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이 석 도
퇴근길 버스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지난 연말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렸다는 노래다. 나이 때문에 사랑 고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한탄하는 듯이 들리는 노랫말에, ‘도대체 몇 살이라 퇴짜를 맞았을까?’ 의문이 들면서, 그럼 내 나이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어릴 때 ‘철이 없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고, ‘요즘 아이 같지 않다’는 소리를 큰 칭찬인 줄 알고 자랐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는 ‘젊은이답게 패기가 넘친다.’는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지만, ‘말이 없고, 점잖다’ ‘나이답잖게 일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일까? 실제보다 나이를 더 많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내 삶이 남의 눈에는 젊게 사는 게 아닌 모양이다.
60여 년 전만 해도 내 고향에서는, 남자는 40세를 넘으면 대부분 갓을 쓰고 수염을 길렀다. 그리고 사랑방에서 긴 담뱃대를 두들기며 노인 행세를 하고, 환갑이 지나면 상노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수명이 60세가 못 되어 그럴 수 있었겠다 싶지만, 훨씬 장수한 어르신들은 어땠을까? 스스로를 나이의 올가미에 가두어 절반 이상의 인생을 노인으로 살았으니 육신의 편안함이야 있었겠지만,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중년 시절을 거의 누리지 못했을 테니 서글픔도 꽤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은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젊은이 대접을 받으며 마을 일에 나서고, 80을 훨씬 넘긴 연세에도 직접 농사일을 거드는, 젊은이 같은 노인들도 많은데….
나이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달력상의 나이, 몸의 나이, 마음의 나이다.
달력의 나이야 어쩔 수 없지만, 몸의 나이는 달력 나이와 다르다. 젊은 나이에 병석에 누워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세가 되어서도 젊은이 못지않게 활동하는 노인도 있다. 같은 날 출고된 자동차라 하더라도 관리하기에 따라 폐차 시기가 다른 것처럼, 몸의 나이도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마음의 나이는 생각하기 나름인가 보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좋은 시절이 다 지났는데…’하며 달력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는 사람이 있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달력 나이를 무시하고 젊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건강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달력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얼마나 사느냐는 몸의 나이에 달려 있고, 어떻게 사느냐는 마음 나이에 달려 있다. 젊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나이가 신체 나이보다 적은 것은 물론, 달력 나이 보다는 훨씬 젊다.”
마음의 나이가 먼저 늙는 사람이 몸도 빨리 늙어지고, 마음의 나이를 젊게 해야 몸의 나이도 젊어지는 모양이다.
나도 이제는 ‘내 나이가 몇 인데…’ 라는 생각 대신, ‘내 나이가 어때서…’란 생각을 하면서, 달력 나이에 스스로를 가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겠다. ‘주책이다. 나잇값도 못 한다’는 소리를 좀 들을지라도 마음의 나이는 더 젊어지도록 애써야겠다. (201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