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의 메모
며칠 전, 서랍 정리를 하던 집사람이 종이 한 장을 내놓으며 물었다.
"이게 뭐예요?"
'이게 아직 남아 있었다니…'
종이를 받아든 나는 메모 내용을 보고 놀랐지만, 15여 년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IMF 환란으로 많은 금융기관이 사라지고, 내가 근무하고 있던 한일은행도 상업은행과 합병을 한 다음
은행명을 한빛은행으로 변경해 절반도 넘는 직원들이 은행을 떠나야 했던 무척 어수선한 1999년.
1999년 8월 6일. 당시 차장이었던 나는, 오히려 환란의 혜택(?)을 입어 한빛은행 서문시장지점장으로 승진했다.
한때는 한강 이남에서 제일 큰 도매시장이라 했으나, 교통 발달로 지방 상권은 크게 쇠퇴했지만,
그래도 도매시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대구의 큰 시장, 서문시장.
시장 입구에서 상업은행 동산동지점 서문시장 출장소로 개점을 했으나, 한일은행과 합병 후에는
한빛은행 서문시장지점으로 승격하면서 내가 초대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내 고향에서 백리밖에 되지 않는 대도시, 자라면서 늘 동경했었던 大邱.
그러나 가슴 가득 했던 승진의 설레임은 부임하자마자 실망으로 바뀌었다.
초라한 빌딩의 반지하층에 자리한 지점에는 지점장실이 따로 없었고,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 반지하 은행에서 핸드폰이 울리면 밖으로 뛰쳐나가 통화를 해야 했다.
총 8명밖에 되지 않는 직원들이 번갈아 시장을 돌며 파출수납까지 하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유명무실한 서문시장의 경기는 갈수록 침체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주말이면 부모님을 찾아뵙는 고향길의 즐거움과 첫 지점장의 사명감으로
고객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영업활동을 했고 실적도 꽤 올리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 7월 31일, 나는 부임 1년만에 새로운 발령을 받았다.
새로은 직책은 후선 업무인 본점 여신관리부의 관리역이었고,
발령 이유는 영업실적 부진이란다.
하늘이 노랬다.
이때 관리역으로 발령받은 지점장은 100여명이니 되었고,
이 모두가 머잖아 있을 강제퇴직 대상자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니. 내 마음이 오죽 했을까?
'내 나이 겨우 마흔 일곱인데…'
'내 두 딸이 이제 대학에 입학했는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관리역으로 발령받은 지점장들의 하루는 일이 아닌 구명운동으로 시작하고 구명운동으로 끝이 났다.
나는 은행장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서문시장지점의 열악한 환경을 쓴 다음, 부임 후 1년간 내가 했던 영업활동과 실적은 물론
1999년 7월말 부임 때의 서문시장 주변에 포진한 금융기관 전체 실적에서 우리 지점이 차지했던
점유비와 실적부진점 선정 기준인 2000년 6월말의 서문시장지점 점유비를 대비한 표를 만들어
이처럼 실적과 점유비를 개선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진점으로 선정되어 억울하다는 편지였다.
하지만 이게 잘한 짓인지, 잘못한 짓인지 판단이 서지않았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러듯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듯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던 중, 어느날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집사람이 건네준 메모지를 보니, 그날은 바로 2000년 8월 13일이었다.
지금도 그날의 꿈이 희미하게 떠오르지만,
꿈을 꾸자마자 잊어버릴까봐 메모지를 찾아 비몽사몽간에 쓴 그날의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2000. 8. 13. 06:00. 꿈
꿈속에서 김대중 대총령을 청와대(or 길)에서 만나 내가 차 한잔을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청와대 휴게실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내 시골집 같았다.
누군가 차를 준비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쉬는 동안 내가 어떤 잡지의 그림과 함께
내가 宗親으로부터 받은 동양화 포구를 대통령께 보여드리며,
"이 그림이 어떠합니까? 그림에 쓰여진 글의 내용은 무슨 뜻입니까?" 물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괜찮은 그림이라며, 그리고 글씨의 뜻은
'세월이 많은데,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내가 대통령과 같이 있는 것을 본 어떤 사람(은행 퇴직직원으로 추측)가
내게 "자네는 이제 짤리는 100명에게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꿈이었다.
대통령 선거 때, 집사람이 DJ를 찍었다고 부부싸움까지 했었는데,
내가 김대중 대통령 꿈을 꾸다니….
2000년, 그해 11월 우리은행은 정말 대대적인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모두 강제퇴직 시킨다는 소문은 현실이 되고, 내 꿈도 현실이 되었다.
실적 부진으로 불려들어 온 100여명의 관리역 대부분은 사표를 써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열 명 남짓한 생존자 중 한 사람이 되어 서문시장지점보다 훨씬 큰 서울 중계동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 이후 시흥동지점, 울산지점, 독산동지점장 등을 무사히 마치고 2014년 9월 30일에
은행에서 정년퇴직을 했으니 '인간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옛말이 있지만,
내가 김대중 대통령 꿈을 꾸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러나 분명한 건,
만약 내가 그때 사표를 써야 했다면
지금만큼 평온한 모습, 행복한 삶은 얻지 못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