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모이다.
2019. 9. 21. 토요일
드디어 원준네가 우리 집 바로 아래층으로 이사를 왔다.
1979년 11월에 결혼한 내 신혼생활은 종암동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서초동 직원아파트의 신축 분양에 당첨되는 행운 덕분에 1981년 초 서초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후로는 공릉동에서의 2년과 대구, 포항의 지방근무 시절 등 6,7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2012년 초까지 줄곧 서초동에서만 살았으니 서초동에서 살았던 세월이 30년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2010년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7년에 결혼해 양재동에 살던 쌍둥이 작은딸네에 원준이가 태어나면서 생긴 변화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외손주를 보러 다니는 동안, 거주지역으론 서초동이 최고라 여겼던 우리 부부가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원준이의 백일 무렵인 2010년 4월에 결혼하면서 서초동에 보금자리를 틀었던 쌍둥이 큰딸도 양재동으로의 이사를 마음에 두더니 2년 만에 결국 옮겼다. 외손주를 한 번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고 싶어 하는 우리 마음을 잘 아는 두 딸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우리 부부도 2012년 2월경 서초동 아파트를 세놓고는 양재동 주민이 되었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우측 100m쯤 떨어진 곳엔 큰딸네, 좌측 130m쯤 거리에는 작은딸네.
같은 서초구에서 서초동과 맞붙은 동네 양재동.
기껏해야 4∼5km를 옮겼을 뿐인데도 주거환경은 많이 달랐다.
양재동은 생각보다 살기 좋았다.
사통팔방으로 뚫려 대중교통이 엄청 좋다.
3호선, 신분당선 지하철에 서울 시내는 물론 경기도도 웬만한 곳으로는 다니는 버스가 다 있는 것 같다.
시민의 숲과 양재천 등 가볍게 휴식을 취하거나 조깅을 할 수 있는 곳이 많고, 농협하나로, 코스트코,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가까이 있는 데다 서울삼성병원 강남세브란스 등 대형 병원은 물론 SRT를 타는 수서역도 가까이 있어 무척 좋다.
다만 대단지 아파트뿐 아니라 중소형 단지의 아파트마저 전혀 없이 기껏 몇 곳에 세워진 나홀로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빌라 또는 다세대 주택들이라 주거환경이 기대에 조금은 못 미치지만 대신 곳곳에 조성된 공원이 많아 다행이다.
다행히 우리 부부가 입주한 메트로아파트는 주위에서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비록 총 세대수라야 19세대밖에 안 되는 나홀로 아파트지만 바로 앞에 인조잔디 축구장 그리고 소나무 숲과 놀이시설이 좋은 놀이터를 갖춘 양재근린공원이 있어 조망이 좋은 데다, 또 이 공원구역 안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는데 우리 아파트에서는 기껏해야 150m밖에 되지 않으니 아이들 키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게다가 수영장과 헬스장은 물론 많은 프로그램을 갖추고 주민들을 기다리는 區立의 언남문화스포츠센터도 150m쯤의 거리밖에 되지 않으니…
하지만, 참 이상하다.
십 리가 가깝다 여길 때가 있는 반면 때로는 100m도 멀게 느껴진다.
외손자와 외할아버지의 거리, 100m가 몇십 리보다 더 멀게 느껴지곤 할 때,
우리 집에서 우측으로 100m쯤 떨어져 살던 큰딸네가 먼저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작년 11월, 마침내 우리랑 같은 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이웃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130여 m 떨어져 살던 작은딸네가 우리 부부와 큰딸네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이다.
우리 집은 503호, 작은딸네는 403호.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 입주했다.
옆집은 은규네, 아랫집은 원준과 세은이네…
거의 매일 보는 외손주들이지만 이젠 더 무시로 들락거릴 수 있어 좋다.
지금까지 세 놈이 우리 집에 모이면 재미나게 놀았지만 이젠 더 신나게 놀아도 되어서 좋다.
세 외손주가 우리 집에 모여 놀면서 좀 폴짝거리기라도 하면 혹시라도 아랫집에 소음 공해가 될까 봐, 몇 달 전처럼 아래층의 할머니가 올라와 시끄럽다고 항의할까 봐 늘 노심초사했었지만, 이제는 아래층이 내 외손주집 되었으니 걱정 끝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외손주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매일 지켜볼 수 있어 행복하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지금쯤 한참 꿈나라에 들었을 원준, 은규, 세은.
외손주들의 잠꼬대 소리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