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꼬리표
꼬리표
이 석 도
몇 해 전 연초, 한때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지점장님은 좀 다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이곳으로 보낸 걸 보니 다른 지점장들이랑 똑 같네요. 조금만 더 지켜봐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서 나와 함께 근무할 때 있었던 집안의 우환들을 늘어놓고는 그로 인해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는데,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울산지점에 부임해서 일 년 정도 근무했을 무렵이었다, 인근 도시의 지점에서 근무하던 한 책임자가 우리 지점으로 이동발령이 났다, 그런데 그 직원이 부임하기도 전에 여러 소문들이 날아들었다.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고객과 싸웠다.’, ‘지점장에게 대들었다.’ 등등 좋지 않은 소문뿐이었다.
그 직원이 부임하고 나서 몇 일 후, 나는 그와 단 둘이 저녁식사를 할 기회를 만들었다. 식사를 하면서 내가 들었던 소문들을 그대로 들려주며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는 “오래 전의 지점에서 업무상 실수를 했는데, 그 이후로는 옮겨가는 지점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직원들은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 어느 지점에서도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더라. 벌써 지점장으로 승진한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아직 부지점장도 되지 못했다.” 라면서 그동안 자신의 인사고과를 낮게 평가한 상사들을 원망했다.
나는 그를 격려하면서 말했다.
“지난 일들은 다 잊자. 이곳에서 열심히 일해서 꼬리표를 떼고, 고과도 만회하자.”
한동안 그는 제법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직원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지점의 합숙소에 입주했으면서도 수시로 야근을 마다하고, 꽤 먼 거리 도시에 있는 자택으로 퇴근하곤 했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가끔 동료 책임자들과 부딪칠 뿐 아니라 지점에서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때로는 내 업무지시조차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 그러자 자꾸만 그가 부임할 때 따라왔던 꼬리표가 떠올랐다.
일 년 반 만에 나는 인사부에 그의 후선업무 배치를 요청하고 말았다.
꼬리표는 받을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철사줄로 매단 손바닥만 한 종이로 예전에는 곡물가마니 등 부피가 큰 화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꼬리표가 화물보다 인간사회에서 더 기승을 부린다. 특히 직장에서 심하다.
인사이동을 하면 사람이 오기도 전에 그 사람에 대한 꼬리표가 먼저 사무실에 도착하곤 한다. 긍정적인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버르장머리가 없다.’, ‘일을 못한다.’는 등 부정적인 소문인데, 이런 꼬리표가 붙은 사람은 부임도 하기 전에 요주의 직원이 되고 만다.
꼬리표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떤 대학교에서 연구를 했다. 그 연구결과를 보면, 아무리 일을 잘 하는 부하직원이라도 상사로부터 일을 잘 못한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실제로 무능해져버린다고 한다. 부하직원이 한 번 실패를 하거나 낮은 성과를 내면 상사는 직원이 성공할 의지가 없다거나 혹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등, 어떤 이유에서든 그 직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성과가 낮은 직원으로 낙인찍힌 직원들은 상사의 낮은 기대치에 맞는 성과를 내게끔 유도되어 결국에는 개인도 조직도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된단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꼬리표를 떼어 내는 데는 무려 9년이나 필요하다고 한다.
전자 편지는 동료의 어려움을 살펴보려 애쓰지 않았던 잘못을 깨닫게 했다. 꼬리표를 떼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하나를 더 달고만 내게 옹졸함을 후회하게 하고, 9년의 반의반도 지켜보지 못한 채 꼬리표의 노예가 되고 말았던 조급함과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했다.
이제야 그에게 붙었던 꼬리표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낳은 또 하나의 고정관념이었음을 깨달으며 나는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내게는 어떤 꼬리표가 붙어 다닐까?’
※ 계간 종합 문예지 『문학의강』제9호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