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을미년의 동지 팥죽

자갈 길. 2015. 12. 24. 23:09

 

 

2015. 12. 22.화요일

오전 두 시간 동안 동호회에서 색소폰 연습을 한 다음 고향친구 상진이를 만났다.

매주 화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렇게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수필공부를 함께 다닌 지 2년이 벌써 넘었다.

점심으로 회덮밥을 맛나게 먹고 들어선 수필 문우들의 공부방, 서리풀 문학회 글벗들의 작품을 한창 합평하고 있는데 대구에 사는 두 살 아래 동생이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오빠, 동짓 날인데 팥죽드셨어요?"

'동지 팥죽'

어머니가 팥을 삶는 동안 나랑 누나와 여동생들은 넉넉히 군불을 넣은 뜨근뜬근한 방에 빙 들러앉아 동글동글 새알을 만들었던 추억의 팥죽. 큼직하게 썰은 동치미 무우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었던 팥죽. 동짓 날에 팥죽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꺼번에 몇 그릇이나 먹었던 팥죽.

내가 카톡에 나이 먹기 싫어서 안 먹었다고 답을 올리자 동생은 두 그릇을 먹었단다. 자기가 누나될려고…

그러자 누나가 카톡방에 들어와서는 팥죽을 유난히 좋아하셔서 몇날 며칠이고 팥죽을 드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글을 올리고, 막내 동생도 겨울방학을 하면 외갓집에 와서 함께 새알을 만들곤 했던 막내 고모집의 고종사촌 이야기까지 꺼내며 사십여 년 전의 동짓 날을 추억하는데, 조카들이랑 생질녀까지 합세했다.

'동지 팥죽을 먹으면 나이를 먹나요? 팥죽을 괜히 먹었다.고 하면서….

 

한 시간의 글공부가 끝난 휴식시간.

한 여성 글벗이 뒷자리에서 대형 종이컵에 뭔가를 퍼담고 있었다.

팥죽이었다.

동짓 날이라 집에서 쑨 팥죽이란다.

하얀 새알까지 들어 있는 팥죽은 예전에 먹었던 맛 그대로였다.

요즘은 자신들이 먹을 팥죽도 끓이기 싫고 귀찮아서, 먹고 싶으면 그냥 한 그릇 사 먹고 만다던데,

스무 명이나 되는 글벗을 먹이기 위해 직접 팥을 삶고, 새알을 빚고 끓여서 그 무거운 걸 가져오다니….  

 

예로부터 동짓날이면 붉은색이 잡귀를 쫓는다고 해 동짓날에 집안 곳곳에 팥을 뿌리고 팥죽을 먹으며 무병장수를 기원했단다. 고대엔 동짓날이 새해 첫날이었단다. 그래서 우리 옛 속담에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해서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먹는 사람의 나이만큼 팥죽에 넣어 먹었다지만,
추운 겨울, 뜨거운 팥죽 한 그릇이면 영양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얼었던 속까지 녹여 추위까지 물리칠 수 있으니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동짓날이면 배고픈 사람을 모아 팥죽을 먹였다고 하는데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팥죽 한 그릇은 보약과 다름없는 영양식이었다니, 옛부터 동짓 날은 나눔의 날이고, 팥죽은 나눔의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올해엔 먹지 못할 줄 알았던 동지 팥죽을 글벗 덕분에 맛나게 먹었는데, 서울 강남에 있는 봉은사란 큰 사찰에서는 2만 명분의 팥죽을 끓이고, 또 많은 사찰과 단체에서도 '동지 팥죽 나누기 행사'로 한겨울의 추위를 녹이고 있단다.

동지 팥죽의 의미가 나눔으로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한때는 명절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명맥을 잃어가는 동지(冬至),

젊은이들이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활기찬 사랑 표현의 날로 만든 것처럼, 

동지(冬至)를 이웃과의 나눔에 따스함과 활기가 넘쳐나는 우리 모두의 명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동지 팥죽 

    겨울이 끝난다는 동지(冬至)는 요즘에는 명절도 아니고 그저 팥죽 먹는 날일 뿐이다.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색 팥죽을 먹어 액운을 물리친다는 정도로 팥죽을 먹는 이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팥죽 먹는 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왜 팥죽을 먹는지 정확한 이유나 알고 먹자.

 

"동짓날 팥죽은 비록 양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라고는 하지만, 귀신을 쫓겠다고 문지방에다 팥죽을 뿌려대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니 그만두라고 명했는데도 아직까지 팥죽 뿌리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후로는 철저하게 단속해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으라."

조선시대 영조가 내린 왕명이다. 《영조실록》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임금의 명령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을 정도로 동짓날 팥죽을 뿌리는 풍습이 지나쳤던 모양이다.

지금은 옛날 전통을 되새기며 동지 팥죽 한 그릇 먹는 것으로 끝나지만 옛날에는 귀신을 쫓겠다는 일념으로 집집마다 문기둥에 얼마나 팥죽을 뿌려댔으면 임금이 다 역정을 냈을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동짓날이면 으레 팥죽을 먹는다. 귀신이 팥의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팥죽을 쑤어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집안의 평안을 빌던 풍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리 전통 민속이라고 하지만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린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미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는데 과연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이 미신에서 비롯된 풍속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지 팥죽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다.

유래를 보면, 동지 팥죽의 기원은 6세기 초에 간행된 중국의 《형초세시기》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동짓날 해의 그림자를 재고 팥죽을 끓인다.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서다. 

이유도 함께 적혀 있다.

 

공공씨(共工氏)에게 재주 없는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역귀가 됐다.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지에 팥죽을 끓여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얼핏 읽으면 말도 안 되는 이유고 게다가 약 1500년 전 이야기이니 무지했던 시절, 몽매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신 같다. 하지만 옛날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풀어보면 동지에 팥죽을 먹는 일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지를 알 수 있다.
동지 팥죽의 의미를 알려면 먼저 공공씨의 정체부터 알아야 한다.

공공씨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 존재로 황하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아들이 죽어 귀신이 됐다고 했는데 보통 귀신이 아니라 역귀(疫鬼)가 됐다. 다시 말해 전염병을 퍼트리는 귀신이 된 것이다.

《형초세시기》의 내용을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다.

황하에 홍수가 나서 강물이 범람했는데, 그 이유는 강물을 다스리는 신인 공공씨가 심술을 부렸기 때문이다.

공공씨의 아들이 죽어 전염병을 퍼트리는 귀신이 됐다는 것은 홍수로 인해 수인성 전염병이 나돌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공씨의 아들은 왜 하필 팥을 무서워했던 것일까? 이 말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뜨거운 팥죽을 끓여 먹고 영양을 보충해 병을 이겨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필이면 팥으로 전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한 이유는 먹을 것이 넘치는 요즘과는 달리 옛날에는 팥이 겨울을 이겨내는 데 좋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 간행된 《초학기》에서도 동짓날 뜨거운 팥죽을 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양의 기운을 보충할 수 있어 몸에도 이롭다고 풀이했다.

추운 겨울, 뜨거운 팥죽 한 그릇이면 영양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얼었던 속까지 녹여 추위까지 물리칠 수 있으니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동짓날이면 배고픈 사람을 모아 팥죽을 먹였다고 하는데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팥죽 한 그릇은 보약과 다름없는 영양식이었을 것이다.

그럼 왜 하필 동짓날 먹었을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동지 팥죽은 설날 떡국처럼 새해 소원을 비는 음식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예전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했는데 새해에 버금가는 날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고대에는 음력 11월이 한 해의 시작이었으며, 동짓날이 새해 첫날이었다. 그래서 우리 옛 속담에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 것이다.

동지 팥죽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해가 바뀌는 동짓날, 한 해 동안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며 비는 소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