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넣으면서…
2016. 1. 12.
은규를 데리러 신용산역 인근에 있는 LGU+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
양재I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 강변북로에 진입할 무렵 유류계기판 경고등이 깜빡깜빡.
한강대교 조금 못 미쳐 신용산역으로 가는 한강대교 북단 출구로 빠져 나가자 마침 삼거리에 주유소가 보였다.
반가움에 주유소로 쑥∼.
'헉! 휘발유 1L에 1,776원'
강남에도 1,400원 전후이던데…
경고등이 깜빡인다 해도 40∼50km는 충분히 갈 수 있음에 차를 돌렸다.
은규 아빠가 근무하는 LGU+ 본사.
어린이집에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우리 은규가 두 팔을 벌려 달려오고….
은규를 태우고 동작대교를 건너 성모병원, 강남 교보빌딩, 강남역을 지나는 동안 여러 개의 주유소가 있었다.
그 주유소들이 내다 세운 유류가격 표시판 대부분에는 휘발유 값은 1400원 중반 대로 적혀있었다.
그래도 이촌동에서 들렀던 주유소보다 적어도 300원 정도는 저렴한 휘발유값.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도 기름을 넣지 않고 계속 Go Go∼
마침내 내가 주로 주유하는 양재동의 한 주유소에 도착.
주유소의 입간판에 적힌 휘발유값은 1L에 1,370원.
이촌동의 주유소보다 무려 406원이나 싸다.
근 50L을 주유했으니 2만원을 벌었다.
기름값이 왜 이렇게 차이날까?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를 뽑는 정유사의 휘발유 출고가는 얼마간의 차이야 있을 수 있다.
스테이크 값이 고급식당과 보통식당이 다른 것은 재료로 쓰는 고기를 어떤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또 식당의 시설, 서비스의 질 등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동일한 정유사에서 나오는 똑같은 휘발유를, 주유가 아니고는 특별한 서비스가 필요치 않음에도
주유소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는 건 이해가 잘 안된다.
물론 주유소가 위치한 지역의 임대료 등 땅값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데, 기름값이 훨씬 비쌌던 이촌동의 주유소는 대로변이 아니라 왕복 4차선 도로변이었고,
반면에 1,400원대의 주유소는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 중의 한 곳인 강남대로변에도 있었는데…
그럼 아직도 그런 주유소가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
여의도와 가까운 용산이어서일까?
몇 년 전의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휘발유값이 가장 비싼 곳은 여의도의 국회 정문 맞은 편에 있는 주유소였는데
그 주유소의 휘발유값은 우리나라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값보다 리터당 4∼500원 정도 비싸다고 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그 주유소의 주 고객은 국회의원의 승용차일 것이다.
그 주유소는 다른 주유소보다 비싸게 받는 대신 좋은 경품을 많이 주는 것 아니냐?
국회의원의 승용차 유류비는 전액 나라에서 부담하므로 운전기사는 기름값에 신경을 쓰거나
기름값을 아낄 필요가 없고, 오히려 경품을 주는 비싼 주유소를 선호했을 것이다.
기름값이야 나랏돈이지만, 주유소에서 주는 선물은 본인들이 챙길 수 있으니….
그 주유소는 여론에서 뭇매를 맞고 질타를 받았다.
결국 그 주유소는 기름값을 인하하면서 사과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런데, 어디 국회의원의 승용차 뿐이랴.
회사에서 유류대를 결제하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기름값을 걱정하지 않는단다.
회사에서 경비로 처리하는 기름값이야 얼마를 하던 내가 알바 아니고, 경품만 준단면 OK.
4∼500원 중 일부는 주유소에서 챙기고, 일부는 운전자에게 경품으로 돌려주니
경품에 맛들인 운전자는 오고 또 오고, 단골이 된다.
이게 바로 누이좋고 매부좋고,
꿩먹고 알먹고….
이래서 아직도 휘발유값이 턱없이 비싼 주유소가 사라지지 않는 건 아닐까?
국회의원 승용차의 기름값은 바로 우리가 낸 세금이고,
회사에서 결제하는 승용차의 유류대는 얼핏보면 회삿돈 같지만
실상은 납부할 세금을 줄어들게 하는 비용으로 처리하므로 결국은 우리 세금인데…
( 한때 전국에서 가장 휘발유가 비쌌던 국회 앞 주유소에서 몇 년 전 내걸었던 현수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