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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목에 피는 꽃

자갈 길. 2025. 5. 1. 10:02

고목에 피는 꽃

돌담 이석도

 
  4월 양재천의 첫 주말은 더없이 화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양재천을 따라 걸으며 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그들 인파 속에 섞여 양쪽으로 도열한 벚나무들이 꽃 터널을 이루고 있는 양재천 둑길을 걸었다. 1km는 걸었을까? 한 아름은 됨직한 벚나무 앞에서 연인인 듯 보이는 젊은 남녀가 사진 촬영을 부탁하며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아름드리 벚나무 둥치에서 두꺼운 껍질을 뚫고 핀 몇 송이의 벚꽃을 너무 예쁘다며 아기를 쓰다듬듯 어루만지는 포즈를 취했다. 젊은이들의 그런 포즈를 바라보면서 나는 한때나마 벚꽃을 마뜩잖아했던, 심지어 조금은 미워하기까지 했던 기억과 함께 추억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연둣빛 산과 들에 초록 덧칠 한창이던 꼭 오십 년 전 5월.
  대구에 있는 50사단 신병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나는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으로 배속 명령을 받았다. 인솔자를 따라 육군대학 정문에 들어서자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대로 양쪽으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고목들이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 이듬해 봄이 되자 그 가로수 고목들은 가지마다 아름다운 꽃들을 눈송이처럼 매달고, 진해시는 통째로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군항제가 시작된 것이다. 1900년대 초부터 주요 해군기지로 이용되면서 군사도시가 된 진해는 일제강점기에 십만 그루 가까운 벚나무를 가로수와 군항림으로 심어 가꿨단다. 그 덕에 1963년부터 매년 3월 말쯤 벚꽃 축제를 겸해 열리는 진해 군항제는 전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었던 육군대학도 이 축제 기간 동안은 이들 관광객들에까지 전면 개방되었다. 평소엔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군사 시설이지만 군항제 기간엔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대학 안의 아름다운 벚꽃뿐 아니라 잘 가꾸어진 교정도 구경할 수 있어 많은 인파가 몰리곤 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병들에겐 즐거움은커녕 되레 힘든 날이 되었다. 축제가 끝날 때까지 가장 큰 즐거움인 외출과 외박이 중단되는 데다 비 내리는 날에는 한숨이 절로 쏟아졌으니….  떨어진 벚꽃들이 도로에 널브러져 있으면 청소를 해야 했다. 그런데 심한 비바람이 지나간 다음 날이면 이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비에 젖은 꽃잎이 아스팔트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빗자루로는 아무리 쓸고 쓸어도 쓸리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고참을 제외한 모든 졸병들은 새벽부터 물을 가득 담은 양동이를 들고 다니면서 도로를 씻어야 했다. 부대 내의 많은 도로를 사병 수십 명이 다 씻어내기에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사역이었다. 이뿐 아니다. 군항제 기간 중에는 초소에서 보초를 서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풍경이 있었다. 이 풍경에 나도 모르게 ‘탈영’이란 단어가 뇌리를 스치곤 했으니···. 만발한 벚꽃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는 그림 같은 연인들의 모습과 삼삼오오 어울려 다니며 눈웃음치는 아리따운 처녀들의 모습은 갓 이십 대가 된 초병들에겐 차라리 고문이었다.
  창경궁, 진해, 경주, 전주 국도변 등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벚꽃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곳곳에 벚나무를 심어 해마다 봄이면 전국 각처에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 서울에서도 여의도 윤중로, 안양천, 양재천 등 여러 곳에서 벚꽃축제가 열리는 걸 보면 봄의 화신은 벚꽃이 틀림없다 싶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나도 벚꽃이 좋아졌다.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잎이 돋기도 전에 송이송이 꽃잎을 활짝 연 아름다운 모습이 좋고, 꽃말마저 내가 좋아하는 글귀인 ‘정신의 아름다움’ 즉 ‘내면의 아름다움’이라 나이 들수록 더 좋아지는 것 같다.
  해마다 벚꽃이 활짝 피면 나는 아내와 함께 손주들의 손을 잡고 양재천 둑길을 걷는다. 겨우내 바싹 말라 죽은 듯이 보였던 나뭇가지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벚꽃을 보면서 삶의 행복을 느끼고, 산들바람에 흩뿌려지는 꽃비를 맞으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한 쌍의 젊은 연인이 취한 포즈를 통해 질긴 쇠가죽처럼 거칠고 두꺼운 껍질을 뚫고 핀 벚꽃에서 다른 아름다움을 보았다. 같은 벚나무의 꽃인데도 야들야들한 가지에서 핀 꽃보다 아름드리 고목 둥치에서 핀 꽃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것은 아마도 늙은 둥치에서 쇠가죽처럼 거칠고 질긴 껍질을 뚫고 힘들게 피었기 때문이리라.
  어디 나무에서만 그러하랴?
  해 질 녘마다 손주의 손을 꼭 잡은 채 공원을 산책하면서 하하 호호 웃음꽃 피우는 할머니들을 얼마나 자주 보는데···. 평생직장이었던 은행에서 은퇴한 후, 옛 동료들과 어울려서 함께하는 둘레길 트레킹, 등산, 바둑, 당구 등 동우회 행사에 참여해 노년을 즐기시는 선배님들의 얼굴에 활짝 핀 함박꽃을 본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회갑을 지나 그림 그리길 시작해 여든이 다 되어 개인전을 연 할머니 화가도 있고, 중학교 교장에서 정년퇴임한 후 운동을 시작해 전국규모의 몸짱 대회 우승은 물론 90대에 접어든 지금도 건강꽃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 고목도 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수명이 길어졌다.
  날마다 우리 집 앞 공원의 정자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이야기꽃 피우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노인대학과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원마다 노래 교실, 사진 교실, 시 교실 등에서 취미 활동을 즐기는 7080이 북적인다는 TV뉴스도 떠올랐다. 하지만 곧 병석에 누워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과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최근 들어 부쩍 많이 보이는 현실을 깨달았다. 아름드리 벚나무 둥치에 핀 꽃을 다시 바라보며 나는 두 손을 모았다. 서산까지 몇 뼘밖에 남겨두지 않은 석양에 물들고 있는 이들 고목에서도 벚꽃처럼 아름다운 행복꽃이 활짝 피어나길 마음도 모았다. 
(2025.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