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가족여행(2)
제이제이하우스를 떠나 도착한 수트라 하버 리조트.
5성급 초호화 수트라 하버 리조트는 47만평의 규모에 퍼시픽 수트라 호텔, 마젤란 수트라 리조트, 수트라 하버 마리나 컨츄리클럽, 수트라 하버 골프 컨츄리클럽으로 구성되어 있어 코타키나발루에서도 대표적인 휴양지란다.
우리가 체크인해서 들어간 곳은 바다와 수영장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마젤란 리조트 2층
원준이네는 520호, 우리 부부는 521호, 은규네는 522호.
가방을 풀기도 전에 원준이와 은규, 세은이는
우리 방에 모여 침대 위를 뒹구느라 신이났다.
넓직한 침대에 누워
세 손주들이 모여 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좋았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있으니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었다.
수영장이 5곳이나 있었다.
수영을 배우고 있는 원준이는 완전 물 만난 물고기였다.
물미끄럼도 잘 타고, 잠수도 잘 했다.
4살 은규도 달라졌다.
작년 괌여행 때는 물을 엄청 무서워했다던데,
형아와의 물놀이에 재미가 들어 물밖으로 나오지 않겠단다.
그렇지만 세은이는 아직 물이 무서운 모양이다.
안고 물에 들어가면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하지만 찰싹 달라붙는 세은이의 촉감이 얼마나 보들보들하던지…
아무리 좋은 비단도 이보다 더 부드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세은이는 아예 할아버지 껌딱지가 되었다.
앉을 때는 내 무릎 위에 앉고,
어딜 갈 때는 내 손을 잡자거나 안아 달란다.
세은이의 하는 짓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고, 너무 예뻤다.
원준이 오빠, 은규 오빠 만큼 받지 못한 사랑을 이번 여행에서 다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런 사랑스러움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이란 말이 생겼나 보다.
틈만 나면 손주들과 수영장에 가고,
좀 피곤하다 싶으면 방에 올라가 쉬고…
목이 마르면 Bar에 가서 맥주나 차를 마시고…
손주들과의 놀음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이었다.
나와 아내, 두 딸과 두 사위, 그리고 세 손주, 이렇게 9명이 다 모여
태평양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며 첫 저녁식사를 할 때는
이게 진짜 휴양(休養)이고, 행복이구나 싶었다.
집사람도 해변의 석양 분위기에 대해 대만족을 표했다.
게다가 청소를 안 해도 되고, 식사준비도 안 해도 되니 여행은 언제나 좋단다.
서빙하는 사람이 다가오자 원준이가 말을 걸었다.
"아이 엠 코코넛쥬스."
그러자 잠시 뒤 빨대를 꽂은 코코넛이 나왔다.
다음날은 아침식사를 끝내자마자 수영장행이다.
이 수영장에서 한참을 놀고, 또 다르 수영장에서 놀고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또 원준이가 서빙하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아이 원어 코코넛쥬스"
어제는 '아이엠‥' 하더니, 하룻새 '아이원어…'로 바뀌었다.
엄마한테 새로 배운 모양이다.
그러고는 식사 때마다 "아이 원어 코코넛쥬스"가 아니면
"아이 원어 망고쥬스."라고 한다.
제대로 주문하는 원준이가 더 귀엽고 대견스럽다.
이래서 요즘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해외여행에 데리고 다니는구나 싶었다.
한나절을 물에서 놀았더니 어깨는 화끈거렸다. 햇볕에 익은 모양이었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밤이 되자 아이들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정 서방이 각 방에 맛사지사 한 명씩, 세 명을 불렀다.
화끈거리를 어깨는 불이 붙은 듯 따갑고,
웬 여자의 손아귀 힘이 그리 세든지…
그녀가 종아리를 맛사지할 때는
시원하면서도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음날은 Sea Quest에서 보트를 탔다.
보트가 속력을 내자 원준이는 신이났지만,
은규와 세은이는 무서운지 엄마 품속을 파고들고….
우리 가족들만 태운 보트가 파란 바다를 가르며 20여 분 달렸을까?
쪽빛 바다 위에 길게 늘어 선 나무다리가 보이고, 곧 울창한 숲과 은빛 모래해변이 나타났다.
마누칸 섬이란다.
쪽빛 바다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녔다.
식빵을 든 손을 물속에 넣으면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손가락까지 툭툭치며 식빵을 뜯었다.
세은이도 은규도 물고기에게 빵을 던져주는 재미에 빠졌다.
빵이 떨어져 없는데도 자꾸만 더 주고 싶단다.
원준이가 아빠와 함께 스노쿨링을 즐기는 새
은규는 아빠와 얕은 바다에서의 물놀이 재미를 붙였다.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푹 잔 세은이는
할아버지랑 모래성을 쌓고…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오전 내내 수영장과 방 그리고 바(Bar)를 들락거리다.
두 개의 방은 체크아웃을 한 다음 짐들을 한 방으로 옮겨야 했다.
밤 12시 30분의 비행기를 타야하기에 공항으로 떠날 10시까지 머물기 위해
하나의 방은 하룻밤을 더 예약해 둔 것이다.
손주들과의 신나는 물놀이를 끝내고
세 명씩 교대로 맛사지를 한번 더 받은 다음
해 떨어진 해변에서 불꽃쇼를 보며 해산물로 차려진 저녁식사를 했다.
마지막 식사까지 끝났으니 짐을 싸야 할 시간
여행가방을 열자 커다란 가방의 공간을 1/4이나 차지한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거친 숨소리에 기침을 자주 하는 은규를 위해 소아과에서 대여해 준
호흡기 치료기 레블라이즈와 아기를 안고 재울 때 둘러매는 아기띠였다.
맑은 공기 덕분인지 은규는 기침을 거의 하지 않고 숨소리마저 맑아졌으니 레블라이즈는 한번도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혹시 은규나 세은이가 쉬이 잠들지 못하면 내가 아기띠를 둘러 안고
바닷가를 거닐며 재울 작정으로 가져온 아기띠도, 아이들이 종일의 물놀이에 녹초가 되어
너무 쉽게 잠들어 버렸으니… 아쉽게도 내 어깨에 걸칠 일은 한번도 없었다.
이곳은 우리 손주들에게 천국이었지만 우리들에게도 천국이었다.
밤 열시가 되어가자 정 서방이 승합차를 불렀단다.
우리를 공항으로 데려 갈 승합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