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세째 고모 결혼 사진인 듯...나를 안고 계신 할머니)
최근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 일으킨다. 댓글에서 기억하는 그의 외할머니는 바로 나의 할머니기 때문인가 보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불과 두달전에 돌아 가셔서 뵙지 못했지만, 할머니 사랑은 늘 듬뿍 받고 자랐는데...할머니는 내가 결혼 한 다음해 보라와 세라가 태어난지 두달 좀 지난 1980년10월에 돌아가셨으니 그때 연세가 79세였다. 지금 계신다면 112세가 되지만...
내가 고향에 가거나 他地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남산댁 둘째 아들로 통하지만, 때로는 금천댁 둘째 손자라고 해야 더 잘 통할 만큼 우리 고향에서는 유명했던 우리 할머니다. 시골치고는 상당히 큰 동네였던 그 시절의 우리 마을에 결혼이나 화갑연 잔치날이 예정된 집은 반드시 할머니를 모셔가 음식을 만들고 준비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할머니가 아니면 잔치상을 못 차릴만큼 음식 솜씨가 뛰어 났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딸들이자 나의 고모들이 여러해전 TV의 어떤 프로를 보면서 "엄마 음식 솜씨가 하선정 요리학원으로 유명한 하선정원장 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며 이야기 하는 걸 들은 적이 있고, 할머니의 손맛을 물려 받은 고모들의 음식 솜씨 또한 완전 프로 수준이 넘는 걸 보면 할머니의 요리솜씨를 충분히 짐작할만 하다. 그래서 인지 나는 어느 고모집에서 밥을 먹든지,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게 된다.
할머니가 가신지 삼십 수년이 되었지만, 우리 할머니는 2남 4녀 6남매를 두셨는데...그중 장녀와 장남, 막내딸이 엄마곁에 가시고 이제 작은 아버지와 두 고모만 남았지만 모두 24명이나 되는 親孫, 外孫들은 훌륭하게 장성해 국내외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이 親.外孫들의 자식인 할머니의 증손(曾孫)은 무려 41명이나 되는데 또한 이들 모두가 할머니의 명석한 DNA를 물려받고 학교교육뿐 아니라 가정교육까지 올바르게 받아 각 분야에서 제몫을 잘하고 있으니 꼭 필요한 인물이 되리라 믿는다. 또 몇몇 曾孫들이 결혼해 태어난 고손(高孫)은 벌써 12명이 넘으니 우리 할머니의 그늘이 엄청 넓어졌다.
우리 할머니는 매우 인자하셨다. 그리고 긴 담뱃대에 담배를 눌러 담고 피우는 모습이 참 여유롭게 보였다. 밥보다 막걸리를 더 좋아하셨던 할머니, 동네 마실가셔서 한잔 하시고는 기분 좋은 모습으로 돌아 오시곤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머니는 손자와 외손자보다 손녀.외손녀에게는 무척 엄하셨던 모양이다. 특히 外孫女들이 우리 성씨(姓氏) 집성촌인 외갓집에 온김에 친손녀들과 같이 마실나가서 친척들과 어울려 놀다 밤늦게 돌아오다 외할머니한테 들켜 혼난게 한두번이 아니란다. 그렇지만 손자들에게는 많은 사랑만 주셨다. 나는 단 한번도 할머니로부터 혼나거나 야단 맞은 기억이 없다. 모두가 곤궁했던 시절, 보릿고개가 있고, 밥 동냥 다니는 거지들이 많았던 그 때의 엄마와 할머니의 자식. 손자사랑은 굶기지 않는게 最善이었을 것이다. 당신들은 물로 배를 채우고도 배 부른체하면서 하고많은 자식.손자들 입에 한 숟갈이라도 더 떠먹이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것 같다. 요즘이야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외할머니,외할아버지라는 6개 지갑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우스갯말이 있을만큼 귀하게 태어나는 한둘만의 손자들이 너무 많이 먹어 비만이 될까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손자를 사랑하는 방법,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싶다. 잔치집을 다녀 오시는 날이면 늘 맛있는 음식을 잔뜩 싸와서 손자들에게 먹였던 우리 할머니. 거나하게 취하신 할머니가 내볼에 당신볼을 부빌때 술냄새 난다며 싫어했던 기억이 있지만... 내가 할머니 사랑을 제일 많이 받고 있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외 특별한 추억이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 親.外孫 24명 모두를 사랑한 할머니의 마음은 내가 원준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할매∼"부르며 달려드는 손자를 두 팔 크게 벌려 맞으시며 보여주시던 할머니의 인자하고 따뜻한 웃음이 몹시 보고 싶어, 天上에 계신 할머니께 편지를 써 본다.
할머니 전상서
할머니! 삼십삼년만에 불러보는 이름입니다.
막내고모, 큰고모에 이어 큰아들인 아버지까지 곁으로 가셨으니 외롭진 않으시죠? 할머니 조래골 첫 산소는 명당이 아닌데다, 뒤의 바윗돌과 할아버지 산소와 어긋난 쌍봉이여서 수 년전 아버지가 할머니의 친정조카 권유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 할아버지와 합장으로 모셨는데 괜찮으시죠? 아니 더 좋으시죠? 할머니가 우리곁에 계실때는 술이랑 담배를 참 많이 좋아하셨는데... 그래서 저는 산소에 갈 때마다 먼저 담배 한개피를 피워 놓은 다음, 술잔을 올리고 인사를 드리는데, 아직도 담배를 피우시나요? 담배가 엄청 해롭다는데... 담배때문에 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가셨는데... 아직 담배 안끊으셨으면 이제 끊으세요. 이제 담배는 그만 올릴래요. 이승에서는 금연이 유행이거든요. 그리고 할머니의 풍년초를 몰래 종이에 말아 피우다 담배를 배운 저도 지금은 담배를 끊고 안피우거든요.
할머니! 하늘나라에 계시니까 더 잘 아시겠지만 할머니의 후손들은 번성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저도 3년전에 할아버지가 되었구요. 2010년 1월에 제 딸 세라가 낳은 원준이란 놈이 있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매일 매일 원준이와 함께 지내는 몇시간이 제일 행복할 만큼요. 원준이를 사랑하면서 할머니의 사랑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됐던지 깨달았습니다. 원준이가 저에게 孫子이니까 할머니한테는 高孫子가 되네... 하긴 할머니의 高孫이 지금은 12명쯤 된답니다. 또 경사스럽게 금년중에 둘이 더 태어나니까, 원준이를 비롯해 앞으로 태어나는 高孫들까지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도록 지켜주세요, 할머니!
올해 새로 태어 날 할머니 高孫은 저의 딸 보라와 할머니가 많이 사랑하는 외숙이 누나의 아들인 창재의 宅이 금년 9월에 출산할 아기들입니다. 보라와 창재宅 모두가 건강하게, 건강한 아기를 순산(順産)할 수 있도록 많이 보살펴 주세요. 참 할머니! 제일 막내 손자인 작은집 호용(석윤)이 기억하세요? 아마 호용이는 할머니를 어렴풋이 정도밖에 기억을 못할 거예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초등학교는 입학했나 안했나 모를만큼 어렸으니까요. 그 막내 손자가 지난 12월 초에 아빠가 됐대요. 그놈은 요즘 한창 늘어나는 高孫들 속에 느지막히 태어난 曾孫입니다. 高孫들이랑 착각하시지 마세요,
할머니! 할머니의 아들딸중 절반을 곁에 두어 외롭지 않으실 거니까, 이제 여기 계시는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이랑 제 엄마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부르세요. 그리고 할머니 곁에 가는 날까지 건강을 잃지 않도록 보살펴 주세요. 저희 親孫 外孫 모두는 할머니의 願을 잊지 않고, 우애를 지키며, 화목한 가정을 이룰겁니다.
천상에서 사랑하는 후손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 지켜 보세요.
먼 훗날 저도 곁에 갈께...
사랑해요, 할머니!
2013년 1월 일
둘째孫子 올림
(할아버지. 할머니 합장 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