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몇 주 전,
아침운동을 다녀왔더니, 잠시후 집사람이 집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어? 먼저 오셨네, 락카에 당신이 쓴 샴퓨랑 타올이 없길래 내가 먼저 온 줄 알았는데…"
아침운동을 같이 하면서 운동화, 세면도구 등을 넣어두는 락카를 함께 쓰는 집사람이
내가 아직 샤워실에 있는 줄 알고 락카를 잠그지 않은 채 열쇠를 꽂아놓고 왔단다.
'귀중품이야 없지만 그래도 사물함인데…'
얼른 다시 스포츠센터로 갔다.
남자 샤워실에는 내가 두고 온 샴푸, 면도기, 타올이 그대로 있었다.
이들을 챙겨 락카에 넣어 잠그고 돌아왔더니
집사람은 내가 요즘들어 뭘 잘 잊어버리고, 좀 멍해진 것 같단다.
그러면서 검사를 한번 받아 보잔다.
나는 이런 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을 돌이켜 보니
골프장에 갔다가 집사람이 모처럼 장만해 준 셔츠를 잃어버리질 않나,
처음 쓰고 간 새 골프 모자를 두고 오질 않나, 과연 잊기를 자주 했다.
최근에도 어떤 일을, 어떤 물건을 깜빡깜빡한 적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작년에는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기계도 오래 쓰면 고장이 잦은데, 60년이 넘도록 쓴 내 머리는???
검사를 받기로 하고, 뇌에 관한한 명의名醫로 소문난 이태규신경내과를 찾았다.
첫날은 한 시간에 걸친 뇌파 검사와 뇌 MRI
둘째 날엔 뇌 MRA와 목에 있는 경동맥 초음파
세째 날은 기억력 검사와 치매 유전인자 검사, 혈액검사.
마지막날, 원장님이 검사결과를 내보이며 설명을 했다.
뇌MRI, 뇌파, 뇌혈류 양호.
기억력 양호
치매 유전자 검사결과 양호
혈액검사 양호
모두가 양호한단다.
단. 하나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다.
심장에서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이 목에 두 개가 있단다.
그 두 개 중에 오른쪽의 동맥은 나이에 비해 양호한 편이나
왼쪽 동맥은 찌꺼기가 끼어 조금 좁아진 상태란다.
즉, 동맥경화의 초기 증상이란다.
내 속의 모두가
무관심 속에서도 60여 년의 세월을 잘 견뎠으니 장하다.
한 갑자가 다시 시작되는 회갑回甲 이란,
젊은 날처럼 몸의 껍데기에만 신경을 쓸 나이가 아니라
몸속 구석구석도 세밀히 살펴야 할 나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