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 길. 2020. 12. 27. 19:03

2020. 12. 26. 토요일

어젯밤 늦은 시간의 일이다.

보던 책을 다 읽은 후 잠자리에 들면서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읽지 않은 카톡이 하나 있었다.

이 한밤중에 무슨 카톡인가 싶어 열었더니 원준 어미가 가족방에 사진 2개를 올려놓았었는데 사진 속에는 분홍 잠옷을 입은 여자아이 둘이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웃고 있었다. 한 명은 내 외손녀 세은이지만 나머지 한 명은 세은이의 친구인 태리인 듯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사진 속 방은 바로 우리 집 아래인 세은이네의 방이 아니었다.

원준이네, 은규네 다 우리 집에 모여 저녁을 먹었는데···

저녁 식사 후 작은 방에 들어와 인터넷 서핑을 하다 9시쯤 거실로 나갔더니 원준이와 은규는 TV에 나오는 BTS의 '다이너마이터'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느라 시끌벅적했지만 세은이는 보이지 않길래 단순히 아빠따라 먼저 내려갔나 보다 했더니 집에 들러 잠옷 등 잠잘 준비까지 해서 친구 집으로 갔었던 모양이었다.

 

세은이와 태리의 우정(?)은 각별한 것 같다.

같은 또래로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인데 주말이면 가끔 이렇게 함께 지내곤 한다.

벌써 몇 번째인가? 번갈아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자는 등 진종일 함께 있는 횟수는 내가 알기로도 네댓 번은 되는 것 같은데···. 참 희한한 아이들이다 싶다. 나랑 같이 자는 건 싫다더니··· 어쩜 친구가 이렇게 좋을까?

수시로 우리 집에서 모여 노는 원준, 은규, 세은이를 생각하면 더욱 신기하다 싶어진다. 다섯 살 많은 원준 오빠, 두 살 많은 은규 오빠와 어울려 놀 땐 조금은 거칠다 싶을 정도로 씩씩하지만 가끔 큰소리를 낼 뿐 아니라 한 번씩 잘 토라지곤 하던데 친구와 놀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한 달 전쯤 어느 주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 아래층 원준이네로 갔더니 세은이 방에 세은이와 한 친구가 놀고 있었다.

그런데 둘이서 다정하면서도 여자아이답게 얼마나 조용하게 인형놀이를 하고 있던지 놀라워 세은이에게 친구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집에서 제일 친한 친구인 '태리'라면서 "오늘 우리 집에서 같이 잘 거예요." 라고 했다.

여섯 살 아이들의 우정.

"톡!" 건드리면 "쨍" 하고 깨질 것처럼 티 없이 맑은 겨울 하늘만큼 파란 이들의 동심이 부럽다.

24시간 동안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잤어도 더 같이 있고 싶은 이들의 우정이 부럽다.

내게도 이런 친구 한 명쯤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둘러보고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아서일까?

우리 세은이가 이 외할아버지보다 훨씬 낫구나 싶다.

 

정세은의 친구, 태리의 방

서로의 잠옷을 바꿔 입었단다.

뭐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아야 할 만큼 재미나고 우스울까?

 

정세은 외할아버지의 소망 - 이처럼 맑고 파란 우정이 오래오래 수십 년 지속하길···

 

아주 잘 잤나 보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레고놀이 중

 

12월 25일 오후 8시에 만난 요놈들의 헤어진 시간은 12월 26일 오후 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