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규의 공개수업
2019. 9. 3. 화요일
새벽 5시 30분에 헬스장으로 갔더니 낯익은 회원들이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물었다.
하기야, 7여 년 동안이나 새벽시간에 운동을 하다가 은규가 영어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작년 3월부터는, 간혹 은규의 유치원 등원을 내가 시키지 않아도 되는 날엔 7시 전후 시간에 헬스장으로 갔지만, 대부분은 은규를 유치원 승합차로 태워 보낸 후 빨라야 9시 30분쯤에야 헬스장으로 가고 있으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새벽운동 회원은 그럴만하다 싶었다.
오늘은 은규가 다니는 쥬니어 영어유치원에서 공개수업 하는 날.
어제, 직장에서 퇴근한 은규 어미가 저녁식사 중에 말하길, 회사에 오전 반차를 냈다며 오늘 아침에는 자신이 은규를 등원 시킬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고는 은규의 Class인 맨해튼반의 공개수업은 10시 30분에 시작된다면서 물었다.
"아빠도 같이 가실래요?"
"·······"
나는 가타부타하지 않은 채 '5시 30분에 가서 9시 30분까지 하면 4시간', 운동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전날 저녁의 계산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새벽 5시 30분쯤 헬스장에 도착했다.
늘 하는대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파워벨트 마사지 - 5분
하체운동 - 1시간 조금 더
어깨운동 - 1시간 조금 더
이젠 유산소 운동이랑 복근 등 마무리 운동과 스트레칭만 하면 되는데…
문득 은규가 보고 싶었다.
밤새 잘 잤을까?
제때 일어났을까?
아침은 잘 먹었을까?
등원 준비는 잘 하고 있을까?
헬스장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 바늘은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5분도 안되는 시간에 샤워를 마쳤지만 시간은 9시 5분 전.
마음이 급했다.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걸어 아파트를 20m쯤 남겨두었을 때였다.
우리 아파트의 입구로 노란색 유치원 승합차 한 대가 다가서는 게 보였다.
아침마다 은규를 태우기 위해 오는 쥬니어 유치원의 7호차가 틀림없었다.
달려가며 불렀다.
"은규야!"
엄마랑 인사를 나눈 후 승합차에 오르려던 은규의 귀에 내 목소리 닿았던 모양이다.
은규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은규를 태운 승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내가 아파트 입구로 돌아설 때 은규 어미가 말했다.
"아빠, 운동 더 하시라고 카톡 보냈는데 보셨죠? 오늘은 할아버지들이 한 분도 안 오신다고 해서…"
"응, 봤어, 운동할 거 다 했더니 은규 등원하는 게 보고 싶어서…"
태연히 거짓말을 하고는 집에 들어와서 카톡을 열었다.
정말 확인하지 않은 카톡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샤워를 마칠 무렵쯤 들어온 은규 어미의 카톡이 있었다.
····················
그래 잘 됐다 싶었다.
푹 쉬면서 블로그를 쓰고, 색소폰이나 연습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의 오전 시간은 평소보다 몇 배나 길었다.
낮잠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블로그는 들여다 보기도 싫었다.
색소폰은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은 채 빈둥거리고 있을 때 핸드폰이 소리를 냈다.
"까꿍"
은규 어미가 보낸 사진과 동영상이 날아들었다.
와우!, 우리 은규였다.
····················
····················
····················
유치원에서 돌아온 은규와 방과후 축구를 마치고 하교한 원준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두 놈들이 수영하는 동안 나는 전망대에서 그들의 수영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까꿍"
내 핸드폰이 또 노래를 했다.
은규의 공개수업을 참관하곤 곧장 직장으로 출근한 은규 어미가 보낸 카톡이었다.
은규의 공개수업에 자기 혼자만 참석해서 죄송하단다.
생각이 짧았다며 자책하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푹 잘 쉬었다.……"
답장 쓸 때의 나는 행복했다.
내 마음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가을하늘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고 있는 외손주들의 모습이 내 행복이었다.
항상 아빠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씀씀이가 나를 더없이 행복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