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야기

서초 수련원에서의 生日

자갈 길. 2015. 11. 5. 00:39

2015. 10. 31. 토요일

음력 9월 19일, 내 생일날이었다.

작년에는 9월 30일 우리은행을 정년퇴직하고 10월 1일 서울을 출발해 열흘만에 도착한 고향집에서 이틀 뒤인 10월 12일에 회갑상을 받았으니, 올해는 19일이나 늦은 날에 예순한 번째 생일상을 받은 셈.

내 생일도 생일이지만, 황반원공으로 눈 수술을 받은 후 한 달 이상을 집에서만 가만히 요양하느라 답답해 하던 집사람을 위해, 며칠 전 사위에게 "장모님 바깥바람 좀 쐴 수 있도록 한번 해보게." 했더니, 예년처럼 외식을 생각했던 딸과 사위들이 부랴부랴 서두러는 것 갔더니 서초구에서 운영하는 강원도 횡성의 서초수련원을 겨우 예약했단다.

나는 원준이네 차를 타고, 집사람은 은규네 차를 타고 쌩쌩∼

 

차 안에서 원준이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할아버지 선물" 하면서

삐뚤삐뚤한 글씨로 "할아버지 생일 축하해요."라 쓰고, 아래에는 네 사람이 탄 배가 그려져 있었다.

원준이는 돛단배를 탄 사람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원준이와 세은이란다.

손자로부터 처음 받아보는 편지. 손자의 글씨를 보는 순간

삐뚤삐뚤한 글씨라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갑자기 뭉클해지면서 가슴이 벅찼다.

아직 글씨를 모르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원준이의 의젓해진 언행을 즐감하면서 세은이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사이에 

차는 수련원에 들어서고, 곧이어 집사람이 탄 은규네 차도 도착했다.

폐교의 건물을 인테리어만 바꿔 그대로 이용하는 줄 알았는데, 

새 건물에 엘리베이트까지 있는 걸 보니 교사(校舍)를 헐어내고 새로 짓은 건물이었다.

산간 벽지의 폐교부지인데다 주변에 마을이 없고, 뒷편에는 소나무 숲이랑 계곡 등이 있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공기가 맑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울에서는 뿌연 하늘을 너무 자주 봐서인지 늘 개운치 않았던 눈이 환해지고, 시도 때도 없이 막히던 코까지 뻥 뚫렸다.

하지만 콘도와 똑 같았던 충남 태안 바닷가의 서초휴양소와는 달리, 수련원은 수련원이란 호칭에 어울리게 각 호실에는 따로 방이 없고 거실 같은 방이 한 개만 있었다. 하지만 8인실인데도 딸린 화장실이랑 간이 주방 등을 포함하면 웬만한 교실의 절반보다도 더 클 것 같았다. 

방에 짐을 풀어놓고 바베큐장으로 고고∼

정 서방이 소나무 숲속에 마련된 바베큐장에서 고기를 굽는 동안 송 서방은 옆에 텐트를 치고….

강원도 산골의 소나무 숲속, 고즈넉한 텐트 안에서 가족들이 다 모여 가을을 마시며 먹는 고기맛이 꿀맛.

사위들과 마시는 막걸리도 꿀맛이었고, 딸과 집사람이 따라주는 발랜타인은 더 꿀맛이었다.

너무 많이 준비했다 싶어 방에 남겨두었던 고기까지 도로 가져오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방으로….

방 한켠에 텐트를 치자 최고의 놀이방이 되어 원준이와 은규는 들락거리기 바빴다. 

조그만 케잌을 방 한가운데 놓고 온 식구들이 둘러 앉아 내 생일을 축하했다.

원준이랑 은규가 박수를 치고, 2월에 태어나 외할아버지의 생일을 처음 맞는 세은이까지….

케잌 위에서 내 나이테가 되어 타고 있는 6개의 큰 양초와 1개의 작은 양초는 내가 육십갑자를

보내고도 한 해를 더 보냈음을 의미하지만, 이 짧지 않은 세월을 무탈하게 살아온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사위들과 당구를 치고,

손주들이 잠든 뒤에는 고스톱대신 훌라를 치고,

또 한밤중에는 밤하늘을 보며 집사람과 산책도 했다.

횡성의 밤하늘에는 웬 별이 그리 많은지….

서울의 하늘에는 별이 몇 개밖에 보이지 않던데.

내 고향도 경북 청도의 산골이라, 내가 어릴 때의 밤하늘엔 구름처럼 보이는 은하수랑 금방 쏟아질 듯 별들이 많았지만 요즘의 밤하늘에는 그 많던 별들이 다 어디로 사라지고 반에반도 남아있지 않던데….

새까만 하늘에 두둥실 뜬 달님과 총총 박힌 별님들이 어느새 집사람을 소녀로 만들었다.

밤하늘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북두칠성을 찾고 나란히 줄을 선 삼태성이 보이자 어릴 때

자신의 별자리라면서 환호성을 지르던 아내의 입에서 저절로 노래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

 

아름다운 별들을 담고 싶어 자꾸 핸드폰으로 찍어보지만, 조리개 조절이 안되어 달님만 찍히고….

손주 셋, 사위 둘, 딸 둘, 우리 부부 이렇게 온 가족 9명이 한 방에서 보내고 맞은 아침.

닭들이 홰를 치며 깨운 횡성의 새벽,

방이 하나밖에 없어 더 좋았던 아침.

횡성의 하늘은 더 높아 보이고, 

수련원의 아침공기는 더없이 맑았다.

나는 또 원준이네 차에.

집사람은 또 은규네 차에….

참, 멋지고 해피한 생일 나들이었다.

아내와 딸들의 웃음소리, 손주들의 해맑은 미소는 바로 나의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