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1973년의 추억

자갈 길. 2019. 12. 31. 23:06

2019. 12. 31.

己亥年 마지막 날

2020년 새해를 새로운 기분으로 맞이하고 싶어 책장(冊欌)을 정리하고 있었다.

최근에 읽었던 책들을  책장에 꽂으면서 이제는 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골라내던 중 겉모습이 엄청 오래된 듯한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얼룩덜룩 상한 표지는 말할 것도 없고 내용을 담은 종이조차 누렇게 변해 버렸으니 겉모습만 보자면 족히 수백 년은 되었을 듯한 古書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책의 표지에 인쇄된 글씨는 '九德 42' 

 

'九德(구덕) 42'

부산 서대신동의 九德山 아래 위치한 나의 모교,

경남상고(현 부경고교)가 山 이름을 제호로 발간한 校誌였다.

내가 졸업한 해인 1974년 3월 발간된 '구덕 42호'는 타임머신이 되어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갔다.

내가 1973년 10월에 치른 한일은행 입행시험에 합격을 하자 고향에 계신 내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시면서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시험에야 합격했지만 몇만 원 이상의 재산세를 내는 사람 2명을 인우보증인으로 세워야 했었으니…, 그런데 그 몇만 원이 당시 농촌에서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던 모양이다. 내 고향 아니 내 고향이 속한 面 안에는 그 정도의 재산세를 내는 사람이 몇 없었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외지로 나가 사시는 먼 친척들까지 찾아다니시면서 보증을 부탁해야 했단다. 지성이 하늘에 닿았을까? 다행히 먼 친척의 부산에 사는 사위 한 분과 대구에 살던 좀 먼 친척 한 분께서 기꺼이 보증인이 되어 주신 덕분에 나는 은행원이 될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들을 은행원으로 만들기 위해 멀리 친척들을 찾아다니면서 머리를 조아리신 아버지의 사랑과 이에 대한 죄스러움이 아직도 가슴에 사무친다. 그리고 1974년 초부터 두 달여간의 연수를 받은 후 근무지를 발령받을 때였다. 당시 한일은행에서는 연수가 끝나면 신입행원의 근무지를 입행시험 성적순으로 발령을 냈는데, 그 순서는 본점 영업부, 명동지점, 중부지점, 소공동지점 등등···· 연고지의 지방점포····· 차례였다. 그런데 두어 달간의 연수를 받은 후 1974년 2월 말 신입행원 70여 명이 사령장을 받던 날,  본점 영업부로 발령을 받고는 잘난 체하는 등 한동안 얼마나 시건방을 떨었던지…

지금 되돌아보면 우습고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소중한 추억들이다.  

이런 추억들은 어제 일처럼 또렷한데 이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었던 교지는 이제 命을 다한 듯 너덜너덜해졌으니…

하기야 그 때의 까까머리는 자라 자라 지금은 반백이 되다 못해 허허벌판이 되었으니 많은 세월이 흐르긴 흘렀다. 

 

 

만지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교지의 책장(冊張)을 조심조심 한 장씩 한 장씩 넘겼다.

교장선생님의 권두언에 이어 총 동창회장 등 여러 분들의 격려사와 스승님 말씀은 물론 詩, 隨筆 등 학생들이 발표한 문학작품들도 많고 아주 알차게 엮어진 교지였는데, 책의 목차 중에는 특별히 내 눈을 끈 「은행 합격자의 변」 코너가 있었다.

당시에는 은행 취업이 상업학교 학생들의 최선의 목표였다.

그래서 각 은행의 입행시험에 합격한 3학년생들이 은행 취업을 준비하는 2학년, 1학년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자신이 공부했던 방법과 경험 등 합격 성공담을 글로 들려주곤 했었는데, 1973년 한일은행의 신입행원 공개모집 시험에는 우리 학교에서는 나를 비롯해 졸업반 20명이 시험을 봤었지만 4명밖에 합격하지 못하는 바람에 합격자 4명 중 한 사람이었던 내가 교지 '九德'에 『필승의 집념』이란 제목으로 한일은행 합격자의 변을 썼으니…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좀 묘한 일이 있다.

그때 우리 경남상고에서는 20명의 한일은행 응시자 중 4명이 시험에 합격했었지만 합격한 동기생 4명 중, 한 명은 행원 시절에 증권회사로 이직하고, 또 한 명은 새로 생긴 신한은행으로 옮겨 승승장구하다 정년을 10여 년 앞두었을 무렵 좋지 않은 일로 조기퇴직을 하고, 나머지 한 명은 IMF 사태로 은행이 한창 어지럽던 시절 명예퇴직했다. 그 바람에 IMF 사태의 후유증으로 비록 한일은행이 상업은행과 합병해 우리은행으로 바뀌었지만, 한일은행에 입행했던 고교 동기생 4명 중 금융기관에서 정년을 맞은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었으니 어쩌면 이것은 교지 '九德'의 알지 못했던 영험 덕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난생처음으로 기고했던 글이 실린 이 교지, '九德 42'가 그다지 오래 남아있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쓴 합격자의 변 -'필승의 집념'- 만이라도 내 블로그에 옮겨놓아야겠다 싶었다.  

 

 

경남상고(현 부경고) 본관

1927년에 건립된 경남상고 본관은 대지 2만 5392㎡에 건축 면적 559.84㎡, 연면적 1,087.25㎡ 규모로,

중앙의 첨탑을 중심으로 대칭 배치된 2층의 조적조(組積造)[돌,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드는 건축 구조] 건물이다. 서양의 고전 건축을 재해석한 전형적인 관공서 건물로,

정면 입면이 좌우 대칭인 것이 특징이다. 외벽은 적벽돌과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벽면의 몰딩 처리와 수평적인 줄눈 및 벽면의 장식적 처리를 통하여 표면 장식

처리를 강조한 서양의 분리파[Secession] 운동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지붕은 경사 지붕으로 기둥의 일부를 내어서 수직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수직으로 길게 디자인된 창문은 규칙성을 갖고 반복되고 있으며,

2007. 7. 3. 등록문화재 제328호로 지정되었다.

 

 

경남상고의 校誌 -九德

경남상업고등학교(慶南商業高等學校)는 1906년(고종 43)에 부산 거류민단회가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설립한 부산상업학교를 전신으로 한다.

1953년 12월 18일 부산제일공립상업학교에서 경남상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2004년 3월 다시 인문계 고등학교인 부경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필승의 집념

                                                                                                     한일은행  이석도

 

   결전을 하루 앞둔 10월 6일 밤. 선생님의 “취침” 소리에 맞추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모두들은 잠을 이루지 못 하고 깜깜한 방 안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밤을 보냈다

   12년 간을 닦은 실력을 겨루는 날이 밝았다.

   지난밤에는 별로 자지 못했지만 서울의 아침은 상쾌했다. 7시가 될 무렵 여관을 나서서 시험장소인 경기상고를 향했다. 경기상고의 건물 모습과 구조가 우리 학교 경남상고와 비슷해 진한 친밀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했다.

   건물 밖에서 선배들이 외치는 “아까라까” 응원이 서울 하늘을 울렸다. 나를 비롯한 20명의 우리 수험생은 필승을 다짐하면서 각 교실로 들어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첫 시간은 작문이었다. 작문은 내가 평소 그다지 잘 하지 못해 자신이 없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았던 과목이었다. 다행이 출제된 제목이 학교에서 한 번 다루었던 것과 비슷한 『80년 대를 향한 오늘에 있어서의 청년들이 나아갈 길』이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글의 구성을 머릿속에 그린 다음 차근차근 정성들여 작품을 완성 시켰다.

   작문 공부를 할 때는 몇 가지를 버릇으로 만들어야 한다.

   첫째는 작문을 시간 내에 완성하는 버릇을 키워야 하고, 둘째는 연습할 때 그때그때 쉬운 한자를 곁들이는 것이 좋다. 대신 한자는 반드시 자신 있는 것만 써야 한다.

   둘째 시간은 내가 가장 걱정했던 일반상식 시간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상식이 약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암기력이 부족한 탓인지 공부의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 여름방학 동안에 학교에서 ‘법문사’에서 발간한 일반상식 책을 세 번이나 정독한 다음 9월부터는 다시 집에서 이해 위주로 15일 동안 완전 마스터했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책과 신문스크랩을 통해 시사문제를 공부했다.

   그렇지만 내게 상식은 여전히 걱정거리였다.

   후배 여러분들이 상식공부를 할 때는 먼저 선배들께 공부방식과 교재를 문의해 계획을 세운 다음 착실히 공부했으면 싶다. 나는 상식공부를 할 후배들께 몇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은행 입행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 상식, 주판, 작문을 필수로 여기고는 다른 학과를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위 과목뿐만 아니라 전체 과목을 잘 익힌다면 상식공부는 80%를 끝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전 과목을 좀더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 그리고 신문에 나오는 중요한 기사는 그때그때 오려내어 스크랩북을 만들면 아주 훌륭한 상식책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만든 스크랩북은 어떤 상식책보다 새롭고 정확하다. 그리고 후배들은 ‘법문사’ 책을 본 교재로 삼고 ‘계림사’ 책을 보충교재로 사용한다면 상식은 완벽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법문사’ 교재는 중요한 것만 간결하게 수록한 반면 ‘계림사’ 책은 다양하고 정확하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시간은 우리 경남상고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영어시험이었다.

   나는 9월부터 제일은행에 원서를 낼 욕심으로 제일은행 입행시험 스타일에 맞춰 영어공부를 했다. 먼저 몇 년치의 기출문제집을 보고 출제경향을 파악한 다음 선생님들께 문의해 나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후 각 은행의 모집요강 발표를 보고는 지망은행을 바꾸어야만 했다. 제일은행의 응시자격에 나이제한이 있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1년을 재수했던 나는 한 살이 많아 나이초과였다. 응시 목표은행은 제일은행에서 한일은행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공부하면서 보니 한일은행의 1972년도 입행시험 영어는 많은 생각을 요할 만큼 어려웠다. 내가 응시했던 이번에도 예외 없이 까다로웠다.

   예를 들면, (1) 번은 little more than 9,000 men의 뜻을 ① 9,000명이 조금 넘는 수 ② 9,000명이 될까 말까한 수 ③ 9,000명이 조금 안 되는 수 ④ 9,000명을 넘지 못 하는 수에서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 문법문제가 몇 개 나왔는데 대체로 기초적이면서도 다소 까다로운 문제였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지난날의 영어공부에 대해 많은 잘못이 있었을믈 알았다. 1학년 떼에는 교과서 외에 ‘삼위일체’로 공부했고, 2학년 시절엔 학교에서 ‘정통구문연구’와 학원에서 ‘핵심영어’와 ‘새 대입영어’를 공부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3학년이 되어서는 학교에서는 ‘에이원’을, 학원에서는 ‘정통 종합영어’를 들었다. 그렇지만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종합영어’는 학원에서 단 한 달밖에 듣지 않았다. 그 후로는 학교수업에 충실하면서 시간이 나는대로 혼자서 ‘종합영어’를 풀었다.

   그러나 입행시험을 마친 지금의 내 생각은 너무 여러 가지 많은 종류의 책으로 공부하는 것보다는 간편한 영어책을 세밀히 보면서 완전히 마스터하는 것이 합격의 지름길이라 여긴다. 나는 입행시험을 준비하며 영어공부를 하는 후배들께 다음과 같이 공부하기를 권하고 싶다.

   은행 입행시험의 영어는 대학교 입학시험 영어와 달라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기초적이고 평범한 문제라는 것이다. 한 권의 기초적인 책을 선택하여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 후에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입행시험 합격의 첩경이라 말할 수 있다.

   넷째 시간은 주산시험이었다.

주산은 학교에서 삼 년 동안 선생님의 지도만 착실히 따랐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주산은 신속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답을 제대로 쓰는 것이다. 정답을 제대로 쓰려면 시험 칠 때 조건을 잘 숙지해야 한다. 이번에 내가 응시했던 한일은행 주산시험에서는 정답을 원 미만은 반올림해서 적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중에 듣자니 많은 수험생들이 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원 미만인 전까지 다 적었다가 고치느라 고전을 했다고 한다.

 

   입행시험을 준비한다면 착실히 실력을 쌓아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 유리한 은행을 제대로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금년도엔 우리 학교에서만도 많은 학생들이 은행 선택을 잘못하는 바람에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다고 한다.

   후배 여러분들은 은행을 선택하기에 앞서 선생님들과 충분한 상담과 의논을 한 후에 각 은행에 근무하는 선배들로부터 모집요강과 입행 시험의 난이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검토한 다음 정한다면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실력이 좀 뒤쳐졌던 후배들도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틀림없이 합격하리라 믿는다. 또 이미 실력을 갖춘 후배들은 자만하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가서 금년 우리 동기들이 못 다 이룬 소망을 꼭 이루어 자신은 물론 모교를 빛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