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방

손자 이름짓기

자갈 길. 2013. 6. 13. 23:36

지난번 화요일(6월 11일)은

5월 14일, 내가 네번째로 제출한 작품 「이름 짓는 일」이 비평대에 오른 날이었다.

먼저 나의 종전작품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는 선배 회원들의 작품평이 있었다.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아 이해가 잘 안된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이 좀 상할만큼 신랄하게 비평했다.

하긴 지금까지 신랄한 비평에 기분이 나빠 아예 수업을 그만둔 사람이 서넛이나 있었단다.

그렇지만 좀 혹독하게 들리는 비평이 훨씬 가슴에 와 닿았다.

 

교수님의 비평도 있었다.

먼저 당초 내가 정한 제목이 맞지 않다고 했다.

내 글의 내용을 보면 "이름 짓는 일"보다 "손자 이름 짓기"가 어울리 겠다고 했다.

문단 나누기도 여전히 부족하며 너무 장황하게 쓴다고 했다.

장황하게 썼더라도 퇴고과정에서 꼭 필요치 않는 문장은 제거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했다.

내게 매주 작품을 쓰고 있으니 발전 속도가 빠를 거라는 격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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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이름 짓기

이 석 도

(⓸ 초고, 2013.5.14, 퇴고, 2013.6.11)

 

   “아빠! 우리 보송이 이름 좀 지어 주세요.”

   퇴근하면서 친정에 들러 함께 식사하던 딸애가 웃으며 청한다.

자신의 이름 한 자와 남편의 성씨를 따다 태명을 ‘보송’이로 지었다지만 나는 ‘뽀송’이라 부르고 있다.

   딸애는 늘 딸을 낳고 싶어 했는데 성별 검사에서 아들로 확인되어 좀 섭섭한 모양이다. 그러나 딸의 시아버지는 좋아하시면서 아들에게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규”란 돌림자를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단다.

   뽀송이의 이름을 송씨 성에 돌림자를 ‘규’로 해야 한다면, 지을 이름자는 한 글자밖에 안 된다. 한 글자만 짓는 거라 더 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어렵다.

   이름을 짓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작명가들은 이름도 음양조화가 맞게 잘 지어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성공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큰돈을 들여 잘 지었다는 이름의 주인도 크게 실패하거나 큰 불행을 겪는 걸 보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부르기 좋고, 듣기 좋고,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 좋은 이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결혼 10개월 만에 쌍둥이 딸의 아빠가 되었다.

정신이 없던 중 출생 신고는 해야 하고 이름은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순 한글이름으로 ‘보라’와 ‘세라’로 지었다. 집사람은 지금도 이름을 너무 쉽게 지었다며, 한글이라 뜻이 없다며 잔소리를 한다.

   오래 전 대우자동차에서 ‘누비라’와 ‘아벨라’라는 신차를 개발했다.

‘누비라’는 ‘세계를 누비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해서 많이 팔렸지만, ‘아벨라’는 처녀들이 임신할까 봐 엄마들이 꺼려서 실패했다는 농담같은 이야기가 있다.

   서초동과 역삼동에「아르누보 시티」란 빌딩이 있다. 나는 이 빌딩을 볼 때마다 여기에 살면 ‘앓아눕게 되나 보다.’ 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처럼 상품이나 건물의 이름은 구매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상품의 가치를 나타낸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이름은 그러하지 않다. 독점해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이름이 똑 같다하더라도 가치까지 같아지지는 않는다.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름,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 가장 좋겠다.

   뽀송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는 딸에게 말해야겠다.

   “아기 이름에 연연하지 말고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서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잘 키우거라.”

   외할아버지가 지어주기를 원한다면, 돌림자 ‘규’자에 ‘재’를 넣어 ‘재규’가 어떤지 물어봐야겠다. 아프리카 표범인 ‘재규어(jaguar)’도 연상되어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지 않을 것 같다. ‘송재규-재규어’ 부르기도 좋고 기억하기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