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방

세번째, 야외수업과 김유정

자갈 길. 2013. 6. 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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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수업과 김유정

이 석 도

(⓷ 2013.5.7 초고, 퇴고,2013.6.4)

    나는 김유정을 전혀 몰랐다.

    수필창작반에서 야외수업으로 김유정 문학관을 간다기에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20세기 초반의 소설가였다.

    그는 『소낙비』『봄봄』『동백꽃』등 30여의 소설을 남겼지만, 내가 읽은 작품은 전혀 없다.

    인터넷을 뒤지던 나는 그의 작품보다 그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 시절 힘들게 산 문인들이 어찌 그 혼자일까마는 그는 불행해도 너무 불행했다. 대지주의 아들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곱 살에 엄마를 여의고, 아홉 살에는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그는 아버지의 전 재산을 물려받은 형에게 의탁해 살았지만, 처자식조차 보살피지 않는 난봉꾼인 형이 동생이라고 제대로 거둘 리 만무했다.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그는 다른 피붙이들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결국 29세란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수필창작반 야외수업은 상봉역을 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좌석에 앉아, 바닥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전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김유정 역, 기와지붕 역사가 멋있다 싶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역이란다.

    역에서 채 500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산자락에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문학관. 우리 일행을 맞은 해설자가 김유정의 일생과 작품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어 엄마 사랑에 굶주렸던 김유정은 연상의 명창 박록주로부터 엄마를 느꼈던 모양이다. 4년 동안 학업을 포기하면서 애절한 짝사랑의 편지를 보내며 집착했으나, 단 한 장의 답장도 받지 못하고 크게 상심해 건강까지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 또 친구의 여동생을 짝사랑했으나 그녀는 다른 문인과 결혼했고, 김유정은 술로 상처를 달래느라 건강이 더 나빠졌다는 이야기, 숨지기 열흘 전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였던 ‘필승 전’의 내용을 전문 해설자의 해설을 통해 들으니 비통함과 측은함은 더 커졌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어느 누구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한 것 같은 그의 삶이 애처롭기 그지없지만, 한편으로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며 자신을 학대한 삶으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어리석음에 더 큰 연민을 느꼈다.

    그가 건강을 회복해 뛰어난 재능으로 못 다 받은 부모님의 사랑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더라면 훌륭한 소설을 훨씬 더 많이 남겼을 뿐 아니라 그토록 사랑하고자 했던 여인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봐야하는 아픔을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김유정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던 해설자는 소설 『동백꽃』의 동백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철 푸르고, 열매 씨로 기름을 짜며, 초봄 빨간 꽃이 피는 나무가 아니라고 했다.

    강원도에서는 이른 봄 산수유와 아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모양으로 피는 생강나무의 꽃을 동백꽃이라 부르며, 국민가요가 된 「소양강 처녀」의 노랫말에 나오는 동백꽃도 역시 노란 동백 즉 생강나무의 꽃이라고 했다.

    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봄기운을 가슴에 담으며 주변 마을길을 걸었다.

    김유정이 어렸던 시절, 짧게나마 엄마와 아버지가 함께했을 행복한 시절, 대지주였던 그의 아버지가 대부분 소유했다는 그 때 마을 땅에 그어진 길을….

    그의 흔적이라고는 문학관밖에 없는 그의 마을이 온통 뒤집히고 있었다.

    너무 불우했던 삶, 너무 짧았던 그의 삶이야 불쌍하고 애처롭지만 그를 기념하기 위해 문학관이 지어졌고, 그 이름의 도로가 만들어졌고, 국내 최초로 그의 이름을 딴 전철역이 생겼다.

    이제는 마을 전체를 김유정 문학촌으로 만들고 있다.   

    살아 있을 때는 몇 여인들로부터도 받지 못한 사랑을 사후에는 온 국민으로부터 받게 되는 셈이 되었으니 하늘에서의 그는 행복하리라 .

     수필창작반 교수님은 소설가 김유정이 그토록 어려웠던 환경과 짧은 시간에서도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며, 그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환경의 우리들에게 수필공부에 더욱 매진토록 분발을 당부하시는데, 불쑥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고사 직전의 소나무가 더 많은 솔방울을 맺고, 미개한 나라의 출산율이 높은 것처럼 열악한 환경이 되어야 종족번식에 더 열중하는 게 자연의 이치라면, 내가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것은 재능이 없고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이겠지만, ‘혹시, 다급함이라도 있으면 좀 나아질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