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첫 기일
2016. 3. 10. 목요일
새벽 5시에 서울을 출발해 10시쯤 도착한 고향집.
하루 먼저 내려와 계셨던 형님과 형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하지만 작년 이날까지 대문을 들어서면서 외쳤던 "엄마!"란 말을 목구멍에 삼킬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한 시간쯤이 지나자 대구에 사는 누나와 여동생들도 도착했다.
우리 오 남매가 다 모였다.
오늘은 어머니의 첫 기일.
작년,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3개월 가까이 병원에 계시던 어머니는 퇴원을 고집하셔서 대구 막내딸 집으로 모셨다.
보름 정도 지났을까? 이젠 고향집으로 데려달라며 식음을 마다하시니…, 3월 9일 고향집으로 모셨다.
고향집에서 딱 하룻밤을 주무시고는 2015년 3월 10일 하늘나라로 가신 우리 어머니의 첫 기일이 오늘이다.
장손 부부가 서울서 내려오고, 외손녀들에 증손들까지…
어머니가 마지막 가신 길을 따라 산소에 올랐다.
동네 돌담 너머에도, 산아래 밭 길가에도 작년 그때 보았던 매화꽃이 다시 피기 시작했건만,
한 해 전 오늘에 뵈었던 어머니의 얼굴은 이젠 영영 볼 수 없으니. 인생이 이렇게 무상할 수가 있나 싶었다.
평생을 바쳐 일구고 가꾸셨던 산아래 밭의 한편.
고향집이 내려다 보이고, 하루 종일 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양지바른 곳,
나란히 자리 잡은 두 개의 산소.
바로 아버지의 산소와 어머니의 산소다.
금실 좋았던 생전의 모습이 그러했듯이 산소도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술잔을 올리고 두 분의 산소를 쓰다듬던 누나가 말했다.
"우리는 참 행복한 오 남매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고, 잘 키워주신 부모님을 만났으니…."
그러자 한 여동생이 답했다.
"아부지와 엄마도 행복했을 거예요. 두 분 금실 좋았고, 효성 깊고 별 탈 없이 잘 사는 우리 오 남매를 두셨으니."
첫제사는 딸들이 차려야 된다면서 누이들이 모든 걸 준비해 왔다.
형수와 집사람, 누이들이 나물을 볶고, 전을 부친다고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어느새 제사상이 차려지고….
제주(祭主)인 형님의 주도 아래 시작된 어머니의 첫제사.
영신(迎神), 강신(降神)에 이어 참신(參神)과 초헌(初獻), 다음엔 내가 독축(讀祝)을 했지만…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은 딸들이 더 큰가 보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 내내 눈물을 훔치는 듯했다.
우리 오 남매부터 증손들까지…,
적잖은 제관들이었다.
제사상 앞에 엎드려 부복한 합문(闔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집사람이 시댁을 이야기할 때면 변함없는 레퍼토리가 된 신혼시절의 놀라움
내 집사람이 시집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우리 아버지가 보이신 아내 사랑이었단다.
하긴 서울에 오시면 혼자서 골목시장에서, 어떤 때는 소래포구까지 가셔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걸 사 오셨으니….
그런 남편을 먼저 보내고, 3년을 혼자 고향집에서 지내셨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아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제주(祭酒)를 한 잔씩 올렸는데, 술을 많이 못 드시는 우리 어머니가….
제사가 끝나고 음복을 겸한 저녁식사.
자식들, 손주들이 모이는 걸 무척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
큰 방을 가득 채운 우리 오 남매와 손주들 사이에 어머니가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이 어머니의 제삿날이 아니라, 케이크에 촛불 가득 꽂은 어머니의 생신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딸과 며느리들이 차린 음식을 맛나게 드시고 가셨을 우리 엄마.
북극성, 북두칠성, 삼태성 등 작년 3월보다 한결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고향의 새카만 밤하늘.
고향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더 많아진 걸 보니, 아마 어머니도 별이 되어 우리를 지켜보시는 모양이다.
오늘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어느 게 엄마의 별이냐고.
엄마별의 이름이 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