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고향까지-다섯째 날
2014. 10. 5. 일요일
문경새재를 넘는 날.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 침을 삼켰더니 목아 따끔따끔했다. 목감기의 전조 현상 같았다.
'피로 회복제도 먹고 푹 잤었는데…' '난방이 좀 시원찮긴 했었도 침대 속은 제법 따뜻한 게 괜찮았었는데…'
높은 산기슭의 마을이라 실내 공기가 서늘했지만 일어나자마자 미지근한 욕조물에 한참 동안 몸을 담갔더니 한결 나아졌다.
별로 돈벌이는 안되지만, 건강을 위해 서울 여의도에 집을 그대로 둔 채 귀촌해서는 이곳에서 모텔을 운영한다는 노부부에게 하룻밤을 잘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모텔을 나섰다. 7시였다.
한참을 걸어도 산골이라 아침 사 먹을 곳이 없어 그냥 걸었다.
새재로 가는 길목 도로변에 시멘트로 만든 인공 바위 같은 것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무슨 용도일까 궁금했다.
가까이 가서 만져보았더니 시멘트가 아니었다. 호박(?) 같았지만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식용보다는 가축의 사료용이 아닐까 싶었다.
마침내 조령산 앞에 섰다.
문경새재.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오갈 때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
이번의 「걸어서 가는 고향길」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구간이기도 했다. 얼마나 힘들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나는 옛 선비의 길을 걷고 싶어 추풍령 길을 택하지 않고 문경새재를 택했던 것이다. 문경새재를 넘는 큰길은 내가 선택했던 길, 즉 이화령길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령산에 들어서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오늘 넘었던 이화령길 이외에 소조령길이 있었는데…,
소조령길을 넘어야만 예전에 선비들이 통과하고 머물렀던 제3관문(조령관), 제2관문(조곡관), 제1관문(주흘관) 등을 만날 수 있고, 또 장원급제길을 걸을 수 있고, 낙동강 발원지까지 볼 수 있단다.
'오호통제라.'
그렇다면 정작 내가 원했던 옛 선비의 길은 지금 들어선 이화령길이 아니라 소조령길이 아닌가 싶었다.
조소령길과 이화령길의 도보거리는 별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도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었다. 고개너머에 있는 「더덕나라 」라는 펜션에서 文友가 점심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화령을 넘어야 했다.
굽이굽이 이화령길을 올랐다.
뚜벅뚜벅 시나브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 맑은 공기.
적막함에 가까운 이 고요함.
간간히 코 끝을 간지럽히는 은은한 이 솔향.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었던 이 자유로움.
이런 곳에 살고 있노라면 절로 詩人이 되든지, 神仙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옛 仙人들이 이런 곳을 찾아 세상을 周遊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선지자 김삿갓도 방랑시인이 되었나 싶었다.
이화령 길을 한참 걷다 보니 얄팍한 내 머리에서도 뭔가가 뛰쳐나오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뛰쳐나올 힘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았다. 살짝 터치만 해도 입 밖으로 술술 나올 것 같았는데…, 입 밖으로만 나오면 괜찮은 시구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 甲子의 세월을 살면서 나오고 싶어 몸부림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힘을 키우지 못한 나를 자책하면서 걸었다. 내 머릿속을 채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언젠가는 詩를 공부하리라 마음 굳히며 조령산을 올랐다.
이화령 고개에 올랐다.
매점에서 캔 커피와 건빵을 산 다음 건빵을 씹으며, 커피를 마시며 재를 넘었다.
마침내 경상북도 땅이었다. 내리막길을 한참 걷자 몇 채의 건물들이 보였다. 몇 해 전 교직을 정년퇴직한 후 서초문화원에서 나와 수필 공부를 같이하는 文友가 서울을 오가면서 운영한다는 [더덕나라 펜션] 간판이 보였다. 반가웠다. 입구에서 일하던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펜션 안으로 들어서자 文友가 남편과 함께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 사람이 한참 동안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다 문우가 점심 준비를 하러 간 사이 문우의 남편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펜션 주변을 구경시켜 주었다. 함께 꾸지뽕 열매를 따기도 했다.
직접 농사지은 배추쌈과 불고기 등 맛난 점심에 막걸리까지…, 닷새만에 맛보는 집밥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문우는 떠나는 내게 꽁꽁 얼린 음료수 한 통을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다.
"헛개나무 차예요. 걷다 목이 마를 때 드시라고, 일부러 얼렸어요."
펜션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했으니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황금들판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보고, 논물이 거의 다 빠진 논바닥에서 논고동(논우렁이)을 보면서 농로를 걸었다.
농수로 도랑을 양쪽에 막곤 물을 퍼내면서 배때기가 누런 미꾸라지를 잡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가 그리웠다.
구불구불한 문경 불정천을 따라 길을 걸었다.
오후에만 21km를 걸어 목적지인 불정역에 도착했더니 오후 5시 30분이었다.
불정역은 석탄수송을 위해 생겼던 역이란다. 그러나 석탄산업의 불황을 겪으면서 탄광들이 폐광된 탓에 1993년에 폐쇄되어 요즘은 레일바이크(철로 자전거)를 타는 관광지가 되었단다. 그런데 잘 곳을 찾았지만 모텔은 전혀 보이지 않고 몇 펜션만 눈에 띄었다.
20리를 더 가야 모텔이 있단다. 할 수 없이 깨끗해 보이는 한 펜션에 들어갔다.
펜션의 요금은 모텔보다 훨씬 비쌌다.
그런데도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욕조도 없었다.
물론 PC도 없었다.
욕조가 없다고 불평을 하자 주인장이 발만이라도 담그라면서 큰 대야를 갖다주었다.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데 주변에는 식당이 없었다. 그 마을엔 작은 매점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펜션에서 끓여 먹기 위해 매점에 라면을 사러 갔다
그런데 그 매점엔 일반 라면은 없고 컵라면 몇 개만 있었다.
우유를 찾았지만 우유도 없었다. 유통기간 때문에 팔지 않는단다.
컵라면을 사들고 펜션에 왔더니, 이를 본 주인장이 라면에 말아먹으라면서 밥을 한 그릇이나 갖다주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밥을 넣었다. 시장이 반찬이었다.
모양이야 멍멍이 죽처럼 보였지만, 맛은 꽤 괜찮았다.
김치만 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욕조에 몸을 담갔으니 오늘은 그만하라고 욕조가 없고, 점심을 잘 먹었으니 저녁엔 대충 먹으라는…,
※ 오늘의 도보경로(31.2km): 스토리모텔→이화령길→더덕나라팬션→마성파출소→불정역 (걸음 수: 43,185보)
※ 오늘의 경비(56,500원): 과자, 커피 6,500원, 펜션 50,000원 )
이화령 더덕나라 펜션에서 오숙자 文友랑 그의 남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