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박 10일의 크루즈여행
2023. 10. 2. (월요일)
9월 23일 출국해 오늘 귀국했으니 9박 10일의 여행이었다.
당초 은규네 세 식구가 가기로 했던 9박 10일 크루즈여행이었는데 은규 아비가 회사에서의 추석연휴 전후 휴가가 여의치 않아 우리 부부가 횡재(?)한 셈이다. 크루즈여행이란 말에 처음엔 꺼림칙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엔 적잖은 크루즈 유람선에서 승선자의 70%, 80%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지만 항구마다 기항을 반대해 크루즈船들이 바다를 떠돌고 있다는 어두운 뉴스가 떠올랐지만 이제는 엔데믹 시절로 되돌아왔을 뿐 아니라 크루즈여행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데다 2019년 우리 가족 9명 모두가 함께 즐겼던 5박 6일의 동남아 크루즈여행의 맛을 잊지 못하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원준이네도 함께 가자고 했지만 우리가 가는 크루즈 여행상품은 벌써 다 팔려 예약 불가였으니...
점심때쯤 도착해 1박 하면서 즐겼던 홍콩의 낮과 밤
그리고 우리가 승선할 크루즈船, 'Spectrum of the Seas' 앞에서···
이번에 우리가 탑승한 로열 캐리비언의 'Spectrum of the Seas'는 톤수가 무려 168,666t인 데다 길이 347m, 폭 41m의 크기로 5,622명의 승객에 승무원이 1,551명이라니, 당시 초호화 크루즈船었지만 1912년 4월 15일 빙산과의 충돌로 침몰해 2,224명의 승선자 중 1,514명이나 사망케 한 悲運 유람선의 대명사가 된 타이타닉號( 너비 28m, 길이 270m, 톤수 46,000t)의 4배 톤수일 뿐 아니라 2019년 2월 우리 가족 9명 모두가 함께 즐겼던 5박 6일의 동남아 크루즈여행 때 승선하면서 이렇게 엄청 큰 배가 물에 떠다니다니 대단하다 싶었던 로열 캐리비언의 크루즈 유람선 보이저號(톤수 14만 t, 길이 311m, 폭 48m, 승객수 4,200명, 승무원수 1,170명) 보다도 더 컸다.
15층 갑판에 올라 홍콩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는 여행객들, 그리고 은규와 할미
2019년 동남아 크루즈여행에 이어 작년엔 엄마 아빠와 함께 지중해 크루즈를 다녀온 은규는
이번이 세 번째의 '로열 캐리비언 크루즈여행'이라면서 같은 회사의 유람선이라 내부구조가 비슷하다며
앞장서서 우리를 13층 632호실로 안내했는데...
지난 2019년 동남아 크루즈여행 때는 은규네, 원준이네, 우리 부부 등 우리 가족 3 가구가 각각각 룸 하나씩을 차지했는데, 방 3개 모두가 아주 깨끗하면서 아늑한 데다 세면대와 샤워부스를 갖춘 화장실이 있어 별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발코니가 없고 좀 좁은 데다 방 안에서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창문조차 없어 답답했었다. 그런데 이번은 4인실의 스위트룸이라 방이 무척 넓을 뿐 아니라 욕조를 갖춘 욕실까지 딸린 화장실이 있었다. 게다가 웬만한 아파트의 베란다보다 훨씬 넓어 언제든지 드러누워 맘껏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선베드(sunbed)가 4개나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용을 더 쓰고도 스위트룸을 찾는구나 싶었다.
船上에서의 식사 또한 더할 나위 없었다.
골드회원들만 출입이 가능한 골드 다이닝룸은 들어가지 못해 볼 수 없었지만, 스위트룸 입실자 등 실버회원 이상은 이용이 가능한 실버 다이닝룸은 한적한 데다 뷔페 또는 메뉴 주문으로 원하는 음식을 즐길 수 있어 좋았고, 일반회원 등 승선 여행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윈드재머 뷔페는 이용자가 많아 다소 혼잡하긴 했지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고 음식들이 다양해 한 번씩 이용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모든 여행객들이 이용 가능했던 4층 메인 다이닝룸의 메뉴 주문 음식은 먹는 것마다 꿀맛인 데다 담당 웨이터는 어느새 하얀 휴지로 아름다운 장미꽃과 종이학을 접어와 주문 음식을 기다리는 집사람과 은규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피게 하는 등 우리를 얼마나 살갑게 대하던지..., 또 새벽 2시까지 문을 열어 언제든지 맘껏 피자와 음료수를 즐길 수 있는 '소렌토' 등 곳곳에 간식 먹거리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마치 천국에 온 듯했다. 게다가 배 안에서는 술 종류를 제외하곤 먹고 마시는 것은 대부분이 공짜(?)였으니 이런 천국이 또 있을까 싶었다.
우리 가족 4명은 기항지 나가사끼에서 자유롭게 주변을 관광했던 시간과 가고시마에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검은 모래찜질 체험 등의 관광 시간을 제외하곤 크루즈'Spectrum of the Seas'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행복한 추억을 쌓았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엔 서울시내 고급 헬스장 못잖은 최신 기구를 갖춘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등의 유산소 운동과 덤벨 등의 근력운동으로 땀을 듬뿍 흘린 다음 사우나에서 또 땀을 빼고 나면 몸과 마음이 얼마나 가뿐하고 개운하던지...
또 낮시간엔 편안한 자리를 아지트로 자리 잡아 놓곤 3곳이나 되는 수영장을 은규랑 옮겨 다니며 수영, 물놀이 등을 하다가 힘들면 쉬고, 배고프면 피자, 빵, 커피 등의 먹거리를 가져와 먹고... 그러다 또 틈이 나면 은규를 비롯해 우리 가족 4명 모두가 함께 인공 암벽등반, 스카이 다이빙, 범프카, 컬링을 즐긴 다음 저녁시간에는 뮤지컬 '실크로드' '마술쇼' 등등 날마다 한두 편의 공연을 즐감한 후 15층 갑판의 한 바퀴가 600m쯤 되는 조깅트랙을 맨발로 대여섯 바퀴씩 걷느라 4,5층에서 명품의 시계, 의류, 가방 등을 파는 면세점과 슬롯머신, 카지노 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인공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자니 2019년 크루즈여행 때 암벽등반뿐 아니라 파도타기를 곧잘 하던 원준이와 세은이가 생각나면서 많이 보고 싶었다. '이 놈들도 함께 왔으면 그때처럼 수영, 암벽등반, 파도타기랑 새로운 놀이 레이저 서바이벌도 맘껏 즐길 텐데...' 하는 생각에 살짝 가슴이 아렸지만 이내 '그래 한 달 후 11월 초에 떠나는 우리 가족 9명 모두의 베트남여행 때 몇 배 더 사랑하리라.' 다짐하며 마음을 달랬다.
9월 29일 추석날에는 세 번째 기항지 가고시마에서 지금도 수시로 하얀 연기를 내뿜는 화산활동을 하고 있는 사쿠라지마 화산섬을 멀리 보면서 온천수가 흐르고 화산재가 들어있는 검은 모래찜질을 체험한 후 5,500년 전 화산 분화로 생긴 칼데라 호수 이케다湖를 눈과 가슴에 담은 다음, 1800년대 건립된 사무라이들의 고택에서 그 시절 무사들의 삶과 철학을 엿봄.
여행 중에도 날마다 평소처럼 수학 학습지 두세 페이지를 푼 다음 잠자리에 드는 은규가 얼마나 예쁘던지...
화장대 앞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은규를 보고 있자니 문득 보름 전쯤 주고받았던 대화가 떠올랐다.
저녁을 배불리 먹은 날이었다. 배도 좀 꺼줄 겸 은규를 데리고 집 앞에 있는 근린공원에 갔다.
은규 손을 꼭 잡고 산책로를 걷자 기분이 좋았다. 참 행복하다 싶었다.
"은규야, 할아버지는 참 행복해. 은규랑 원준이 세은이 덕분이야."
"할아버지, 정말 그렇게 행복해?"
"그럼, 아마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일걸."
"·························"
"은규야, 한마음 선원에서 윤회에 대해 배웠지?"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거?"
"그래. 내가 다음 생에서도 은규 할아버지 되고 싶은데, 괜찮을까?"
"네, 저도 할아버지 손자 또 되고 싶어요."
"원준이 형이랑 세은이는 어떨까?"
"원준이 형이랑 세은이도 틀림없이 할아버지 손자 또 되고 싶을 거예요."
내겐 은규를 꼭 안아주는 것 외에는 사랑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꿈같은 열흘이었다.
새벽마다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솟아오르는 해님을 바라보며 운동을 한 다음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한가로울 땐 발코니의 선베드(sunbed)에 비스듬히 누워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무념무상, 무아지경에 빠져 있노라면 내가 사람인지 신선인지 분별할 수 없었으니..., 순간순간 눈을 뜨면 잠들 때까지 매 순간, 아니 잠을 자는 동안에도 행복했으니 신선이 부럽지 않았다. 아니다 신선들에게 놀이란 바둑이나 장기밖에 없지만 크루즈여행 중에 나는 240여 시간을 은규와 한 몸이듯 지내면서 온갖 놀이를 즐긴 데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맘껏 먹을 수 있고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실컷 쉴 수 있었으니 신선 이상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내일모레면 칠십 줄에 들어서는 집사람이 '식사준비, 청소, 빨래 등등' 부담 많은 일상에서 벗어나 딸이랑 손자와 함께 인공 암벽을 오르고, 선상 컬링과 스카이 다이빙, 범퍼카 등등을 즐기면서 열일곱 살 소녀처럼 마냥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곧장 나의 행복이 되곤 했으니 어찌 꿈같은 시간이 아닐까.
하지만 길지 않은 크루즈여행에서도 크게 느낀 게 하나 있다.
나와 같은 크루즈船에 승선한 여행객이 5천 명도 넘지만 내가 본 여행객들의 2/3 정도는 중년 이상의 나이로 보였다. 또한 그들 중 절반 이상은 내 나이보다 많을 듯 보였는데 그들 대부분의 여유로운 매너와 몸짓은 젊을 때 열심히 일한 후 노년을 즐기는 문화 덕분이 아닐까 싶으면서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물려줄 논밭을 장만하기 위해 땀 흘리곤 했던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젊은 시절 직장을 최우선시하면서 가족에 무심했었던 나와는 달리 부부가 함께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저축해 해마다 한두 번쯤은 해외 등으로 가족여행을 즐기려는 두 딸과 사위들이 오늘따라 더 대견스럽고 더 고마웠다.
집에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열흘 동안 쌓였을 먼지를 청소했다.
내가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다가 내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걸레질하는 집사람에게 웃으면서 물었다.
"여보, 배 안에 있을 땐 청소 안 해서 좋고, 밥 안 차려서 좋았는데 걸레질할라카이 힘들제? 우리 또 여행 갈까?"
"됐어요. 우리 가족 9명 베트남여행 가는 날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그래도 힘들면 말하소. 열 달 있었던 엄마 배나, 크루즈나 배 안이 최고던데 또 크루즈여행 가게."
"그래요. 재충전 만땅 해왔으니 또 아이들이랑 열심히 살다가 다 방전되면 그때 또 손주 데리고 갑시다."
순간...
'칠십...'
'크루즈...'
'또 갈 수 있을까?'
'간다면 몇 번이나 더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