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여행, 등산...

축령산 1박 2일

자갈 길. 2022. 10. 3. 13:12

2022. 10. 2. 일요일

거북이도 이보다는 빠를 것 같았다.

지렁이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끝 모를 앞의 차들을 보고 있자니 '완전 작전 미스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축령산 자연휴양림으로 1박 2일 여행이라는 기쁨에만 들뜨서 우리 셋은 오늘이 황금연휴의 첫날임을 깜빡했던 탓이다.

9월 초였다. 늦은 나이에 山바람이 들어 시간만 나면 혼산을 즐기면서도 고교 친구들의 등산 모임인 '26산악회'의 산행대장을 역임하는 등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을 뿐 아니라 1년 4개월 동안 매월 한 번씩 함께 서울 둘레길을 걸어 마침내 지난 6월 유종의 미를 거두었던 기동 대장 귀동 친구가 전화를 했다.

"축령산 휴양림 신청했더니 당첨되었는데 같이 갈래?"

"몇 명이 가는데?"

"6명까지···"

"오케이!"

 

이렇게 시작된 오늘의 '축령산 1박 2일'

서울 둘레길을 함께 완주했던 5명, 그리고 교직 퇴직 후 부산에서 올라와 외손주를 돌보고 있는 친구 이동우.

여기에 기동 대장이 한 명을 더 초청했단다. 알고 보니 축령산과 무척 가까운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친구로 몇 해 전 백두산 여행 때 내 룸메이트였던 친구 신종진이었다. 그렇잖아도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산악회 모임에 곧잘 참석하던 친구였는데 코로나가 좀 잦아들었는데도 산행에 통 나오지 않아 궁금했었는데 이번 1박 2일에 차량까지 동원한단다.

오늘 여행의 전원 도킹 장소는 경춘선 마석역.

마석역에서 만나서는 4명은 종진 친구의 차로, 나머지 3명은 택시로 휴양림 숙소로 가기로 했는데 마석역까지 가는 교통수단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방법은 지하철로 상봉역까지 간 다음 상봉역에서 경춘선으로 환승하는 것으로 경로우대증을 소지한 우리들에겐 교통비조차 전혀 들지 않으니 최상(?)의 방법이지만 몇 번의 환승이 번거롭겠다 여기던 차,

수원에서 출발하는 기동 대장과 송파구에 거주하는 홍이 장군은 잠실역에서 광역버스로 마석역에 간단다.

일찍 집을 나선 나는 아침부터 완전 촌놈이었다.

잠실역에 도착해서는 지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했으니···

몇 해 전까지는 없었는데 초고층 롯데타워가 유발하는 교통체증을 방지하기 위해 도로 밑 지하에 만든 환승센터.

이곳에서 기동 대장과 홍이 장군을 만나 마석역까지 30분 정도 걸린다는 광역버스 8002에 올랐건만···

9시 30분에 승차해 12시가 넘어서야 마석역에 도착했으니 서울을 출발해 대전에 도착한 피로(?)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챙겨주는 도시락으로 출출함을 달랜 후 출발···

 

아주 깔끔하고 아늑한 숙소, 맨 안 쪽 건물이 우리 하룻밤의 천국이 될 '참새'
먼저 도착해 있던 친구가 준비해 둔 김밥, 유부초밥 도시락으로 점심 해결
숙소 바로 옆의 계곡
과꽃 속의 등산로 안내판을 보면서 오늘 코스를 정한 다음 GO GO

옛날 옛적 이곳 계곡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이 바위에 있는 구멍을 통해 승천하였다고 하여 승천 바위라 불린단다.

 

이 바위의 이름은 한 개의 바위가 둘로 갈라져 있는 형태여서 이별이나 우정이 갈라진 것으로 보이나,

그간 사이가 안 좋았던 분들이 이 바위 앞에서 기도하면 부부간에는 금실이 좋아지고, 연인 간에는 사랑이 깊어지고,

친구 간에는 우정이 돈독해진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축령산 자연휴양림에서 화합 바위로 작명한 이름이란다.

 

이석도, 김귀동, 이동우, 계종걸, 이홍희, 신종진, 이풍규

'돌멩이 반, 꿀밤 반'이라 해도 될 만큼 도토리가 지천에 깔려있었다.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수락산 같은 서울 인근에 있는 산에 오르다 보면

"제발! 도토리 주워가지 마세요. 다람쥐 등 야생동물들의 겨울 양식입니다."라 적힌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 있더구먼, 축령산엔 이런 현수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데다

도토리만 온 산에 나뒹굴 뿐 다람쥐 만나기는커녕 산새 소리 한번 못 들었으니···

축령산의 다람쥐는 다들 어디로 갔을까?

도토리보다 더 맛난 것 먹고 싶어 잣나무 많은 옆 동네 가평으로 갔을까?

시골 생활 싫어 도시로 모이는 사람들처럼 시골 떠나 서울 인근 산으로 이사했을까?

이마저 아니면 주워 가는 사람 없다고 양식 저축할 생각 않는 게으름뱅이일까? 

 

 

정상을 밟은 후 하산하던 중 미끄러지는 바람에

발목을 살짝 접질린 귀동 친구가 많이 불편해하면서도 곧잘 오른다.

 

남이 바위

바위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선 시대 명장 남이 장군은 한성의 동북 요충지인 축령산에 올라 지형지물을 익혔다. 장군은 산에 오르면 이 바위에서

무예를 닦고 심신을 수련하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이 바위에 깊게 파인 자국은 그때남이 장군이 앉아 있던 자리라고 한다.' 

남이 장군께서 앉으셨던 자리에 오늘은 우리 홍이 장군이 앉았으니 이것도 큰 인연이 아니겠나 싶었다

그런데 지난 5월 중순엔 이 남이바위 인근에서 50대의 한 등산객이 추락해 사망하는

큰 사고가 있었다길래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정말 아찔했다.

남이 바위에서 촬영한 파노라마
홍구세굴

이 굴은 조선시대 홍씨 성을 가진 판서가 늦도록 후사를 입지 못해 전국의 명산대천을 찾아

치성을 다하여 기도를 올렸으나, 대를 잇지 못하다가 이 산에 왔을 때 어느 숯 가마꾼이 이 굴을 알려줘서

굴 안에 제단을 쌓고 지성으로 발원기도를 한 결과 후세를 잇고 자손 대대로 가문이 번창하였다고 하여

그로부터 '홍구세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혹 이 숯가마터가 홍수세굴을 알려준 숯가마꾼이 숯을 굽던 곳은 아닐까?

 

하산해 돌아왔을 땐  이처럼 숙소엔 전깃불이

7.57km, 4시간 26분

항상 오전 9시, 늦어야 10시에 오르는 리듬 탓일까?

점심으로 김밥 몇 조각, 유부초밥 몇 점에 막걸리 한 잔 마셨을 뿐인데 몸이 찌뿌둥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맑은 공기와 가을 내음을 들이켜면서 세상사와 일상사를 나누자 쳐졌던 컨디션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산행의 행복과 즐거움은 점점 우리 모두의 몸을 젊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즐겁기만 하던  우리의 산행을 누가 시기했던 걸까?

정상에서 하산하던 중 기동 대장이 미끄러지면서 발목을 살짝 접질렸다.

큰 부상이 아니라 불행 중 다행이다만 걸음이 꽤 불편해 보였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축령산은 생각보다 험한 산이었다.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계곡의 하산길은 더했다.

하얀 로프만 없다면 이곳이 계곡인지 길인지···

 

30분이 2시간 되고

7km가 20km쯤으로 느껴진 날이지만

조금 아래 숙소 건물들이 보이자 돌부리를 두어 번 찬 맨발의 내 발바닥도

절뚝거리는 귀동 친구만큼이나 안도의 숨을 내쉬는 듯했다.

 

포항에서 공수한 덕에 살아있는 전복 1kg 중 절반은 밤에 회로 냠냠 쩝쩝하자

동우 세프가 나머지 절반으로는 내일 아침 식사로 전복죽을 쑤겠단다. 

 

방에 들어와서도 늦도록 한잔하는 친구들
우리 숙소에도 아침은 밝아오고

둘째 날인 10월 2일

아침부터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져 둘레길 완주는 포기하고

1km쯤 되는 잣나무 숲길의 '제1코스만 걷기로···

 

잣나무 숲을 걷는 둘레길 1코스를 걸으며 들국화 구절초를 자주 보던 중

갑자기 詩想 하나를 건져 엮었으니 이 詩는 틀림없이 축령산 신령님의 선물이겠다.

 

구절초

 

              돌담/이석도

 

삼고초려 세 번에

아홉 번 절하며 뵙길 청해도

얼굴 한 번 내밀지 않고

 

편지마다 구구절절

사랑을 고백했는데도

답장 한 통 없더니

 

내 피는 식어가고

어머니 사랑의 그리움이

짙어지는 계절 이제야

모습 드러냈구나.

 

얄밉도록

사랑스러운

가을 여인아!

 

(2022. 10. 2.)

 

☞ 구절초의 꽃말: 순수, 어머니의 사랑, 가을 여인

 

꽃이 된 할배들

홍이 장군과 둘이서 마석역에서 1.5km쯤을 걸어 야트막한 산에 위치한

흥선 대원군의 묘를 찾아가 참배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도와주십사 빌었다.  

짬뽕으로 유명(?)한 남양주의 맛집에서 맛난 짬뽕으로

점심 요기 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마석역에서 열차를 탔으니

이번 축령산 1박 2일 여행은 별이 다섯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