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6)
2020. 6. 6. 토요일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오늘은 서울둘레길을 여섯 번째 도전하는 날, 북한산 코스를 걸을 작정으로···.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의 인수봉과 남쪽 만경대의 3봉이 삼각형으로 놓여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불리는 북한산이라면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대한민국 오악(五嶽)에 포함되는 해발 837m의 명산으로 서울 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게다가 능선을 따라8km에 걸친 북한산성을 비롯해 대동문, 대남문, 대서문,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등 역사가 살아 숨쉬는 산의 기슭을 걷는 코스이기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신분당선과 3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어 구파발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둘레길 안내서에 실린 '북한산 코스'를 보면 난이도는 '中'이지만 거리는 34.5km, 소요 시간은 17시간.
이 정도의 거리와 소요 시간이라면 하루 만에 다 걸을 수는 없기에 두 번으로 나눠 걷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오늘은 어디까지 걸어야 될지 한창 계산하고 있는데, 지하철 안에선 구파발역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고교 친구들의 이륙산악회에서 일 년에 몇 차례씩은 북한산에 오르는 덕분에
그때마다 불광역 또는 구파발역이 집합장소가 되기에 제법 낯이 익은 구파발역 2번 출구.
오늘도 배낭을 멘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꽤 많았다.
구파발역 2번 출구로 나온 다음 곧장 분식집으로 가서는
김밥 한 줄을 산 다음 9시 10분쯤 들어선 진관내천
내 고향마을의 도랑을 닮은 듯한 실개천, 진관내천
환영 인파처럼 늘어선 노란 금계국이 아름다운 진관내천을 따라 걷다 보면
금계국의 꽃말, '상쾌한 기분'이 현실이 된 듯 저절로 기분은 더없이 상쾌해지고···
'청순한 마음' 꽃말이 잘 어울리는 꽃 수련꽃.
분홍 수련꽃이 아름다운 인공폭포 호수가 나타나고
이어 금방 선림사가 보였다.
구파발역에서 2km쯤 걸어서야 만난 첫 스탬프 부스에서 스탬프를 찍은 후 Go go∼
지난 둘레길에서 신발을 벗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흙길이 보이자마자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벗고 싶었다.
근데 맨발이 된 내 발을 보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발이,
비까번쩍한 구두랑 폭신폭신한 고급 운동화로 감싸주는 주인을 좋아할까?
아니면 허구헌날 건강하게 한다면서 신발이랑 양말을 벗어던지곤 흙길을
밟게 하느라 돌뿌리나 나무뿌리에 차이게 하는 주인을 좋아할까?
선림사를 지나 잠시 오르자 세 개의 비석이 눈길을 끌었다.
첫번째 비석에는, 天父로 爲誠하오니 萬物은 天地父母께서 爲周旋이 합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성심성의껏 다하면 만물은 전지 부모께서 일이 잘 되도록 해줍니다)
두번째 비석에는, 地母로 爲誠하오니 萬物草木은 天地母께서 爲蘇生이옵니다.
(땅을 어머니로 성의를 다하면 만물인 초목은 천지모께서 소생하게 해줍니다.)
세번째 비석에는 天地陰陽 金梅月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하늘과 땅 음양 김매월)
그다지 잘 쓴 필체는 아니지만 '아래 아' 자가 나오고
맞춤법이 지금과 다른 걸 보면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종교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
언제 세운 비석일까?
김매월은 누구일까?
'梅月'
꼭 기생의 이름 같은데···
북한산 한 계곡 주변에서 만난 뱀딸기.
나 어릴 적 논둑, 밭둑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뱀딸기
뱀이 좋아하는 딸기라 주변에 뱀이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줄 알고
혹시라도 뱀이 나올까 무서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따 먹었지만
어찌 그리 맛이 없던지···, 아무 맛대가리도 없었으니···
그런데 요 뱀딸기도 태초엔 아주 달콤하고 향기도 있었대요.
자만심에 빠져 자랑만 일삼다가 신의 노여움을 샀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달콤한 맛과 달콤한 향기, 모두 다 빼앗겼대요.
꽃과 줄기는 뱀처럼 땅을 기어다니게 되었구요.
예나 지금이나 자만과 허영은 큰 화를 불러 온답니다.
참, 뱀딸기의 꽃말이 '허영심'이래요.
전설이 제법 그럴 듯 하죠.
근데 뱀딸기의 추출물로 자궁암을 치료한다네요.
요 바위의 이름은 뭘까?
저 위에는 독바위가 계시는데···
독바위역으로 내려설 수 있는 갈림길이다.
독바위골이라는 이름은 1623년에 일어났던 인조반정 직전인 광해군때 한 청년이 독바위골 근처를 자주 배해하고 잇었는데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겨서 그 청년에 물어봤더니, 청년은 역병에 걸려서 공기 좋고 물맑은 곳을 찾고 있다고 대답했대요.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혹시라도 역병에 옮을까봐 근처에 가지 않았는데 그 청년은 인조반정을 모의했던 원두표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인조반정 성공 후 인조는 원두표 장군의 공로를 치하했는데 바로 이 마을을 덕이 있는
바위골이라고 해서 덕바위골이라고 불렀었는데 훗날 덕바위골이 독바위골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목 마를 때 씹으라며 집사람이 넣어준 생오이로 목을 축이면서 잠시···
옛성길 시작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두 번째 스탬프 부스
탕춘대성(蕩春臺城)은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창의문 서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을 향해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을 건너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이르는 길이 약 4㎞에 달하는 산성이다. 탕춘대성이라
부르는 까닭은 현재의 세검정 동쪽으로 100m쯤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탕춘대성을 지나고 이북5도청을 지나 들어선 평창동주택가
고급주택 전시장에 온 듯 궁궐처럼 멋진 대저택도 많고 고급 외제차도 많이 보였지만
여기서도 過猶不及일까?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라지 않던가···
잠시라면 모르겠지만
4km도 훨씬 넘을 듯한 주택가의 아스팔트길을 한 시간이 넘도록 오르락내리락 하려니
둘레길을 왜 이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도록 만들었을까?
부자동네 자랑 시키나 싶었다.
더구나 햇볕을 받아 따끈따끈해진 아스팔트를 맨발로 걸을 때는 발바닥에 티눈이 박힌 듯 했으니···
너무 재미 없는 길이었다. 서울둘레길 8개의 코스 중 여기처럼 지루한 코스는 없을 것 같았다.
마침내 만난 명상길 시작점의 스탬프 부스
스탬프 꽉!
오후 3시
이제야 점심시간이다.
구파발역에서 샀던 김밥이랑 집사람이 마련해 준 생오이···
그런데 오늘은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배낭에 넣어 간 4통의 생수 중 3통을 다 마셨고,
또 평창동에선 편의점에서 아이스 커피 1통을 마셨으니
완전 물로 채운 셈.
그렇지만
산에서의 점심은 언제나 꿀맛
무엇이든 꿀맛
기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오히려 지루하다 싶었던 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옷이 촉촉해지도록 땀을 흘리며 7시간여 동안 18km 대부분을 맨발로 걸은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오늘의 둘레길은 이쯤에서 마치기로 마음먹고는 정릉초등학교 부근에서 발을 닦은 후 양말을 신고 등산화를 신었다.
그러자 발바닥이 금방 후끈거리며 땀을 내쏟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을 때는 힘이 들었지만 흙 밟을 때의 행복이 훨씬 더 컸다는 듯 등산화 속에 편안히 있는 게, 꼭 반짝빤짝 빛나는 고급 구두나 푹신푹신한 고급 운동화 속에 갇혀 지내는 것 보다는 가끔 건강하게 흙과 돌을 밟고 바람을 즐기는 자유를 누리게끔 하는 내가 좋다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농사만 짓는 가난한 아버지가 미웠던 적이 있고, 험한 세상을 산다고 여겼던 젊은 날엔 친구들의 부모와는 달리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육십갑자를 훨씬 넘긴 지금에서야 아버지께서 물려 주신 유산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를 깨달은 나처럼.
돈이 모두라는 세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졌던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50대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사람, 휠체어에 의탁해 움직이는 젊은 재벌 회장,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갑부이면서도 근 십 년째 병상에 누운 채 가족조차 알아 보지 못하는 재벌 회장 등 많은 돈과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력은 가졌지만 건강을 잃은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이던가.
이들이 모든 재산과 명예를 바쳐서라도 갖고 싶어하는 것을 바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북한산 둘레길은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 오면서 군에 입대해 졸병생활을 하던 중에 고래(?)를 잡느라 하룻밤만 의무실 침대에서 보냈을 뿐 지금까지 단 하루도, 단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을 만큼 튼튼한 건강뿐만 아니라 요즘도 하루에 백 리 정도라면 열흘은 거뜬히 걸을 수 있는 좋은 체력을 물려주신 분이 바로 부모님임을 한번 더 깨달은 걸음, 가족사랑에 한 평생을 바치신 아버지처럼, 구순을 한두 해 앞둔 연세에도 손수 가을걷이까지 다 마치시곤 두어 달 병석에 누워 계시다 크리스마스날 정오쯤 더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눈감으신 아버지처럼 살다 가고픈 바람이 간절했던 걸음의 둘레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