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방

할아버지와 손자

자갈 길. 2013. 9. 10. 21:17

오래된 한 회원은 문단나누기와 띄어쓰기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의견과 함께 재미있는 소재이지만

'가족이야기'는 감동을 유발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교수님의  내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이 많다며 이런 문장은 필요치 않다며

과감하게 빼낼 줄 알아야 깔끔한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결말도 조금은 더 인물의 연결로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

할아버지와 손자

이 석 도

(⑭ 초고, 2013.8.13, 퇴고, 2013.9.5)

  손자를 데리고 야채를 사러 갔다.

  잘 걷던 손자가 춥고 어둑해지는 게 무서웠던지 안아달라고 했다.

  한 손에 묵직한 시장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팔로는 손자를 안고 한참을 걸었더니, 손자는 두툼한 옷차림으로 안겨 있기가 불편했던지 용을 써 매달렸다.

   “아이쿠! 아가야, 할아버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놓치지 않아. 할아버지는 팔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손자는 절대 놓치지 않는단다.”

   갑작스런 말소리에 뒤돌아보았더니, 내 나이쯤 됨직한 중년 남자였다.

   약간은 비틀거리는 걸음새를 봐서는 한 잔 마신 것처럼 보였다. 말을 한 번 건네 볼까 하다가, 취기가 염려되어 걸음만 늦추고 그냥 앞서 걸었다.

   그는 뒤따라오면서 또 내뱉듯 중얼거렸다.

   “그래, 너만 할 때가 제일 좋지,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겠나?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래,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자신이 할아버지의 품에 안겼던 아기 때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나처럼 자신이 손자를 안고 다니던 때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허탈감이 묻어 있었다.

   몇 해 전, 모처럼 집에 오신 아버지가 손자의 기저귀를 빨고, 밥을 먹이고, 여기저기 안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대견스러운 듯, 하신 말이 떠올랐다.

   “허허허, 세상 참 좋아졌다, 그래, 마음껏 이뻐하고 사랑해 주거라.”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느그 아부지가 무척 부러우신 모양이다.”면서 말을 이었다.

   “옛날에는 먹고살기 바쁘고, 어른들의 눈치를 보느라, 할아버지들은 손자들이 아무리 이뿌고 귀여워도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다. 어쩌다 손자를 업고 한길에라도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흉을 다 봤으니, 그냥 무릎 위에 앉히고 어르는 게 전부였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에 태어난 나는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보기는커녕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자라서 할아버지의 사랑도 전혀 몰랐다.

   그렇지만 술기운의 중년이 내뱉은 말에서 모든 할아버지들의 손자 사랑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 할아버지도 나의 아버지처럼, 아니면 나처럼, 손자인 나를 대해 주셨겠지, 사진속의 할아버지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