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너구리
일요일
양재천의 새벽은 더 일찍 열린다.
마라톤 복장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고
거리를 표시한 표시판이 군데 군데 서있는 걸 보니
아마 어떤 마라톤 동호회에서 마라톤 시합을 하는가 보다.
영동5교 가까이 도착하니 마라톤 피니쉬 라인이 설치되어 있고
많은 마라토너들이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고있다.
곳곳에 "7 to 7 울트라 마라톤"이라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어젯밤 강남구 육상연맹에서 개최한 울트라 마라톤이 있었단다.
"7 to 7"이라면 어제저녁 7시에 출발해 오늘 아침 7시까지 12시간 동안
양재천의 9km 구간을 맴도는 시간주 마라톤이었던 것 같다.
시간주 마라톤은 일정거리를 정해 놓고 누가 빨리 도착하나를 경쟁하는
거리주 마라톤과는 달리, 정해진 시간동안 누가 많이 달리나를 경쟁하는 극한 운동이다.
지난 밤 12시간의 시간주에서는 아마 가장 적게 달린 참가자들도 50km이상은 달렸을 것이고
많이 달린 마라토너는 120km 이상은 달렸을 것이다.
밤새 달렸을 이름 모르는 그들의 체력과 인내심을 부러워하며
그들이 뛰었을 길을 힘껏 뛰었더니 금방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운동을 마치고 뚝방길을 걷는데
강아지 같은 게 내 앞을 후딱 지나가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사라진 쪽으로 가만히 가보니 강아지가 아니고 너구리 같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으니 요놈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살금 살금 다가 오다 깜짝 놀라 풀쩍 뛰며 뒷 걸음 치더니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 운동화를 물다 도망쳐 버린다.
서울의 도심 양재천에도 이런 너구리가 살고 있다니
참 고마운 일이다.
(양재천 산책로엔 무궁화가 한창입니다.)
(오늘은 10km만 뛰었습니다)
(내가 만난 양재천 너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