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은이의 김장체험
2019. 11. 19. 화요일
오후 5시가 다 되어갈 무렵.
세은이를 데리러 세은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갔다.
입구에서 어린이집 내선 전화로 정다운반 선생님께 세은이를 데리러 왔음을 알린 후 잠시 쉬고 있었다.
"할아버지!"
세은이는 2층에서 뛰듯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를 불렀다.
그러자 세은이와 함께 내려오신 선생님이 가방을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김치를 넣었더니 세은이가 메기엔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손을 꼭 잡은 다섯 살배기 세은이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정다운반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이랑 서울에 있는 시골로 갔었단다.
무우를 뽑았는데, 친구들은 신생님이 도와줘서 뽑았지만 자기는 선생님 도움 없이 혼자서 뽑았단다.
친구들이랑 김치도 만들었단다.
맛있게 만들었단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세은이는 가방부터 열었다.
적지 않은 김치가 든 비닐봉투를 꺼내더니 집사람과 나에게 먹어 보란다.
깍두기였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게 맛있었다. 세은이랑 은규가 먹기에 딱이겠다 싶었다.
깜작 놀라는 척하면서 내가 물었다.
"세은아, 김치에 뭘 넣어서 이렇게 맛있어?"
그러자 세은이는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무우랑 고추가루 그리고 ……"
집사람이 두 팔을 벌려 세은이를 꼭 껴안으면서 "아하, 알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하는 세은이 마음도 넣었구나. 그러니 이렇게 맛있지. 정말 맛있네." 하자 세은이는 "네!" 큰소라로 답하고는 더 신이 난 듯 할머니 품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김장철.
내가 어렸던 시절…
해마다 울긋불긋 곱게 물들었던 감잎이 한창 떨어질 때면 아버지는 날을 잡아 지게를 지고 산기슭의 밭으로 가서는 배추랑 무우를 뽑아 몇 번이씩나 져다 나르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우물가에서 배추와 무우를 씻어 소금에 절이면서 시작된 김장. 적게는 50포기, 때로는 100포기도 훌쩍 넘는 배추와 무우를 씻고 절이는 것만 해도 예삿일이 아닌데 갖가지 양념을 마련하고, 한 소쿠리나 되는 마늘을 까서 도구방아(절구)에서 찧어야 했었다. 그러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기는 커녕 온 가족들이 겨우내 먹을 김치 만들기를 큰 행복으로 여기셨던 우리 부모님에게의 김장은 '김치 이상의 의미, 즉 가족사랑'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몇 항아리의 김치와 처마에 닿을 만큼 쌓인 장작 또는 광을 가득 채운 몇 백장의 연탄은 따뜻하기 그지없는 겨울나기의 보증수표였다. 그런데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동네 곳곳에 산처럼 쌓였던 배추와 무우가 집집에 배달되는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주부의 일손을 크게 덜어주는 '절임배추'란 멋진 상품(?)이 나온 덕분에 아직은 적지 않은 가정에서 마늘 냄새 멸치젓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김장철의 미풍양속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그렇지만 요즘 20∼,30대의 젊은 세대들 중 많은 젊은이들이 김치를 아예 먹지 않거나 설령 먹는다 하더라도 김장을 해서 먹기보다는 포장 김치를 사서 먹는 걸 선호하는 탓에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 사이에 '김장 갈등'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단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는 김장철의 풍습이 얼마나 더 우리 곁에 남아있을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세은이도 훗날엔 자신의 아들딸 등 가족사랑을 듬뿍 넣어 김치를 담그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우리 세은이에게 오늘의 김장체험이 먼 훗날엔 멋진 추억이 되면 좋겠다.
집사람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금요일에 김장한단다. 전남 해남에 절임배추 두 박스(40kg)를 주문했단다.
낼모레, 이번 금요일 저녁 우리 집에는 우리 가족 9명 모두가 모인 잔치가 벌어지겠다.
집사람이 세은이처럼 가족사랑 듬뿍 넣었을 김장김치와 모락모락 김 오르는 돼지고기 수육에 웃음꽃 활짝 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