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한진해운" 사태를 보면서

자갈 길. 2016. 9. 10. 01:40
 

한진해운이 망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2011년부터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한진해운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2016. 4. 25.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한 다음, 자구안을 수 차례나 수정하면서 제출하였으나 그룹차원의 최종 자구안이 2016. 8. 25. 마지막 채권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자 9월 4일 채권단 자율협약 종료를 앞두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면 처리의 주도권이 채권단에서 법원으로 넘어가 법원에서 선임한 법정관리인이 회사의 회생가능성을 파악해 회생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채무조정 등으로 살아남게 되지만,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청산절차를 밟게 되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의 경우 청산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그런데, 한진해운이 어떤 회사인가?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진해운으로 출발해 지금은 운송능력이 국내에서는 부동의 1위요,  세계에서도 7위나 되는 글로벌 해운사이다. 이런 대기업이 무너진 것이다.

한때는 한진그룹 내 알짜배기 회사였던 한진해운이 망하게 된 이유는 뭘까? 

첫 째는 세계경제의 침체로 무역량이 둔화되면서 물동량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운임이 큰 폭으로 떨어진 이유도 있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총매출액의 15%를나 차지하는 용선료가 문제란다. 용선료란 해운사들이 빌려서 운영하는 선박의 임대료를 말 하는 것이다. 한진해운이 예전에는 선박 대부분을 자사 소유의 선박으로 운용하였으니 IMF를 겪으면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사 선박 중 절반 이상을 매각하고 부족한 선박을 용선(임차) 선박으로 대체했다. 그래서 지금은 한진해운이 운용하는 전체 선박 중 용선 선박의 비중이 60%를 넘는다고 한다. 다행히 이후 얼마간은  세계경제의 호황으로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운임이 올랐다. 그러자 한진해운은 2005년부터 비싼 용선료 조건의 10년 이상 장기 기간으로 용선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다시 금융위기 등으로 세계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각국의 무역이 둔화되어 물동량의 감소하니 당연히 운임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로인해 배 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된 한진해운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2020년까지 꼬박꼬박 내야할 용선료는 해마다 1조원이 넘는단다.

2011년부터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면서 2015년 말에는 부채비율이 800%를 넘었다

지금의 현상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불과 2,3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경영진의 잘못이 가장 크다 하겠다.

한진해운의 파산은 당연하다.

이번 한진해운의 파산에 긍정적인 면도 없지는 않다.

경제계에서는 이젠 '大馬不死' 란 말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대기업도 방만하게 경영을 하게되면 망하게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그런데…

파장이 너무 크다.

어떤 전문가들은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란다.

조선산업과 해운업에 의존도가 무척 높은 부산 경제가 휘청거린다.

실업 위기에 놓인 수 만의은 해운관련 노동자들이 연일 곳곳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진해운이 40여 년이란 긴 세월을 바쳐 세계 곳곳에 구축한 40여개의 네트웍과 물류 시스템이 붕괴할 지경이다.

한진해운에 선박을 빌려준 각국의 船社들이 밀린 용선료를 받기 의해 한진해운의 배와 선적된 컨테이너를 가압류하기 시작하고, 세계 곳곳의 항구에서는 한진해운 선박의 입항을 거부하고 있으며, 각국 항구에서는 하역자들은 하역료를 걱정하며 한진해운 선박에 선적된 컨테이너의 하역을 거절하고 있다. 한진해운 선박에 수출품을 실은 수출업체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수출업자가 수출품을 수입업자에게 약속한 기일까지 인도하지 못하면 클레임이 걸려 수출이 취소되거나 손실을 입게 되는데, 전문가들은 이번 한진해운 사태로 발생될 수 있는 손실액을 최대 17조원으로까지 추정하고 있다. 해진해운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지금까지는 뚝 떨어져 있었던 운임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해운사의 운임이 크게 오르면 이 또한 수출로 나라 경제를 이끄는 우리나라에게는 치명적이다.

운임이 인상되면 수출품 단가가 올라가게 되므로 당연히 수출 경쟁력을 잃기 때문이다.

초가삼간만 태우는 게 아니라, 이 불이 온 동네를 덮칠 지경이다.

반면 외국의 해운사들은 얼씨구나 춤을 추고 있을 것 같다.

세계 7위의 해운사가 파산하게 되었으니, 외국의 해운사들은 물동량 확보에 훨씬 수월해진데다 운임마저 크게 인상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들의 주가가 연일 급등한다는 소식이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참 무서운 세상이다.

 

그렇다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경제지식이 짧은 나의 소견은 이렇다. 

 

1) 차선책이지만, 지난 8월 25일 자율협약에서 채권단이 한진그룹 차원의 자구안을 받아들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한진그룹이 제시한 자구안이 채권단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해서 채권단의 부담과 위험이 너무 크긴 했지만, 우리나라가 당면할 경제 전체를 위하여 일단은  한진해운을 살려놓은 다음, 대주주의 경영권 포기, 대폭적인 감자(減資), 공적자금 투입, 국영화 등을 도모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렇지만 채권단은 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긴, 만약 채권단이 이런 결정을 했다면 재야단체를 비롯해 노동계, 일부 정치권 등에서는 '세금을 대기업에 퍼주는 정경유착' 또는 '또 대마불사' 등의 용어를 쓰면서온갖 반대와 정부와 관계기관을 비난할 것이 뻔하다, 그런데다 채권단 또한 만에 하나 한진해운을 살렸음에도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하지만 한진해운의 파산 시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미칠 영향을 정치권에 소상히 설명한 다음 정치권과 함께 국민들을 설득했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2) 내가 생각하는 최선책은 한진그룹의 총수가 전면에 나섰으면 어땠을까 싶다.

대국민 담화에서 한진해운의 부실경영을 사죄하면서 먹고 살 만큼만의 재산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한진해운 정상화에 바치겠다고 선언한 다음, 경영권과 지분 모두를 포기할 테니 국영화를 해서라도 한진해운을 살리고 노동자를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었더라면 국민들도 한진해운의 생존에 박수를 치면서 멋진 기업인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데'

 

우리나라는 국가 부도상태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 11월.

그때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일본 4대 증권사 중 하나였던 아마이치 증권사가 창업한 지 101년만에 파산하게 되는데, 야마이치 증권의 쇼헤이 노자와 사장은 TV에 나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파산을 선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를 포함한 경영진이 나빴습니다. 사원들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이어서 또 이렇게 부탁하며 울부짖었다.

"7,500명의 사원과 그 가족을 생각하면 괴롭고 미안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선량하고 능력있는 우리 직원들의 재취직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제발 도와주십시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멋진 경영인들이 언제쯤 나올까?

  

 

 

 

(사원을 걱정하며 눈물로 호소하는 야마이치 증권 노자와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