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사직원 그리고 마지막 월급

자갈 길. 2014. 9. 23. 23:36

 

9월 30일 정년 퇴직을  열흘 남짓 앞둔 날

며칠만에 출근해 메일을 열었더니 인사부에서 보낸 것이 있었다.

퇴직시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신분증을 반납하라는 메일이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는 사직원도 있었다.

'정년 퇴직인데…, 사직원을 써야하나?'

'사직원을 쓰지않으면…, 퇴직을 안 시킬래나?' 

드라마를 보면 걸핏하면 사직서를 쓰고, 찟고 하더만

40년의 은행 생활, 아니 난생 처음 쓰는 사직서.

친절(?)하게도 인사부에서 보내 준 사직원 양식에는

빈칸을 채우고 날인이나 서명만 하면 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퇴직 사유를 체크하는 난에 정년이란 단어가 없고

계약기간 만료라는 난과 기타(  )라는 난이 있었다.

계약기간 만료에 체크를 해야 맞는지?

 기타 난의 괄호 속에 정년이란 단어를 적어 넣어야할지? 

나는 내가 꼭 사직원을 써야된다면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붓펜으로 멋있게 쓰고 싶었는데,

정년을 맞아 사직한다는 내용을 담아서

 

금요일인 이날의 메일에는 급여 명세서도 있었다.

9월 월급은 급여일이 일요일이라 금요일에 입금된 것이다.

급여 명세서를 보는 순간, 사직원을 쓸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기분이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찡∼ 해졌다.

40년 7개월 동안, 빨리는 줄지언정 단 하루도 늦지않았던 봉급.

지금까지 늘 적다고만 생각했지, 고마움을 몰랐던 월급이

새삼스럽게 고맙고, 소중하게 여겨졌다. 

오래 전, 봉급이 현금으로 나올 때는 갖은 잔꾀로 아내를 속여

삥땅을 치던 재미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월급이 통장에 입금되는

바람에 한동안 곤욕을 치렀던 추억의 월급.

지금의 나와 우리 가정이 있게 한 봉급.

이 9월의 봉급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월급이 될 것 같아

더 아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40년의 봉급은 나와 내 식구들만을 위해 쓰였으니,

이 마지막 월급만은 좀 뜻있게 쓰여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