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도보여행
도보여행
이석도
몇 해 전, 우리나라의 50대 시각 장애인이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 열린 극한 마라톤에서 완주하는 모습을 TV로 보고는 감동을 받았다. 나도 막연히 고향까지 걸어서 한번 가볼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무릎에 이상이 생겨 포기할 뻔했던 도보여행이었다.
아내는 내 무릎을 걱정하며 처음부터 반대했다. 딸들도 올해는 정년퇴직과 회갑을 기념해 해외여행을 가고 도보여행은 다음으로 미루라고 했다. 여동생들까지 “오빠 나이에 무슨 도보여행이냐?”며 사서 고생을 하려 한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하랴 싶어 은행을 정년퇴임을 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새벽에 집을 나섰다.
376km의 길을 열흘 동안 52만여 걸음을 걸어 고향에 도착했다. 승용차로 간다면 네댓 시간에 6,7만원의 기름값이면 될 것을 거의 열 배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
하긴 수백만 원을 쓰면서 한 달여 동안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하루 10시간씩 열흘 동안 걷는 도보여행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보기만 했던 황금빛 들판에서는 잦은 농약 살포로 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메뚜기들이 벼 이삭 사이로 뛰노는 모습을 보았고, 말라가는 논바닥에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낸 논우렁이들을 볼 수 있었다. 길가에서는 코스모스 등 갖가지 가을 꽃잎에 입맞춤할 수 있었다.
또한 할 일이라곤 걷는 것밖에 없으니 아무 잡념이 생기지 않아 머리는 맑기만 했다. 한 두 번의 전화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열 마디의 말도 하지 않으니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것 같았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은 간 곳이 없고, 오로지 눈앞의 상황과 풍경에만 정신이 집중되었다.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 나라 땅이면서도 가보기는커녕 지나치지도 못했던 많은 지역을 걸었다. 문경새재를 걸어서 넘을 때는 방랑 시인들이 왜 생겨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들을 보고파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격려와 용기를 주신 고마운 분들이 떠오를 때는 가슴까지 따뜻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국도의 갓길을 걸을 때는 옛 정취를 듬뿍 담고 있는 시골길을 많이 걷는 여유를 갖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예전에는 행인들이 많았을 것 같은 시골길조차 걷는 사람이 거의 없는 빈 길이 되어버린 세태의 변화에는 적잖은 아쉬움이 남았다.
한때 막연히 생각했던 천 리 길의 도보여행. 그러나 그 여행이 고향에 가는 길이었기에 더 뜻깊었다. 준비하는 동안 꾸준히 했던 운동은 내 몸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거뜬한 완주는 정년퇴직과 회갑을 한꺼번에 맞아 허탈감을 느끼기 쉬운 내 마음을 젊게 만들었다. 또한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나는 다시 지도를 펼쳐 보곤 한다. 동해안을 따라 속초에서 부산까지 가는 도보여행의 코스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차로 가면 반나절밖에 안 걸리는 길을 왜, 걸어서 가나? 힘들게…”
도보여행을 떠날 때 친구가 물었던 말에,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먹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맛을 알까?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이 있다네.” (2014.12.2.)
※ 월간지『좋은생각』2016년 3월호에 '걷고 또 걷는다'란 제목으로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