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우화

양으로 분장한 늑대

자갈 길. 2019. 9. 6. 13:15


(寓話 1)

    

양으로 분장한 늑대


돌담/이석도(2019. 9. 6.)

 

옛날 옛날, 아주 옛날 어느 높은 산의 한쪽 자락에 양떼마을이 있었어요.

나무울타리로 둘러싸인 양떼마을에는 많은 양들이 살고 있었는데, 비록 땅은 좁았지만 온갖 맛있는 풀들이 잘 자라는 곳이라 아주 평화로웠답니다. 그러나 양떼마을의 울타리 밖은 싸우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자주 들릴 만큼 무서웠어요. 그곳에는 몸이 작은 들쥐와 토끼 뿐 아니라 몸집이 큰 노루와 사나운 늑대의 무리도 살고 있었는데 늑대들은 배가 고프면 들쥐와 토끼는 물론 노루까지 잡아먹곤 했어요. 먹잇감을 잡지 못하는 날엔 양떼마을 울타리 밖을 어슬렁거리다가 울타리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새끼 양을 잡아먹기도 했어요.

 

그런데 평화롭던 양떼마을에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어요.

오랫동안 마을을 잘 다스려오던 우두머리 양이 큰 병에 걸렸는데 의사가 진찰을 하더니 나이가 너무 많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대요. 그래서 양떼마을에서는 새 우두머리를 뽑기 위해 엄마 양과 아빠 양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했어요. 그렇지만 누구를 우두머리로 해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런 소문이 울타리 밖으로까지 퍼졌어요.

 

호시탐탐 양떼마을을 노리고 있는 늑대 무리의 두목은 귀가 번쩍 뜨였어요. 그 소문에 눈빛을 반짝이더니 부하들 중에서 평소 말을 잘 듣고 꾀가 많아 꾀돌이라 불리던 늑대 둘을 불러서 귓속말로 명령을 내렸어요.

“애들아! 너희들을 양떼마을로 들여보내줄 테니 그곳에 들어가면 꼭 우두머리가 되어서 내가 신호를 보낼 때마다 우리가 먹을 새끼 양들을 잡아 보내야 한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양떼마을에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다음 얼굴에는 양 모습의 가면을 씌우고 몸에는 하얀 물감을 칠해 꼭 양처럼 보이게 만들었어요.

늑대의 두목은 양의 모습으로 변장 시킨 부하들을 데리고 양떼마을 울타리로 가서는 밤새 몰래 뚫어 놓은 구멍으로 들여보내면서 주의할 사항을 알려주었답니다.

“가면을 벗으면 들키니까 절대 벗지 마. 그리고 비를 맞으면 몸에서 물감이 지워져 들통이 나니까 비를 맞으면 절대 안 돼. 맑은 날에도 꼭 우산을 쓰고 다녀, 알았지?”

 

양떼마을로 몰래 들어온 두 마리의 늑대는 진짜 양처럼 행동했어요. 그리고 두목으로부터 배운 대로 힘들게 일하는 양들을 찾아다니며 도와주는 척하면서 양들의 환심을 샀어요. 많은 엄마 양과 아빠 양들의 환심을 얻은 덕택에 마침내 큰 늑대는 우두머리가 되고 작은 늑대는 비서가 되었어요. 그러자 작은 늑대는 늘 우두머리 곁에만 있었어요.

양떼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 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두머리가 된 큰 늑대는 물론 비서인 작은 늑대까지 집 안에서는 그냥 지내지만 밖에서는 언제나 우산을 꼭 쓰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거짓을 모르는 양들은 그들이 열심히 일하느라 너무 더워서 햇볕을 가리기 위해 우산을 쓰고 다니는 줄 알았답니다. 더 이상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새끼 양 몇 마리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 양과 아빠 양은 그때마다 크게 슬퍼하면서도 예전처럼 새끼 양들이 울타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다 늑대에게 물려간 줄로만 알았지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났습니다.

매달 몇 마리의 새끼 양이 사라질 뿐 아니라 잘 자라던 맛난 풀이 시들 때가 많아 마을의 분위기는 점점 침울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엄마 양과 아빠 양들은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새로운 새끼를 낳을 때마다 머지않아 좋은 날이 올 테니 힘을 내자며 서로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배불리 점심을 먹은 우두머리와 비서는 낮잠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들이 한창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양떼마을 우두머리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중요한 명령이 있다면서 즉시 비서를 보내 지령서를 찾아가라는 늑대 무리의 두목 전화였습니다.

우두머리는 낮잠 자는 비서를 깨웠습니다. 그러고는 두목이 말한 장소를 알려주면서 그곳 땅속에 묻혀 있는 늑대 두목의 명령서를 빨리 찾아오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잠이 덜 깬 비서는 신발만 챙겨 신고 후다닥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한참을 달려 많은 엄마 양과 아빠 양들이 모여 일하는 곳을 지날 때였습니다.

검은 구름을 잔뜩 머금었던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던 비서 몸에서 하얀 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잠시 뒤 비서의 몸은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서는 그런 것도 모르고 달리기만 했습니다.

비서가 달리는 모습을 보던 엄마 양과 아빠 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은 양인데 몸은 늑대인 괴물로 보였던 것입니다.

엄마 양과 아빠 양들은 힘을 모아 괴물을 붙잡아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양떼마을 우두머리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밧줄에 묶인 비서의 모습을 본 우두머리는 잠시 사색이 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칼을 꺼내 비서를 끌고 간 아빠 양의 목에 날카로운 칼날을 갖다 대곤 소리쳤습니다.

“꼼짝 마! 말 안 들으면 다 죽일 거야. 빨리 비서 묶은 밧줄 풀어.”

양들은 우두머리의 협박에 벌벌 떨면서 밧줄을 풀었습니다.

그러자 우두머리는 잽싸게 비서의 손을 잡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울타리 쪽으로 줄행랑쳤습니다. 도망가는 동안 우두머리의 얼굴에 씌워져 있었던 어진 양 모습의 가면이 땅에 툭 떨어지는 바람에 우두머리의 사나운 늑대 모습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얼굴은 늑대이면서 몸을 양처럼 꾸민 우두머리와, 몸은 늑대이면서 가면으로 얼굴을 양 모습으로 가장한 비서가 손을 잡은 채 ‘걸음아 나 살려’ 하면서 줄행랑치는 모습은 아주 정말 꼴불견이었습니다,

 

그제야 양떼마을의 양들은 알았습니다.

우두머리와 비서는 양 모습을 가장한 늑대였음을.

매달 새끼 양들을 사라진 것은 우두머리와 비서의 짓이었음을.

몇 년 동안이나 순한 양처럼, 어진 우두머리처럼 행세한 늑대들에게 속고 살았음을.

며칠 후 양떼마을에는 대부분의 양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두머리와 비서가 늑대였다는 사실에 모두 진저리를 치면서 몸을 떨었습니다. 한 할아버지 양이 누군가가 찾아낸 늑대무리 두목의 지령서라면서 소리내어 읽으면서 펼쳐 보였습니다.

할아버지 양이 펼친 그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아무 때나 양들을 잡아올 수 있도록 북쪽 울타리를 일주일 내 허물 것”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양들은  “휴∼, 그나마 다행이네” 하며 한숨을 돌렸습니다.


양으로 분장했던 우두머리와 비서가 사라진 양떼마을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이제는 새끼 양들이 사라지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습니다.

평화가 다시 찾아온 양떼마을에 사는 양들은 모두가 예전처럼 아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