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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 인생의 우렁각시

자갈 길. 2016. 4. 26. 23:41

 

내 인생의 우렁각시

이 석 도

 

   라디오에서 청취자가 참여하는 방송이 한창이었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노총각이 밭에서 주워 온 우렁이가 예쁜 처녀로 변신해 몰래 밥을 지어 놓고는 도로 우렁이가 되는 전래 동화 [우렁각시]의 내용을 소개했다. 그러고는 청취자들에게 ‘내 인생의 우렁각시’는 누구인지 들려 달라며 참여를 당부했다. 금방 많은 청취자들이 문자를 보냈다

   처음 소개된 청취자는 어려울 때마다 큰 힘이 되고 있는 친구가 자신의 우렁각시 라고 했다. 다음 참여자는 자신의 우렁각시는 학창 시절 자취생활을 할 때 엄마 몰래 맛난 반찬을 자주 가져다 준 주인집 딸이라고 했다. 그리고 잘 키워주신 부모님을 꼽는 사람, 평생을 같이 하는 아내를 꼽는 청취자, 아내가 없을 때마다 밥을 잘 차려주는 딸을 이야기하는 등등, 참여자 모두에게는 나름대로 우렁각시가 있었다.

 

   ‘그럼, 내 인생의 우렁각시는 누구일까?’

   낳아서 잘 길러 주고 빈농의 어려움 속에서 공부까지 시키신 부모님, 진학을 고민하며 방황할 때마다 꿈과 희망을 가지도록 잘 이끌어주신 담임선생님, 은행생활 중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구조조정과 같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나를 걱정하며 예금 실적을 비롯해 많은 도움을 주신 재일교포 회장님, 또 엄마가 아들네를 보살피듯 우리 가족의 생일부터 대소사까지 살뜰히 챙기시는 논현동 사모님 등, 내게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우렁각시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내가 직장만이 전부인 줄 알고 일에 매달려 있는 동안 거의 혼자서 딸들을 다 키워 결혼까지 시키고, 40여 년의 결혼생활 내내 내가 직장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정년퇴직을 할 수 있도록 한결같이 내조도 잘한 아내가 으뜸가는 우렁각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끼니때마다 내 입맛을 딱 맞는 밥상을 차리고 있으니….

 

   우렁각시를 많이 두고 살아가는 삶은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누군가의 우렁각시가 되어 그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삶은 더욱 행복하지 않을까?

   ‘아! 나는 누구의 우렁각시일까?’

   나도 이젠 집사람의 으뜸 우렁각시가 되도록 애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