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초등 동기회(2015년)

자갈 길. 2015. 10. 6. 00:22

2015. 10. 3. 토요일.

환웅이 최초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 이화세계(널리 인간을 의롭게 하고,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의 펼침과 BC 2333년 10월 3일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운 날을 기념하는 개천절.

불과 며칠 전의 추석 인파로 몸살을 앓아서일까?

아니면 곧 다가올 단풍철의 눈코뜰새 없이 바쁠 날에 대비해 단잠을 즐기고 있을까?

더 없이 높고 파란 하늘이 무척 아름다운 주말인데도 서울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사에 들어서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벌써 한 친구가 도착했단다.

그러자 한 친구는 이촌역을 지나고 있다고, 또 한 친구는 남영을 지났다고 답장을 띄우고….

오산에서 첫 차로 출발했다는 국열이까지 도착했으니, 7명 모두가 다 모인 셈이다.

오늘은 내고향, 慶北 淸道郡 梅田面 溫幕里라는 아름다운 산골에서 1927년 7월 17일 개교한

매전초등학교를 해방 후 39회로1967년도에 졸업한 동기생들이 만나 회포를 풀기로 한 날이었다.

작년에는 폐교된 모교에서 열린 총동창회 체육대회 참석을 겸한 동기회와 회갑여행을 겸해 제주도에 가서

동기회를 했었고, 올해는 당초 6월에 경남 김해에서 열기로 하고 부산의 친구들이 만반의 준비까지 했었지만,

5월부터 온 나라가 메르스라는 호흡기 전염병에 벌벌 떨던 때라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회.

 

수도권에 동기생들이 열대여섯 명이나 살고 있는데도….

이 나이에 뭐가 그리 바쁜지, 절반도 안 되는 7명만 참석.

하긴 계절이 계절인지라 주말이면 꼭 참석해야 할 경조사가 한두 개는 날아들 나이다.

 

서울역에서 모닝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탑승한 KTX는 7시 30분 정시에 출발하고,

오랜만에 만난 소꼽친구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어느덧 기차는 동대구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대합실로 나가자 미리 연락을 받은 승엽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대구 친구들 대절한 버스에서는 친구들간 포옹을 나누기에 바쁘고….

경산에서 명형이까지 태우고 김해로 띠띠빠빵∼,

경산을 거쳐 우리 고향 청도와 밀양을 지나는 도로는 확 트인 새길이었지만 창밖의 산하는 옛 그대로였다.

 

드디어 동기회가 열리는 김해 장보고횟집.

우리 버스가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부산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이내 버스 주변은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방불케했으니….

졸업 후 근 50년 동안 적지 않은 친구들이 고인이 되었고, 80여 동기들 중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도

적지 않은 데, 이번 동기회에는 서울 7명, 대구 7명, 울산 2명, 부산 16명 등 모두 32명이나 모였으니

결코 적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해마다 보이던 몇몇 친구들이 집안일로 참석치 못했으니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전 동기회장이었던 장보고 횟집 김종원 사장이 준비한 싱싱한 회와 갖가지 해산물이 입맛과 술맛을 돋우고

소줏잔이 오가는 사이, 2년 간 동기회를 이끌어 오느라 애를 많이 쓴 삼기 회장과 순생 총무의 인사말이 있자

그간 수고에 대한 답례 박수가 쏟아졌다. 지역 동기회장들의 인사말에 이어 새로이 2년 간 동기회를 끌고 나갈

회장과 총무는 울산에 사는 재우와 명숙이가 맡기로 하면서 일 년만의 총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내년의 동기회는, 50여 년 전 우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을 소풍을 갔던 밀양 영남루와 표충사를 둘러보는

일정으로 정하면서 공식적인 1부 회의는 끝이 났다.   

2부 행사는 태종대 여행.

다 같이 대절버스를 타고 태종대로 향했다.

김해에서 태종대까지….

태종대 입구에 들어섰건만, 시간이 무척 애매했다.

우리 서울 동기생들이 서울로 돌아가는 차표를 부산역에서 5시 50분에 출발하는 KTX로 발권까지 해 두었으니….

우리 사정을 이해한 친구들이 태종대 일주 대신 바닷 바람이 쐬면서 소주나 한잔 더 하자고 했다.

태종대 자갈마당 해변에서 파도가 쓸릴 때마다 들려오는 몽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털어넣는 소주맛은

일품이었다. 부산 친구들이 즉석에서 조달해 온 멍게 산낙지 등등, 이 먹을거리들은 50년의 우정을 몽땅 담아서

인지 모두가 다른 곳에서는 쉬이 맛볼 수 없는 별미였다. 또 뜨끈뜨끈한 담치국물이 그렇게 시원할 줄이야.

아쉬움이 더해 가면 더해 갈수록 빨라지는 시간. 아름답던 몽돌의 노래는 슬픈 이별의 노래로 바뀌고 있었다.

 

부산역

마침내 이별의 시간이었다.

부산 친구들과 서울 동기들을 부산역에 내려놓은 대절버스는 대구 친구들을 싣고 대구로 떠나고,

서울 친구들은 부산 친구들이 사들고 온 냉커피를 마신 다음 친구들의 진한 환송을 받으며 플랫폼으로 향했다.

좀 더 같이 있지 못함을 미안해 하면서,

좀 더 늦은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면서

내년 동기회에서는 이런 후회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서울 친구들, 종태는 사진 찍느라…)

 

 

 

 

 

 

(태종대 자갈마당 몽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