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번개 산행
2019. 9. 15. 일요일
추석 황금연휴 마지막날
추석을 몇 일 앞두고 추석연휴 중에는 번개산행이 없다는 이륙산악회의 공지를 보면서 나는 마음먹었다.
명륜동 고모와 논현동 사모님께 인사 가는 날을 추석 다음 날로 정하면서 마지막날엔 혼자서 대모산에 오르겠다고…
수서역에서 대모산에 올라 대모산 정상과 구룡산 정상을 찍은 다음 양재 시민의숲을 거쳐 집에 돌아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제 저녁,
추석날엔 차례를 지낸 후 성묘를 다녀오느라 늦었다는 두 딸네와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농담삼아 지나가는 말투로 원준이에게 물었다.
"원준아! 할아버지는 일요일 아침일찍 청계산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예"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원준이의 대답에 대모산은 청계산으로 바꼈다.
몇 달만에 내 옆에서 자는 원준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잘 자던지…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리자 원준이도 눈을 떴다.
전날 준비해 두었던 과일들과 물 두병만 넣어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청계산 옛골 종점 에 도착해 아침 식사할 곳을 찾았지만 편의점만 문을 열었을 뿐…
나야 한 끼 정도 굶어도 끄떡없지만 한창 자라야 할 원준이에게는 좀 먹이고 싶어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을 샀다.
맛있다며 금방 김밥 한 줄을 뚝딱 해치우는 원준이가 고맙고 미안했다.
6시 50분
원준이와의 번개산행은 청계산 입구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엄밀히 말하면 정원준에게는 두 번째의 청계산 산행이다.
2010년 1월에 태어난 원준이가 생후 22개월째였던 2012년 11월에도 오늘처럼 옛골 등산로로 이수봉까지 올랐었다.
하지만 세 살이었던 그때는 평평한 산길에서 가끔씩 걸었을 뿐, 오를 때의 대부분은 아빠의 등에 업혀 올랐고, 하산 길의 대부분은 내 등에 업혀 내려왔혔으니 근 7년만에 오르는 오늘의 등산이 제대로 오르는 청계산 첫 산행인 셈이다.
근데 얼마 오르지 않아 못 보던 이정표가 있었다.
몇 백미터만 더 가면 '천림산 봉수지'가 있다는 이정표였다.
이정표의 화살표를 따라 들어서자 큼직한 안내판과 함께 복원한 지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 봉수대 몇 개가 보였다.
학교에서 배웠다며 안내판의 글씨를 한 자도 빼지 않고 다 읽고는 봉수대를 둘러보는 원준이는 사뭇 진지해 보였다.
외손자와 함께 오르는 청계산은 맨발로 걸어도 괜찮을 만큼 좋았다.
곳곳에 얼마 전에 불어닥친 태풍 링링이 남긴 생채기가 산길을 가로막기도 했지만 별 어려움은 없었다.
태풍에 부러져 산길을 가로막고 있는 아름드리 나무를 보면서 뿌리와 건강은 나무에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들려주고, 하늘을 찌를 듯 쭉쭉 솟은 나무와 구불구불 굽은 나무의 쓰임새를 비교해 들려주면서 오르는 청계산.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갖가지 모양의 버섯과 가을꽃을 이야기 하면서 오르는 이수봉.
축구를 엄청 좋아하는 정원준, 축구 를 많이해서 그런지 곧잘 올랐다.
하지만 자주 쉬도록 하고 생수도 자주 마시게 하면서 올랐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蓬萊 양사언의 '태산가'를 내가 선창하면 원준이는 따라 읊었다.
마침내 이수봉 정상에 도착했다.
기념사진 촬영과 남은 간식을 다 먹은 후 경사가 좀 심하고 계단이 많은 지름길로 하산을 시작했다.
오를 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잘 걸었던 원준이가 내리막길에서는 자주 미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원준이의 '다이나보' 라는 신발의 바닥이 운동화보다 훨씬 미끄운 재질이었다.
원준이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내 손을 꼭 잡은 원준이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재잘재잘…
축구를 좋아하는 원준이는 요즘 열리고 있는 월드컵 지역예선을 이야기하면서 벤투감독이 이끄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전술이 3,5,2 전술에서 요즘은 4,4,2로 바뀌었단다. 그런데 손흥민의 어시스트와 황의조의 골결정력을 이야기하면서 4,4,2 전술이 더 효과적인 전술이라는 둥, 조현우와 김승규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다음 시합에서는 누가 골키퍼 되어야 한다는 둥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축구에 대한 지식이 훨씬 깊었다. 언제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나 싶을 만큼 놀라웠다.
축구이야기에 이어 두어 곡 의 동요를 부르는 사이 우리는 계곡에 도착했다.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조차 음악처럼 맑고 얼음처럼 시원했다.
원준이와 함께 신발과 양말을 벗고 담근 계곡물은 벌써 차가웠다.
하지만 8km쯤을 걸어 조금은 느껴졌던 피로는 말끔히 사라졌다.
옛골토성,
이른 점심은 얼마나 맛나던지…
우리 원준이가 얼마나 맛나게 잘 먹던지…
외손자가 따라 준 하산주는 술술∼ 얼마나 잘 넘어가던지…
사랑하는 외손자와 손잡고 오르내린 청계산 번개산행은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추석 황금연휴 마지막날의 행복은 알알이 박힌 듯 활짝 핀 수국꽃처럼 풍성했다.
원준이가 옛골 종점의 편의점에서 산 치즈김밥을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초등 3학년인 원준이는 학교수업의 사회시간에
나라가 위급할 때 불을 피워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는 봉수대에 대해 배웠다면서
'천림산 봉수지 안내판'을 꼼꼼히 읽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봉수대를 직접 보니 더 신기한 듯
봉수대의 앞뒤를 돌아다니며 살피던 정원준과 찰깍∼
엄청난 강풍을 동반해 온 山野를 휩쓸고 간 태풍 링링의 흔적들…
청계산의 곳곳에서도 아름드리 거목들이 쓰러져 산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곳에서 과일을 먹은 후 일어나 출발하던 원준이는
조금 짧게 줄인 자기의 스틱 대신 내 스틱을 가지고 앞장을 섰다.
그래서 내가 "원준이 그건 할아버지 스틱이야" 소리치며 따라갔는데,
그때 우리 뒷쪽의 탁자에서 맥주를 드시던, 나보다 조금은 나이가 많아 보이던
대여섯 분의 어르신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아빤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네…"
내가 모자를 푹 눌러쓴데다 짙은 선글라스를 썼으니
흰 머리카락과 얼굴의 숱한 주름을 못 본 모양이었다.
조금은 쑥스러웠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2019. 9. 15. 마침내 도착한
이수봉 정상에서 정원준과 함께
이수봉 정상에서 잠시 쉬면서 과일이랑 빵을 먹고…
하산 중에 잠시 쉬는 원준이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던 원준이는
물이 벌써 너무 차단다.
"옛솔, 칫솔, 마테카솔"
꽃보다 아름다운 내 외손자 정원준
옛골토성
외손자가 따라 주는 下山酒, 막걸리의 맛과 즐거움이 바로 행복
옛골 토성에서 훈제오리를 굽던 원준이는
훈제 2인분에 선지해장국까지 주문했기에 훈제가 좀 남을 것 같아
내가 "남는 거 은규한데 갖다주자." 했더니
원준이는 대번에 "세은이는요?" 했다.
은규는 이종사촌 동생
세은은 친동생
결국 나는 1인분을 추가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