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전우들의 분노
2015. 9. 18. 금요일.
오늘 아침, 서초동에 있는 법원 정문의 앞길에는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란 표시판이 붙어있는
차들이 수십대나 줄지어 서있었다. 마치 수도권에서 총 출동이라도 한 듯이….
스피커에서 우렁찬 군가가 울려 퍼지고,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 피켓을 들고 있다.
한 지휘자의 구령에 따라 절도있는 모습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지만, 대부분이 반백의 긴머리다.
하긴 [고엽제 전우]이라면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의 피해를 입은 군인들이다.
1970년대 초반, 나는 고등학생일 때 여러차례 군인들이 참전을 위해 월남으로 떠나는 환송행사에 갔었다.
우리 학생들은 엄청나게 큰 군함이 정박해 있는 부산항의 부두에 모여 무사귀환을 빌며 군가를 따라 부르고,
전쟁터로 가는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무엇이든 한가지라도 전해주고 싶어 편지랑 물품을 묶은 기다란 끈 끝에
사과를 매달아 갑판으로 던지지만 닿지않는 부모님들을 도와 사과를 대신 던져주기도 했었다.
그러고는 갑판을 빼곡히 채운 군인아저씨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 뱃머리를 돌리며 불어대는 뱃고동 소리는 어찌 그리 구슬프게 들리던지….
그랬던 월남전도 1975년에 끝나고, 내 나이가 60이 넘었으니,
고엽제 전우들은 가장 젊어봐야 60대 중반은 훌쩍 넘겼을 터.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조국의 발전을 위해 전쟁터로 뛰어들었던 그들.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키려 했던 그들.
이제는 손주의 재롱이나 보면서 여생을 즐겨야 할 그들.
그들이 왜 도로로 뛰쳐나왔을까?
그들이 왜 피켓을 들고, 목청을 높이고 있을까?
누가 그들을 분노케 했을까?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아마도 천암함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가적 재난에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을 옹호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을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했으나, 2심에서는 선고유예로 풀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목숨바쳐 지키고자 했던 조국이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다시 나선 것 같았다.
내가 봐도 남남갈등이 너무 심하다.
몸소 총을 들고 공산국가와의 전쟁을 치루었던 그들.
조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그들이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그들이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여생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