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50년 후의 세상
50년 후의 세상
이 석 도
백일을 갓 지난 아기가 목욕을 하고 있다. 물의 따스함이 좋은지, 땀을 씻어내는 시원함이 좋은지, 좋아라 물장구치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목욕을 끝낸 아기의 알몸에 보송보송한 일회용 기저귀를 채우자, 아기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까? 연신 방긋거리며 눈을 맞추고 종알거리는 옹알이는 끝이 없다. 할아버지는 아기의 해맑은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올 새해 첫날의 일간 신문에 신년 기획 특집이 있었다. 미국 UCLA대학의 지리학과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인류가 화석 연료와 열대 우림의 목재 그리고 물, 어류 등 천연자원을 지금처럼 소비하며 산다면, 50년 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 “소비와 생산을 줄여서 지구 환경을 되살려야만 지구의 생명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21세기가 가까워질 무렵 여기저기 지구 종말론이 나돌 때만 해도, 나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했었다. 그런데 특집 기사를 읽는 동안에는 ‘설마’ 하면서도 이러다가는 정말 지구의 종말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50여 년 전, 짬만 나면 밖에 나가 놀던 우리는 목이 마르면 도랑물도 마셨다. 때로는 장난삼아 흙을 집어먹기도 했지만, 어른들은 “그래, 아이 때는 흙도 먹으면서 큰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때 우리는 석유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에서는 물을 사 먹는데 물이 석유보다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자 나라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부러워했다. 영국에서는 스모그와 안개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한 해 동안 몇 일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스모그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채 5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지하수는 물론 흐르는 물은 다 마실 수 있었던 고향에도 이제 우물은 메워지고 수돗물이 나온다. 사막의 나라에서나 사 먹는 줄 알았던 생수가 도회지뿐 아니라 내 고향의 구멍가게에도 진열되어 있다.
영국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스모그가 시도 때도 없이 서울의 하늘을 뿌옇게 만들고, 시간마다 방송되는 기상 예보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까지 알려주고 있다. 게다가 수시로 중국에서 날아든 황사가 하늘을 덮고 있으니, 물은 고사하고 공기조차 마음놓고 마실 수 없을 지경이다.
지구촌에는 한 쪽이 기록적인 폭우로 물난리를 겪는 반면, 다른 한 쪽은 극심한 가뭄으로 호수가 말라붙어 사막처럼 되기도 한다. 산더미 같은 해일이 밀어닥치는가 하면, 곳곳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지구는 쉽게 회복할 수 없는 몸살을 앓기도 했다.
이런 자연재해는 삼림의 파괴, 사막화 현상, 빙하의 용융, 대기 오염, 오존층 파괴 등 갖가지 지구 오염 때문이란다. 우리가 잘 입고, 잘 먹고, 더 편리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저지른 결과이다.
결국 우리는 더 편하고 싶은 욕심으로 큰 불행을 초래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어쩌면 지금까지의 자연재해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려는 지구의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송보송한 게 아무리 좋아 보일지라도, 손자에게 목재 펄프로 만든 일회용 기저귀를 채우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편리함만을 쫒는 이기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귓전에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마지막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지금 안녕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안녕할 것인지 그걸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2014.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