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새로 생긴 즐거움

자갈 길. 2014. 1. 25. 23:57

 

 

2014.1.23. 여느 목요일과 다름없이

화구(畵具)를 넣은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출근했다.

옆자리의 동료가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李 부장은 가방이 패션이네요"

매일 똑같은 옷을 입으면서 색소폰 가방, 수필공부 가방,

화구 가방 등 요일별로 바꿔 들고다니는 가방을 빗대어 하는 말 같았다.

업무를 보면서 틈틈이 열 자루가 넘는 연필을 심이 길쭉하게

나오도록  깎은 다음 퇴근해 심산문화센타로 향했다.

카페테리아 존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마침 창 옆에 빈자리가 하나 보여, 얼른 자리를 차지했다.

묵직한 도시락 주머니를 꺼내 펼쳤다.

찰밥에 나물 반찬.

 전날 원준이 생일 때 먹었던 음식들과 같았다.

집사람이 찰밥은 김이랑 먹으면 맛있다더니

구운 김도 있고, 딸기 밀감 등 과일까지….

창밖으로 반포천의 겨울을 바라보며 혼자 먹는 도시락.

똑같은 반찬으로 집에서 먹을 때보다 맛이 더 좋다니…

원준이 생일상을 차릴 때는 사랑을 사위, 딸, 원준이 밥그릇에 고루고루

나누어 담고, 오늘은 사랑을 몽땅 내 도시락에만 담았나?  참 희한한 일이다.

문득 마누라가 해주는 밥을 먹는 횟수에 따른 우스갯 소리가 떠올랐다.

여자들은 집에서 한 끼도 먹지 않는 남편을 '영식님'이라 부르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남편은 '일식씨'

하루에 두 끼 먹는 남편은 '이식아'

세 끼 먹는 남편은 '삼식쉐끼'

간식까지 먹는 남편은 '간나쉐끼'라 부른다던데,

그럼 도시락까지 들고다니는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

재미삼아 그림공부 다니는 남편인대도

맛난 도시락까지 싸주는 마누라가 있으니

나는 장가를 잘 간, 행복한 사람이다.

목요일은 사진과 똑같은 연필그림을 그리는 재미가 쏠쏠한 날이었는데

이제 집사람이 싸준 도시락을 먹는 즐거움까지 더해졌으니

한층 더 기다려지는 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