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이제야 다 읽었다. 언제부턴가 생겨버린 습관- 활자체라면 신문조차 보기싫어지는-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억지 독서였다. 조금씩 재미를 부쳐가던 중 빌린 책을 반납하기 위해 원준이를 데리고 찾아간 주민센타 책 사랑방의 신간도서 안내판에『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란 책이 새로 들어왔단다. 서가에 찾아보니 7권까지 시리즈가 꽂혀있어 제1권을 빌렸는데 1판 발행일이 약20년전인 1993년에 되어있다. 저자는 '유홍준'이다. 유홍준이라면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재청장을 지냈다는 것 말고는 모르는 분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영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별로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지은 책이지만 기왕 빌려 온 책이라 서문부터 읽어 보니 저자 유홍준은 서울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영남대 교수로 있으면서 수시로 학생들 또는 답사회를 이끌고 전국 방방곳곳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문화재에 관한한 안목과 열정이 대단한 분 같다. 문화유산 답사기를 중앙일보에 연재했다가 이를 보완해 1993년에 답사기 1권을 시작해 2012년에 제주도 답사기인 마지막 7권을 완성했단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중앙일보에 연재된 답사기를 몇차례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제1권은 副題를 "남도답사 일번지"로하여 전남 강진과 해남의 사찰등 유적지와 월출산의 아름다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를 돌아보며 답사이야기를 시작했다. 답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일번지라면 응당 도시전체가 문화재인 천년도시 경주이든가 적어도 백제의 도읍지였던 부여 또는 조선 도읍지 서울이라야 제격이라 생각하기에 저자의 南道 선택을 납득키 어려웠으나, 1권을 다 읽고서야 은둔자의 낙향지, 유배객의 귀향지에 살다 간 사람들의 아픔과 아픔속에서 키워낸 진주같은 무형 문화유산을 간직한 역사의 체취와 향토의 흙내음을 맡고자 첫 답사지를 南道로 삼은 이유를 다소 이해할 수 있었다. 해남 윤씨의 부유한 삶과 간간히 先人들의 詩까지 담은 남도 답사이야기 다음은 경주 감은사탑에서 새로 발굴된 사리장엄구에 관한 설명, 그리고 에밀레종에 바친 열정어린 예찬, 문경 봉암사, 담양의 정자와 원림, 2005년 큰화재로 불사를 진행한 양양 낙산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2권은 부제를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인데 함양, 산청등 지리산 동남쪽문화재는 물론 옛길과 옛마을 이야기까지 들려주며 영주 부석사와 강원도 평창, 정선지역 답사에 이어 경주 석불사(석굴암) 답사가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에 日人 요네다가 석굴암을 과학적으로 측량한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신라인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탄복과 함께 영광과 오욕을 들려준다. 다음은 내 고향 청도 운문사를 이야기한다. 이백오십여명의 學人女僧들이 참여하는 새벽예불의 장엄함에 운문사에 반해버린 이야기와 학인스님들이 단골로 찾는 음식점의 고기를 넣지 않은 스님용 짜장면 맛을 소개하면서 재미있게 엮었다. 부안, 변산등 서해안의 이야기와 과 철원 민통선 부근 한탄강의 비가(悲歌)를 들려준다.
제3권의 부제를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라 붙이고 충남 서산에 있는 마애불의 잔잔한 미소를 보는 듯 느끼게 하고, 안동권의 무수한 문화재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이지방 사람들이 쓰는 '∼했니껴'와 남부경북의 '∼했능교?'의 어미의 차이를 탑의 모형 등 문화적 특성의 차이로 해석해 비교설명하기도 한다. 현존하는 살림집중 가장큰규모의 안동 법흥동에 있는 임청각-固城李氏 宗宅으로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었던 石洲 李相龍선생의 生家며,거주했던- 설명을 볼때는 종친의 일원으로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익산 미륵사지답사 다음에는 내 신혼여행지 였던 경주가 다시 나온다. 천년의 도읍지로 국내 최고의 수학여행지 경주... 불국사라면 석가탑, 다보탑, 백운교, 청운교 등등 국보 및 보물들이 수없이 많다. 여러번 다녀 온 불국사지만 안마당에는 꽃밭이 없다는 걸 이책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원... 불국사 다음에는 많지않은 백제의 유적을 찾아 공주와 부여 그리고 서을 강동쪽을 답사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1998년에 발행한 제4권은 북한 답사기로 副題는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이다. 1997년 북한문화유산 방북조사단의 일원이 되어 남한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답사가는 과정과 느낌을 가감없이 이야기 하면서 대동문과 부벽루, 을밀대등 평양부근 대부분의 유적지를 답사한 내용과 단군릉을 비롯한 고고학적 가치가 대단한 고인돌 설명이 있다. 1966년 도로공사중 우연히 발견됐다는 前期 구석기시대, 약50만년전 인류인 호모에렉투스의 살림터 상원 검은 모루동굴을 설명하면서 반만년이라 여겼던 우리의역사를 50만년 전으로 끌어올렸다며 기뻐한다. 동행한 북한 조사단원과 남,여 종사자들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에서 따뜻한 동족애를 보는 것 같아 좋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공부한 고분벽화 이야기도 있다. 서산대사의 금강굴이 있는 묘향산을 이야기 할 때는 서산대사의 절구 한 수를 소개하는데, 그 내용에 큰 교훈을 담고 있다..
-서산대사의 절구-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내리는 들판 길을 갈 때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모름지기 어지럽게 가지 말 일이다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간 발자국이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뒷 사람들에 이정표가 되리니...
제5권을 2001년에 발행했는데 역시 북한 답사기지만 부제는 "다시 금강산을 예찬하다.'로 마침내 남한에 개방된 금강산을 배편으로 떠난 금강산 관광이야기가 같이 있다.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 장전항에 도착해 온정리를 거쳐 금강산에 도착. 외금강과 내금강을 다니며 수많은 폭포 그리고 만물상등 기암괴석에 대한 전설과 이야기가 많고, 先人들이 남긴 금강산의 예찬들을 소개 하기도 한다.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에는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에 못지않게 북한의 문화재 전문가와 안내인은 물론 초대소(호텔) 종업원등 북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쓸 수가 없다.
저자는 10년만인 2011년에 "人生到處有上手"를 副題로 제6권을 발행했는데 경복궁 구석 구석을 소개하고 건축물 하나 하나의 아름다움과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근정전을 설명할 때는 근정전이라 이름지은 정도전이 태조에게 고한 내용이 "천하의 일이 부지런히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廢)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임금으로서 오직 부지런해야 하는 바를 모르면 그 부지런하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까딸스러움에 흘러 보잘것 없는 것이 됩니다. 아침에 정무를 보고(聽政),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訪問),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修令),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安身)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 부디 어진 이를 찾는데 부지런하시고, 어진 이를 쓰는 것은 빨리 하십시오."라는 요즘에도 하기 쉽지않은 直言이었다니 언제가 민주시대이고, 어느때가 절대 왕정시대인지 헷갈린다. 그리고는 경남 거창 합천에서 아름다운 정자와 고택종가의 자랑과 맏며느리의 숙명을 겪은듯 이야기하고, 또 6.25사변을 전후해 발생한 거창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저자는 백제의 흔적과 여운을 느끼기 위해 부여와 논산을 찾아간다.
우리 책사랑방의 신간 안내에 소개된 신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는 2012년 9월에 발행된 제7권이었는데 부제가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 듯이 제주도답사 전용이다. 저자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제주도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혀 재미를 더 한다. 또 제주에 얼마나 많은 오름과 용암동굴이 어떻게 형성되고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과학적인 설명을 곁들여 이해를 돋군다. 정말 한뼘의 땅이라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제주도의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역사와 풍습과 인물들에 대해 빠짐없이 이야기하고, 가슴 아픈 제주 4.3사건의 始末과 상처를 설명한다. 또 가는 곳마다의 재미난 전설도 들려 주는데 명승 제77호인 산방산의 전설을 이렇게 적었다. "옛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을 잡으러 가서 쏜 화살이 빗나가 옥황상제의 엉덩이에 꽂히자 화가 난 옥황상제가 홧김에 한라산 정상 봉우리를 집어 던졌는데 그 바람에 한라산 정상에 백록담이라는 우묵한 구멍이 생기고 그것이 튕겨서 떨어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는...
일곱권의 답사기를 다 읽는데 두달이 훨씬 넘게 걸렸다. 출퇴근과 운동시간에만 읽으면서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대여된 책이 반납되길 기다리기도 했는데. 이럴 때는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만큼 기다려지는 책이었다. 이 답사기를 통해 저자를 다시보게 되었다. 미술평론가이지만 문화재에 대한 이처럼 깊은 안목을 어떻게 갖추었을까 궁금하다. 문화재뿐 아니라 건축물에 관한 지식, 나무, 들풀등 식물에 대한 지식은 물론 역사와 선인들의 발자취까지 모르는게 없는 만물박사다. 또한 찾아가는 곳곳의 역사와 지리, 인물 및 생활의 특성과 전설까지 일일이 소개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저런 지식을 갖출수 있을까 부럽기만 하고 모든 분야에서 도움 되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저자의 광폭 인맥이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만물박사의 지식과 수많은 인맥에,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열정이 더해졌으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란 명작이 탄생한건 당연한 것 같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나도 어려서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에서, 성인된 후에는 산행을 하면서 적지않은 사찰에서 석탑과 불상을 보았다. 특히 우리은행 울산지점장으로 재직하던 때는 불교신자인 집사람이 가끔 내려오면 함께 사찰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에 빠졌었는데... 이때 찾아다녔던 절만해도 통도사,해인사,불국사,오어사, 기림사,골국사,칠보사,불영사,문수사,운문사.대국사,청량사,낙산사,송광사,은혜사,갓바위등 꽤 많다. 오래된 절을 다닐 때 적지않은 곳에서 국보 몇호 또는 보물 몇호라는 안내판이 보이면 "엄청 오래 됐구나" "굉장히 귀한 것이구나."는 생각만 했었다. 산중의 큰 절에는 일주문을 거쳐 부도탑을 지나면 사천왕이 있고 마당에는 석탑, 대웅전에는 불상이 있는게 당연하게만 여겨졌을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이번에 이 답사기를 읽고서야 답을 찾았다. 저자가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뿐이며, 느낌만큼 보인다." 그리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말한 것처럼 내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느낌없이 보았으니 내가 본 것은 아니 본것과 다를 바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좀 달라져야 겠다.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문화재에 대한 지식을 쌓으며 안목을 높히고 싶은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잘 모르겠기에 우선 역사공부를 좀 하면서 사찰이나 고궁에 갈때는 꼭 이 답사기를 지참해 유사한 문화재와 비교하는 버릇부터 길러야 겠다. 문화재를 제대로 알고 느끼고 싶다. 고향가는 길에는 저자가 소개한 스님용 짜장면도 먹어보고 싶고 학인스님의 합창같다는 운문사의 새벽예불을 보고싶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이 답사기의 행로를 하나라도 흉내 내고 싶다. 이답사기를 들고서...
다 읽고난 지금 전 국토가 문화재인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이 솟구치지만 작은 아쉬움도 남는다. 먼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찰은 양산에 있는 통도사인데, 그리고 우리나라 3대사찰로 국보290호인 대웅전과 금강계단 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데도 답사기에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3보사찰(해인사, 송광사) 모두가 답사기에서 빠졌다. 이들은 너무 유명한 사찰이라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국민모두가 잘 알고 있을거라는 판단에서 제외했나보다 생각했는데, 삼보사찰에 조금도 못지않은 불국사의 답사기는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통도사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데... 또 다른 아쉬움은 답사기를 읽다보면 간간이 보이는 우리가 무척 어려웠던 때의 문화재 관리에 대한 비난이다. 제3공화국까지는 일제 강점기에 갓 벗어난 터에 전쟁까지 겹쳐 전국토가 폐허가 되어 먹고 살기조차 힘든 시기라 문화재 관리는 엄두도 못 냈을 이 시절의 문화재 보존책 대부분을 독재군사문화의 잔재라니 또는 유신의 유산이라며 폄하하는 부분이 지나쳐 보이고, 자신이 공직에 있으면서 모셨던 노무현대통령은 대통령이란 호칭을 아낌없이 쓰면서 이승만, 박정희 등 다른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이란 호칭은 고사하고 ○○○정권이라 호칭하거나 심지어 이름만 적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문화재청장은 참 제대로 앉혔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고....
방송인 김제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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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열고 나가 역사에 참여해보고 싶은 욕구와 기쁨
그래서 전 이 책이 좋아요.
(안동 임청각)
(임청각내 군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