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준의 5학년 준비
2021. 2. 28. 일요일
낼모레, 3월 2일은 서울 시내 대부분 초등학교의 개학일이란다.
초등 4학년이었던 우리 원준이가 5학년이 되어 첫 등교일인 셈이다.
지난 2020년도엔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등교 수업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밖에 이루어지지 않고 나머지는 비대면 수업이었을 뿐 아니라 그 등교 수업마저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릴 때마다 전면 중단된 바람에 작년의 총등교일 수는 두 달도 채 되지 않을 듯했지만 2021년 신학기가 되면 정상 등교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하고 기대했었는데 아직은 아니란다.
2학년이 되는 은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등교하는데 반해 원준이의 등교 수업일은 월요일과 화요일 이렇게 주 이틀이고 나머지는 또 비대면 수업이란다. 작년에 비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얼마나 다행일까.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공부하는 게 더 효율이 높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놀며 부대끼면서 배우는 것도 적지 않은데···. 여전히 일주일 중 이틀을 제외하곤 집콕하면서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단다.
개학 준비는 별달리 할 게 없는 모양이다.
등교 수업이 주 2일밖에 되지 않는다니 내가 원준이 공부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대면 수업이 아무리 잘 진행된다한들 등교 수업보다는 못 할 테니 지난해처럼 그 갭(gap)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내가 노력하리라 마음먹었다. 다행히 우리 원준이가 나랑 함께 공부하는 걸 아주아주 좋아하고 있으니 천생연분이다 싶다.
며칠 전의 약속대로 원준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원준이는 5학년이 되는 올 2021년에도 외할아버지인 나랑 공부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지금까지 그러하듯이 오후 2시를 전후해 우리 집으로 올라와서는 매일 두세 시간 정도 함께 공부하면서 수학은 매일 학습지 4페이지를 풀고, 그리고 국어, 과학, 사회는 번갈아 가면서 매일 학습지 4페이지와 곱셈, 글씨 연습 등을 나와 함께하기로 굳게 약속하곤 오늘, 일요일에 학습지들을 구입하러 교보문고에 가기로 했던 것이다.
어제 친구들과 근 20km의 서울 둘레길을 걸었던 덕분(?)인지 다리가 뻑적지근했다.
불과 3년 전에 걸었던 동해안 해파랑길 도보여행에선 매일 40km씩 연달아 보름 동안 걸을 때도 밤에 푹 자고 나면 말짱했었는데 어제는 5시간 동안 20km도 채 걷지 않았는데도 오늘 아침까지 다리가 뻐근하다니···, 이게 바로 늙어가는 징조구나 싶었다.
'지하철을 타 버릴까···', '버스를 타 버릴까···'
걷기 싫은 마음과 편하고 싶은 욕심이 내 걸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지만 길마중 길로 걸음을 옮겼다.
사랑하는 외손자 정원준의 손을 꼭 잡은 채.
서초 IC와 반포 IC 사이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조성된
아름다운 산책길, 서초구 길마중 길 초입에서의 정원준
길마중 길 포토존에서 찰깍!
외손자 손을 꼭 잡고 걷기에 딱 좋은 길마중 길
한참 잘 걷던 원준이가 목이 마르다고 했다.
비틀거리는 흉내를 내며 배가 너무 고파 쓰러지기 직전이란다.
초콜릿 등 주전부리 몇 가지와 생수를 챙겨 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긴 했지만
메타세쿼이아, 소나무, 잣나무 등 키다리 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는 데다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어 많은 서초구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길마중 길
훌쩍 자란 외손자의 손을 꼭 잡은 채 오손도손
역사 이야기, 원준이의 친구 이야기 그리고 나의 어릴 적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와 사랑을 나누며 걸었던 길마중 길은 아침까지 느껴지던
다리의 뻐근함을 싹 사라지게 하는 색다른 행복이었다.
외손자 손을 꼭 잡고 1시간 20여분을 걸었다.
삼일절을 하루 앞둔 날이라 가로등마다 2개씩 꽂혀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누나, 만세운동 이야기를 주고받고, 만세운동은 8.15 광복으로 이어지고,
광복은 미국과 러시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 역사 이야기로 이어지는 바람에
원준이가 벌써 이렇게 컸나 싶은 흐뭇함이 더 크긴 했지만 끝없는 원준이의 질문 덕분(?)에
내 국사 지식이 외손자 보기 부끄러울 수준임을 깨닫곤 역사 공부에 게을렀던
지난날들이 후회되면서 지금이라도 우리나라 역사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욕심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으니
무척 뜻깊고 해피한 시간이었다.
5km를 걸어 도착한 강남 교보문고
학습지를 고르고 있는 정원준
이종사촌 동생 은규가 좋아하는 '용 선생 한국사 만화책'도 찾았으니
다음은 여동생 세은이에게 줄 몰랑이 피규어를 고르고···
짜장면, 갈비탕, 곰탕 등을 좋아하는 원준이가 웬일인지
오늘은 면 종류도 싫고 국물 있는 탕류도 싫다 해서 찾아간 돈까스 식당에서
주문한 모차렐라 치즈돈까스와 겨울바다 해산물 돈까스
원준이가 얼마나 맛나게 잘 먹던지···
보기만 해도 내 배가 다 불렀다.
강남 교보문고에서 오늘 구입한 원준이 학습서 4권
은규가 읽을 역사 만화책 1권 그리고 세은이의 장난감 몰랑이 피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