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으로 본 나.
지난 11월 19일 화요일의 수필 창작반.
교수님께서 '글 쓰는 단계'에 대해 열강을 하셨는데,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주제 선정(설정)
* 작은 주제에 집중한 글이 좋다.
* 주제를 최대한 살린 글이 좋은 글이다.- 주제를 살리지 못한 글은 죽은 글이다.
- 고려시대 말엽의 학자 이엽과 최원도의 우정이야기
2. 소재의 수집과 선택
* 주제에 관련된 소재를 최대한 수집-다다익선.
* 소재는 평소 수시로 수집해 소재파일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 소재파일에서 주제에 알맞는 소재를 선택
3. 글의 종류 결정
- 사색적인 수필을 쓸 것인지, 서정적인 수필, 기행 수필 등을 쓸 것인지 결정
4. 글의 구성 - 글짜기 및 구상단계
5. 문장 기술 - 단문, 중문, 장문 등으로…
6. 퇴고 - 마음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퇴고를 해야 좋은 글로 완성됨.
그리고 강의 후에는
다른 회원들의 작품에 대한 話評을 하신 다음,
내가 군대 제대무렵 받은 앙케이트를 소재로 해서 나의 성격을 주제로 쓴
『남의 눈으로 본 나』에 대하여 화평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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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눈으로 본 나
이 석 도
(22)[초고, 2013.10.22. 퇴고, 2013.11.13.]
서가를 정리하던 중 낡은 바인더(binder)가 눈에 띄었다.
진해에 있던 옛 육군대학에서 사병으로 복무할 때 전우와 군무원들로부터 받은 앙케트 편철이었다.
제대를 한 달여 남겨둔 1977년 늦가을에 만든 앙케트에는 ‘보내는 마음’, ‘즐거웠던 때’, ‘마지막 남기는 말’ 등 몇 가지의 질문이 있었다. 그 중에 ‘당신이 본 저의 성격’에 대한 동료들의 멘트는 ‘35년 전의 나’를 생각해 보게 했다.
‘내성적이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내성적’ 뒤에 조용 얌전 온순 겸손 등 듣기 좋은 낱말을 붙인 전우들이 있었지만, 많은 기간을 나와 함께 지낸 고참병들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 ‘타협을 잘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지만 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졸병들의 응답에는 ‘외향적이고 유머가 많음’ ‘새침한 듯 사귀기 어렵겠다.’ ‘우수에 잠긴 인상’ 등도 있었다. 같은 부처에서 근무하던 한 군무원은 ‘별 재주도 없으면서 동면하는 개구리 같다.’라는 좀 색다른 글을 남기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윗사람이 시키는 일은 열심히 했고, 잘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시가 없으면 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으려 하지도 않았던 것 같으니, 그때는 꽤 수동적이었던 셈이다.
빳다를 군기잡기의 필요악으로 여겼던 시절, 내무반의 졸병들에게 얼차려조차 거의 시키지 않았으니 선한 고참병 같았지만, 실은 카리스마가 부족한 리더였고, 갓 배치되어 온 신병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때 따뜻하게 살펴주지 못했다.
제대 후의 직장생활에서는 어떠했을까?
평온한 시절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던 금융인에게 마치 저승사자처럼 밀어닥친 IMF, 리먼사태 등 몇 차례의 금융위기는 직장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도 큰 고비였다. 경쟁은 차치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했다.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이런 경쟁을 거치는 동안 나는 내 성격이 바뀐 줄 알았다. 오랜 기간을 영업현장에서 많은 고객을 만나면서 외향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으로 바뀐 줄 알았고, 하급직원들과 숱한 생사고락을 함께 할 때는, 내가 꽤 따뜻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40여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어울리길 즐기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고, 웬만해서는 타협할 줄 모르는 외골수인 것 같다.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면 잘 취하지 않는다는 친구까지 있는 걸 보면, 직장에서의 활동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업무의 연장이었을 뿐, 성격의 변화는 아니었다.
어떤 책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결혼까지의 삶을 인생의 1막,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마치는 60세까지를 2막이라면서,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그런데, 나는 너무 긴장한 삶을 살아서일까?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를 훨씬 넘어 이순(耳順)에 이르렀건만, 내 얼굴은 젊은 날보다 오히려 더 굳고 딱딱해져 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지만, ‘내가 내 성격을 바꾸는 것은 이렇게나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과 많이 다를 제3막의 삶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내성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웃의 아픔에 같이 눈물을 흘릴 줄 알고 자비와 미소가 가득한 사람,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라 서산 넘어 저물면서까지 주변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석양처럼, 따뜻하고 사람 향기를 물씬 풍기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알 낳을 준비를 하는 것처럼, 나도 인간미 없이 살았던 세월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마음공부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