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야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뽀미 이야기)

자갈 길. 2012. 6. 15. 01:18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개(dog)를 별로 좋아 하지 않았다.

강아지는 집을 지키고 사람이 먹다 남은 찌꺼기나 먹으면서 자라는 동물, 여름이면 동네 어르신들께서 개장국을 즐겨 드시는 걸 많이 보아서 인지, 개(dog)는 다 크면 사람들이 잡아먹는 동물 정도로만 알았다.

 

1)1979년 11월에 결혼한 내가 종암동에 살던 신혼 때 일이니 아마 1980년이 아닌가 생각된다. 

퇴근해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밥상에 아주 먹음직스러운 국이 놓여 있어 집사람에게 무슨 국인가 물었더니

보신탕인데... 형부도 잘 드시고, 남자에게 좋다해서 경동시장에서 고기를 사고 언니에게 끓이는 방법을 배워 무서워지만 겨우 끓였다며 자랑하길래 입에도 안 대는 보신탕을 끓였다고 엄청 화를 냈던 기억이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고 부끄러운 짓이다. 후회스럽고 집사람에게 많이 미안할 뿐이다.  

 

2) 대리로 승진해 한일은행 포항지점에 근무하던 1987년 어느날,

포항 육거리 부근에 있는 큰 정형외과 원장님 댁을 섭외차 방문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들어 서는데

주먹만한 강아지가 왕왕거리며 주위를 맴돌더니 갑자기 내 종아리를 물었다. 원장부인은 강아지를 부르며 물린 나에게 괜찮으냐 묻는다.  종아리가 조금 따끔하고 화가 치밀어 강아지를 발로 뻥 차버리고 싶었지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은행으로 돌아와 종아리를 걷어 보니 상처가 나고  피가 좀 흘렀다.

며칠 후 은행에 오신 어떤 거래처 사장님이 점심을 사겠다며 보신탕 집에 데려갔는데, 그날이 보신탕이라면 입에도 대지 않던 내가 보신탕을 처음 먹은 날이며,지금도 일부러 찾아 다니며 먹지는 않지만 구태여 피하지 도 않는 음식이 되었다. 아마 내 종아리를 문 강아지에 대한 보복(?) 심리가 작용했던 모양이다

 

3) 내가 한일은행 서초중앙(현 법조타운)지점에 근무하던 1990년 무렵, 예금유치를 위해 서울고 부근에 살고 계시던 중앙정부 고위직의 고향선배 짐을 심방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뵌 사모님이 예쁜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면서

"**야, 엄마한테 온"

이라며 강아지를 자식인양 취급하는 걸 보고 속으로

"그럼 자기가 개를 낳았다는 거야, 자기는 개 엄마네..."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절대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러한 나의 영향인지 두 딸과 집사람도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두 딸은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큰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게다. 학창시절은 물론 얼마전까지만 해도 길을 가다 주먹만한 강아지라도 보이면 꼼짝을 못하다 옆길로 돌아가곤 했다. 보라는 여고시절 강아지를 피해 도망가다 넘어져 다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얼마나 강아지를 무서워 하는지 옆에서 지켜 보기가 민망할 때도 있었고, 결혼 후 아기랑 있다 강아지를 만나면 피하다 사고를 당할 수 있겠다는 염려, 개에 대한 공포심이 손자들에까지 옮겠다는 걱정이 되어 어떻게든 강아지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주고 싶어 강아지를 기르자고 제안했으나 집사람과 딸들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이러했던 우리 집에 수 년 전 들어 와 지금은 집사람과 두 딸은 물론 두 돌이 지난 손자의 사랑까지 듬뿍 받는 한 가족이 된 놈이 있다. 집사람과 나는 고놈을 부를 때 "뽀미야, 엄마 아빠한테 와" 그리고 우리 딸들은 그놈을 데리고 산책 갈 때 "뽀미야, 언니랑 산책가자."라고 한다. 어쩌면 뽀미를 고모라 부르지 않고 멍멍이라 부르는 내 손자만이 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눈감고 발랑 누워 재롱 피우며 손길 기다리는 뽀미)

 

-뽀미가 우리가족이 되기까지-     우리은행 독산동 지점에서 지점장 생활을 끝내고 임금피크 발령을 받기 직전인 2008년 12월 어느날     인근지점 지점장들과 저녁모임이 있었다.  모임에서 대화 중 개(dog)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나는     딸들의 강아지에 대한 공포심을 걱정했더니, 옆자리의 지점장이 강아지 한마리 줄테니 키워 보란다.     11월 11일 태어난 강아지인데 젖 떼면 주겠노라고...   강아지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내가 그때는     갑자기 보지도 못한 그 강아지에게서 우리가족과 어떤 인연 같은 걸 느꼈다.           집에 돌아와 집사람과 딸들에게 강아지를 키우자고 했더니 첫 반응은 영 시원찮았으나,      강아지가 태어난 11월11일은 바로 나와 집사람의 결혼기념일로 우리가족과 어떤 인연이 있을지 모른     다는 점과 아직 젖도 떼지 않을 만큼 아주 작고 어려서 무섭지 않을 거라며 설득해 데려 오기로 했다.     2009년 1월 중순 드디어 그놈이 우리집으로 오니 첫날부터 내 딸은 처음엔 다소 무서워 하면서도 작고     귀여운 모습에 정을 주면서 점점 빠져 들었다. 그러다 언제부터는 품에 안고 젖병을 빨리더니..     며칠 후에는 "뽀미"라는 예쁜 이름도 지었다.

 

 (기저귀 차고...)

 

 

 

(보라언니 품에 안겨...)

 

서초동 래미안에 살 때는 우리 뽀미의 짖는 소리는 대단했다.

한번은아파트 내에서 산책하던 임산부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짖는 통에 임산부는 얼마나 놀라던지..놀라서 쫒아간 우리는

                                혹시라도 애가 떨어질까봐 며칠간 노심초사 했다네...

  

(나는 요크샤테리아 입니다.)  (탈장수술 받았어요)

 

 

 

(난 보라언니가 제일 좋아요)

 

 (첫 돌무렵의 손자랑 세발 자전거도 타고...)

 

 

 

2012년2월 양재동 사는 두 딸집 부근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이웃에 방해될까 봐 짖지 못하도록 성대제거 수술을 했다..                          가족들이 외출에서 집에 들어오면 뽀미는 반갑다고 힘껏 짖지만 소리는                         나지 않고 바람 새는 듯한 소리만 들려서 너무 미안하고 너무 안쓰럽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하는 우리가족들은 더 많은 사랑을 주려고 애쓴다.  틈틈히 근린공원과 시민의 숲에 데려가고 가끔은 양재천 산책에 데려간다. 특히 보라는 수시로 퇴근시 뽀미가 보고 싶다며                         친정에 오고 주말에는 틈만 나면 자기 집에 데려 가 같이 놀아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뽀미도 보라언니를 가장 좋아하고 잘 따른다.                        그 다음은 병돈이 오빠(보라 남편)를 좋아하는 것 같다.                         엄마 아빠는 그 다음...                         세라언니랑 동진이 오빤 그 다음 다음...                        가끔 사랑을 거칠게 표현하는아기 천아를 가족 중에서 제일 무서워 한다.  

 

이제 우리가족 모두는 새 가족 뽀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답니다.뽀미 덕분에 내 두딸은 전혀 개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 애완견을 만나면 옆에 다가가 어루만지며 귀여워해 주고, 큰 개가 다가와도 피하지 않는 답니다.갓 두돌 지난 손자가 강아지를 무서워 하지 않고 안아주는 걸 보면서... 집사람은 뽀미가 우리가족들에게 큰 선물이었다고 말 합니다.우리는 앞으로도 뽀미를 사랑하며, 같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것 입니다. 

 

(뽀미랑 미끄럼 타는 정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