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함박눈

자갈 길. 2015. 12. 3. 23:58

 2015.12.3. 목요일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도 몇 송이가 떨어졌으니, 이눈이 첫 눈은 아니란다.

아침 식사시간 쯤부터는 함박눈으로 변해 펑펑 쏟아졌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면서 이따가 어린이집에 은규 데리러 갈 때 차를 가져가나,

아니면 지하철을 타고가나 하는 걱정과 함께 온갖 상념에 빠져들었다.

경북에서 가장 아래쪽인 내 고향 청도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은 온다.

50여 년전 초등학생시절.

그때는 눈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포장이라고는 한 뼘도 되지 않았던 그땐 눈이 조금만 많이 내려도 몇 날 며칠을 버스가 다니지 못해 일이십 리 떨어진 시골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급할 때는 수십 리 길도 걸어다니느라 큰 불편을 겪는 어른들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들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우리는 눈밭에서 뒹구는 강아지처럼 하루종일 마음이 들떠,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학교 운동장에서 누가 눈사람을 크게 만드나 시합을 하고, 편을 나누어 온 동네를 놀이터로 삼아 눈싸움을 하느라 하루해를 다 보내곤 했다. 

또, 또래 동무들과 산토끼를 잡는다며 앞산이나 뒷산에 올라 소리를 지르며 온 산을 헤집고 다니지만, 우리한테 잡힐 산토끼가 있을리 만무했고,  눈이 녹아 초가지붕 처마 끝에 달린 수정 고드름은 겨울철의 아이스께끼였다.

오십 년 전의 하얀 눈이나 오늘 펄펄 내린 함박눈이나, 똑같은 눈이 아닌가.

그런데 50년 전에는 눈만 내리면 밖으로 뛰어나가 온몸으로 맞이했건만

오늘은 우산 속에 갇혀 손자 데리러 갈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에 설레임도 없고, 들뜨지도 않는 마음.

나이탓이 아니라, 손자사랑 때문이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