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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어린시절

자갈 길. 2014. 10. 24. 12:08

 

 

나의 어린시절

이 석 도

 

   어린이집에 들러 손자를 데리고 부근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그곳엔 벌써 일찍 하원한 어린이집 친구들 여럿이 놀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던 낯익은 아이어머니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한 어머니가 핸드폰을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얘, 끝났으면 빨리 어린이집 옆 놀이터로 와.”

   잠시 후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엄마와 가방을 바꿔들고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드님인가요? 어딜 가는데 저렇게 급해요?”

   “초등학교 3학년 큰아들인데, 태권도 마치고 영어 학원에 가는 게 좀 늦네요.”

   태권도를 마치자마자 운동복 가방과 책가방을 바꿔 들고, 황급히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측은하게 보이면서, 학교만 파하면 사시사철 산과 들판으로 뛰어다녔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봄이 되면 참꽃이 활짝 핀 뒷산에 올라 새끼줄을 타며 나무막대기로 칼싸움 흉내를 내던 전쟁놀이로 하루해가 짧았고, 보리타작이 끝나면 까끄라기 태우는 불에 구워먹었던 감자와 그을린 밀 이삭의 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소쿠리를 들고 다니며 주웠던 보리 이삭이 때로는 한 끼의 양식이 되던 때, 학교에서 점심으로 나눠주던 강냉이죽은 별미였다.

   우리 집에서 조그만 양계장을 할 때는 닭에게 조개껍질이나 고기를 먹이면 계란을 많이 낳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대나무 작대기와 기다란 철삿줄을 들고 들판으로 나가 개구리를 잡곤 했다. 그래서 요즘도 저수지나 논에서 혼비백산하여 물로 뛰어드는 개구리가 보이면 ‘이놈들이 아직도 나를 무지 무서워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온다.

   여름에는 강에서 살다시피 멱감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자연스레 헤엄치는 요령을 터득했다. 먼 산에 구름이 내려앉는 게 보이면 머지않아 비가 쏟아진다는 것을 알고 돌멩이로 옷을 숨기고, 토란 잎에 물방울을 굴리며 놀다 널따란 토란 잎을 우산 삼아 비를 피했다. 강가 자갈밭에 누워서 솜털처럼 푹신해 보이는 하얀 뭉게구름에 꿈을 실었고, 모깃불 피운 평상에 누워서는 칠흑처럼 캄캄한 밤하늘에 마치 흐르는 강물 같은 은하수를 보면서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떠올렸다. 그러다 불화살처럼 떨어지는 별똥별이 보이면 소원을 빌기도 하면서.

   고향의 가을은 배부른 계절이었다. 지천으로 깔린 감나무에 달린 빨간 홍시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고, 덜 여문 벼를 쪄서 만든 찐쌀, 도랑을 막고 물을 퍼내면서 잡는 미꾸라지, 벼 이삭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메뚜기로 만든 반찬은 지금도 입맛을 돋게 하는 고향의 맛이다. 그리고 가을걷이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부모를 도와 땀 흘릴 줄도 알던 계절이었다.

   누런 콧물을 훌쩍 거렸던 겨울에는 얼음놀이에 거북 등처럼 튼 손등을 소죽가마에 넣어 문질러야 했지만, 철사를 끼워 만든 앉은뱅이 스케이트는 겨우내 최고의 놀이기구였다. 그러나 썰매를 타던 얼음이 깨져 젖은 옷을 논두렁 불에 말리다 태운 날이면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향의 하늘과 땅, 나무는 물론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까지 스승 아닌 것이 없었다. 화롯불에 밤과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들었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재미난 동화책이었다.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남다른 지식이 필요하고, 외국어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어릴 때 자연과 친하게 지내다 보면, 자연을 통해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을 텐데…’, ‘책상머리 공부는 좀 더 커서 해도 늦지 않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자연만큼 위대한 스승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내 손자도 조금만 더 크면 태권도를 배우고, 영어학원에 다니겠지.

   할아버지인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손자, 아니 모든 아이들이 어릴 때만이라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1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