 담백함을 보이고 있다. 1980년 <승가 1>을 시작으로 <열반> <자연> <생멸 그리고 윤회> <님의 풍경> 등 20여 권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그 중 <사찰 꽃살문>은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에 선정됐다.
1986년 아시아게임 경축사진전, 1988년 한국일보 올림픽 문화행사 초청 전시, 2003년 ‘관조스님 사찰 꽃살문 사진전’을 국립 청주박물관에서 시작해 광주, 제천, 부산, 서울 등지의 국립박물관 순회전을 가졌다.
독학으로 사진예술을 창출한 스님은 1978년 부산미전 금상, 1979년 동아미전 미술상, 1998년 현대사진 문화상을 받았다. 2006년 11월20일 범어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64세, 법랍 47세. (2016.11.30. ‘불교신문’3253호/ 이진두 논설위원)
도움말/ 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스님, 범어사 주석 석공스님 , 대구 관오사 회주 자광스님. 자료/ 관조스님 문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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