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부탁해요, 엄마"가 종영하던 날

자갈 길. 2016. 2. 21. 23:55

 

 

내가 즐겨보던 드라마가 지난 주말 종영되었다.

치정, 삼각관계, 복수 등을 주요 줄거리로 하면서 억지 설정 투성인

막장드라마가 온 채널에서 판을 치는 게 요즘의 TV 드라마 현실인데,

주말 저녁이면 나를 TV 앞으로 이끌었던 [부탁해요, 엄마]는 달랐다.

세상에 다시없는 앙숙 모녀를 통해 징글징글하면서도 짠한 모녀간의 애정을 그렸다.

시청자들의 눈물샘에 구멍을 뚫은, 가슴이 훈훈한 가족사랑 이야기였다.

 

반찬가게를 하면서 억척스럽게 삼 남매를  키운 임산옥(고두심)은 가슴통증이 심해

남몰래 찾아간 병원에서 6개월밖에 더 살 수 없는 폐암말기 선고를  받는다.

산옥에게 인생 그 자체였던 큰 아들 형규,

오빠밖에 모르는 엄마를 원망하면서 자란 진애,

낙천적인 아버지를 닮은 막내아들 형순

바람기 많았던 남편 이동출.

 

산옥은 가족들이 받을 충격을 염려해 자신의 병을 알리지 못한 채

남편에게 세탁기 돌리기, 음식 만들기 등등 가사를 직접 하게 하면서

서서히 이별준비를 하지만…

결혼 후까지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서슴치 않았던 형규는

엄마의 병을 알고는 자책감에 실어증까지 걸렸지만 엄마의 다독임에 말문을 튼다.

엄마 아빠와의 온천여행에서 엄마의 병을 알게된 딸 진애 또한…

 

종영을 앞두고 반전이 생기는 듯했다.

병원에서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라며 호전되지는 않았지만

더 악화되지도 않아 6개월보다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했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시집올 때 면사포를 쓰지 못한 산옥을 위해 가족들이 리마인드 결혼식을

올려주지만 다음날, 가족들과 함께 소풍가기로 한 날  아침

임산옥은 침대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영영 눈을 감은 것이다.

1년 후

······

 

분명 해피엔딩은 아닌데…

1년 후를 보면 또 결코 새드엔딩도 아닌 드라마.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이틀이 멀다하고 일어날만큼 가정이 파괴되고 있는 요즘,

이런 가족사랑의 드라마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산옥이가 아들과 딸을 걱정하고

혼자 남을 남편을 걱정하며 집안일을 가르치던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잠자리에 누워 집사람에게 물었다.

"만약, 당신이 임산옥처럼 6개월밖에 못 산다는 선고를 받으면 무얼 하겠소?"

그러자, 집사람은 지금처럼 기도하면서 살겠다고 하면 되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살거예요?"

"글쎄, ······"

늘 보는 원준이와 은규, 세은이의 얼굴이 눈에 선하고

지난해 3월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 보고 싶어질 뿐 아무 대답을 못했다.

이젠 나도 언젠가는 닥칠 그날을 가끔은 생각하며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