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공원 비둘기
공원 비둘기
이 석 도
모처럼 겨울 날씨답잖게 포근하고, 화창한 날이다.
집 앞에 있는 근린공원. 인조잔디 축구장에서는 동호인들의 축구시합이 한창이고, 양지바른 벤치에서는 할머니들이 오손도손 모여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겨우내 텅 비어 있던 놀이터에도, 오늘은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미끄럼틀과 그네 등 놀이기구를 타고, 뛰노느라 북적인다. 놀이터 옆의 널따란 잔디밭 가운데서는 하얀 강아지 두 마리가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뛰어다닌다. 한켠에서는 한 엄마가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를 먹으러 비둘기가 모여든다. 아이들은 두 팔을 벌리고 비둘기를 잡으려 쫓아다닌다.
공원 곳곳에 서 있는 발가벗은 나무들의 잔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별로 차갑지 않은 걸 보니 벌써 봄기운이 묻었나 보다.
문득 느티나무들 사이에 못 보던 현수막이 바람에 팔랑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비둘기 모이주기 금지”
비둘기라면, 교통이 불편하고 통신 수단이 거의 없던 옛날엔 집을 잘 찾아오는 성질을 이용해 다리에 편지를 메달아 보내는 전서구(傳書鳩)로 길러졌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평화의 상징이라며 하늘 가득 날려졌던 새이다. 또, 한때는 서민들이 많이 타는 열차의 이름까지 비둘기호로 지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새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는 해로움이 많은 새라면서 먹이조차 주지 말라고 한다.
하긴, 아침에 울음소리가 들리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며 길조(吉鳥)로 여겼던 까치와 애완용으로 키우기도 하는 다람쥐 등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동물들도 유해조수로 지정되었다. 하물며 비둘기가 온 공원길과 벤치는 물론 고궁(古宮)까지 배설물로 더럽히고 있으니, 해로움이 많은 동물로 지정하는 게 어쩌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비둘기들이 몽땅 사라진다면, 배고픈 비둘기들이 먹이를 찾아 멀리 날아가 버린다면, 친구를 잃은 저 아이들은 어쩔꼬!
저 비둘기만큼 아이들 곁에서 잘 놀아줄 새는 없을 텐데…
비둘기가 글자를 안다면, 현수막을 읽는다면 인간의 변심에 얼마나 놀랄까?
사람은 시대를 잘 만나면 출세를 한다지만, 새나 짐승은 시대를 잘 만나면 대접을 받지만 잘못 만나면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아직도 인간을 친구인 줄 알고 있을 비둘기가 불쌍하다. (2015.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