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은이의 웃음
까르르까르르
여섯 살배기 우리 정세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은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의 숙제로 급하게 만드라 내용이 빈약하고 완성도도 좀 떨어지는 동영상이지만 외손녀의 잘 크는 모습을 보라며 원준 어미가 가족 카톡방에 올렸길래 틀었더니 아빠랑 노는 세은이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우리 집에서 세은이가 다섯 살 많은 친오빠 원준이와 두 살 많은 이종사촌오빠 은규랑 놀 때마다 듣는 웃음소리인데도 영상으로 들으니 더 사랑스러웠다. 집에선 늘 두 오빠들과만 어울리기에 한때는 여자아이가 너무 와일드해지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이것은 기우였다. 세은이가 어린이집 친구들이랑 서로의 집을 오가며 소꿉놀이하는 모습을 보면 여자 아이답게 얼마나 아기자기하게 노는지 놀랄 지경이다. 그리고 주말 아침이면 가끔씩 세은이는 쪼르르 우리 집으로 올라와서는 내 무릎 위에 앉아 갖은 예쁜 짓과 해맑은 모습으로 우리 부부에게 아침부터 활력을 선물하곤 한다.
세 놈들이 놀거나 TV를 볼 때면 큰소리로 깔깔거리는 원준이의 웃음소리도 자주 들리고, 숨이 넘어갈 듯 까르르 웃고 있는 은규의 모습도 보이지만, 우스워 어쩔 줄 몰라하는 몸짓으로 까르르 거리는 세은이 웃음은 육백만 불 짜리다 싶다.
세은이의 웃음소리는 완전 청량제다.
그리고 조그만 재미에도 까르르, 내가 볼 땐 전혀 우습지 않은 장면에도 연신 까르르 거리는 세은이와 은규, 원준이.
만화영화를 보면서 깔깔거리는 이 세 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재미있으면 저런 웃음이 나올까? 아니다. 영혼이 얼마나 맑으면, 얼마나 마음에 때가 묻지 않았으면 내가 볼 땐 전혀 우습지 않은 장면인데도 웃음이 끊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한 번씩 내가 아이들의 재미난 모습에 빙긋이 웃으면 "여보, 당신 웃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아요. 이젠 제발 많이 웃으면서 삽시다." 하는 집사람, 평소에도 많이 웃기를 바라는 집사람이 떠올라 요놈들이 더 부러워진다.
내 웃음소리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60년도 훌쩍 넘는 세월의 파도에 내 영혼이 닳고 더럽혀져서일까?
은행 근무 시절, 근 30년 동안 일주일에 몇 번씩은 했었던 보다 친절한 고객응대를 위해 훈련하는 '롤플레잉(Role-Playing)'에서 직원과 마주 보면서 하거나, 또는 거울 앞에서 미소 짓는 연습만 많이 해서일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을 뿐, 소리 내어 웃었던 기억은 통 없다.
아니다. 웃음 자체를 많이 잃은 것 같다.
막내 고모께서 生前에 자주 들려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生年이 나보다 딱 12년 빨라 띠동갑이기도 한 막내 고모는 아기 시절의 나를 많이 업고 다녔단다.
그 시절 나를 업고 나가 마을 친구들을 만나 놀곤 했었는데 고모의 친구들이 아기인 나를 빤히 보면서 "웃는다. 웃는다." 몇 번하면 내가 빙그레 잘 웃었단다. 그래서 고모의 친구들은 나만 보면 "웃는다. 웃는다." 했었단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30대였던 어느 해 여름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친정 다니러 온 고모의 친구이자, 집성촌인 내 고향의 집안 고모뻘 되시는 분을 만나 인사했더니 그분께서 막내 고모 이름을 대며 " 야야, 니가 ○○ 등에 업혀 컸던 석도네, 니 참 빙그레 잘 웃었는데, 요즘도 어릴 때처럼 잘 웃제?" 하셨으니 어릴 땐 정말 내가 잘 웃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웃음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내 외손주들처럼 조그만 즐거움에도 활짝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은 언짢은 일조차 웃어넘기는 마음 편한 사람이 되어 소소한 일상에서 늘 싱글벙글 웃는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다.
내일부터는 외손녀 세은이로부터 배워야겠다.
까르르까르르 활짝 잘 웃는 요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